마지막 산꾼을 태운 뚜벅이 산우회 버스는 5분 정도만 더 기다려보자는 회원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7시 정각에 시민회관을 떠난다. 뚜벅이님이 시간 약속이 정확하신 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7시 20분 남대전요금소로 진입하여 어둠을 서서히 밀어내며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달린다.
7시 50분 무주요금소를 나와서 좌회전한 다음 19번 국도를 타고 진안방면으로 8-9분 달려서 만나는 회차로에서 좌회전하면서 49번 지방도로로 갈아탄다. 치목터널과 구천동터널을 차례로 지나고 이어지는 37번 국도로 타고 무주구천동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8시 25분. 화장실에 다녀오고 간단한 산행 준비를 마치고 집단시설지구를 지나 삼공리 매표로소 향한다.
8시35분 삼공리 매표소를 지나 독일가문비 나무가 늘어선 포장도로를 따라 무주구천동계곡을 끼고 백련사로 발걸음을 옮긴다. 구천동계곡은 물이 급경사를 이루고 뱀 처럼 꼬불꼬불 흐르기 때문에 곳곳이 아름다운 풍경의 극치를 이룬다. 이름하여 33경. 큰 바위가 있으면 대(臺)요, 물이 떨어지면 폭(瀑)이고, 고이면 소(沼)고 담(潭)이다. 겨울이면 높은 산답게 장쾌한 능선과 설경을 감상할 수 있어 겨울 산행지로도 그만이다. 8시 45분 구천동 계곡에 들어서 처음 만나는 절경은 월하탄. 선녀들이 하얀 날개를 펼치며 춤을 추듯이 두 가닥 물줄기가 폭포처럼 쏟아져 푸른 담소를 이루는 구천동 33경 중 제 15경이다.
10분 정도를 걸으면 공덕비와 의병대장 순국비 그리고 구천동수호비를 만난다.
9시 갈림길이다. 오른쪽으로 인월담(제 16경)이 보이고 구름다리를 건너면 칠봉으로 오르는 등산로인데 지금은 폐쇄되어 출입이 통제된다.
사자담(제 17경) 청류동(제 18경) 비파담(제 19경) 구월담(제 21경)이 차례로 모습을 들어내고 9시 10분 덕유산 휴게소를 지나친다. 금포탄(제 22경) 안심대(제 25경) 구천폭포(제 28경)를 차례로 감상하는 것으로 지루함을 달래며 평지길을 걷는다.
구천동 33경중 제 14경인 수경대까지는 차를 타고 갈 수 있지만 제 15경인 월하탄부터 마지막 덕유산 정상까지는 걸어 올라야 한다. 그래서 제 1경(라제통문)부터 제 14경까지는 외구천동이라 부르고 제 15경부터 제 33경(향적봉)까지를 내구천동이라 부르기도 한다. 9시 45분 백련교를 건너자 백련사일주문이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자칫 지나치기 쉬운 매월당부도가 눈 옷을 입고 겨울 등산객을 맞이한다. 종 모양의 이 부도는 매월당 설흔 스님의 사리를 모신 것으로, 받침돌과 부도의 윗 부분에 불교의 상징인 연꽃을 화려하게 새겨 세련미를 준 것으로, 높이는 1.6m이다.
9시 50분 백련사 천왕문으로 오르는 계단 앞에 도착한다. 백련사는 덕유산 중심부 구천동 계곡 상류에 자리잡은 사찰로 신라 신문왕때 백련선사가 은거하던 곳에 하얀 연꽃이 솟아 나왔다 하여 지었다는 설과 흥덕왕 5년(830년)에 무렴국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산사의 길모퉁이를 돌아서 오르는 비탈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오수자굴로 향하는 등산로가 열려 있다. 오수자굴 2.3km 표지판이 있다.
자켓을 벗어 배낭에 넣고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래고 산길로 접어든다. 온통 雪國을 이룬다. 눈 덮인 울퉁불퉁한 바위길을 걷다보면 해발 900m 표지판이 보이고 통나무 구름다리를 건너면 해발 1000m 표지판이 보인다. 향적봉까지는 3.7km
청량하기 그지없는 계곡물은 쉼 없이 흘러내린다. 산죽나무 사이로 나 있는 오솔길은 산꾼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고도를 높여간다. 산속으로 안길수록 포근해진다. 10시 35분 해발 1100m을 지나면서 경사가 급해지고 눈덮힌 돌길이 산행 속도를 늦춘다. 10시 50분 오수자굴에 도착한다. 16세기 문인 임훈의 향적봉기에 계조굴(戒組窟)로 기록되어 있었으나 오수자(吳秀子)라는 스님이 이곳에서 득도했다는 전설이 있어 오수자굴이라 불린다고 한다. 굴 속에는 낙수물이 얼어 군데군데 수정을 만들어 놓았다.
잠시 쉬는 사이 뚜벅이님이 일행들과 함께 오른다. 에델바이스님이 건네는 초코렛과 간단한 간식으로 힘을 보충하고 다시 오름길을 나선다.
100개가 넘는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르고 험한 산길을 30분 정도를 더 오르자 하늘이 뚫리고 시야가 확 트인다. 한줄기 칼바람이 볼을 할퀴고 지나간다. 표지판에는 해발 1470m 향적봉 1.5km라고 쓰여 있다. 눈 쌓인 능선길을 올라 11시 50분 중봉(해발 1594m)에 이른다.
물 한 모금에 거친 숨을 고르고 고개 들어 먼 산을 바라본다. 왼쪽으로 남덕유산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있고 그 뒤로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
전형적인 육산의 아름다움, 그리고 넓은 산자락과 만만치 않은 높이가 마치 히말라야의 고봉들을 연상케 한다. 첩첩산중으로 장쾌하게 이어진 크고 작은 연봉들이 눈가루를 흩날리면서 설경을 연출하여 산꾼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중봉에서 오른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아고산대덕유평전을 지나게 된다. 아고산대란 해발 고도가 비교적 높은 지역(1500-2500m)중 바람과 비가 많고, 기온이 낮으며 맑은 날이 적어서 키가 큰 나무들이 자랄 수 없는 곳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아고산대는 백두산 정상에 넓게 분포하고, 지리산 노고단, 세석평전, 소백산 비로봉, 설악산 중청, 대청봉주변에 소규모로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 눈 옷을 입고 있는 철쭉군락과 주목, 구상나무숲이 보여주는 설화가 감탄을 자아낸다. 향적봉-중봉 구간에 있는 구상나무 군락의 설화는 한 폭의 동양화를 연출한다.
절경을 감상하며 능선을 따라 12시 10분 향적봉 대피소에 도착한다. 비좁은 대피소 안은 이미 등산객들로 만원이다. 한쪽에 자리잡고 점심식사를 마치고 13시 10분 향적봉으로 오른다. 잘 정비된 나무계단을 100m 정도 오르면 해발 1614m 삼남을 굽어보는 덕유연봉의 최고봉인 향적봉이다.
웅장한 산세와 빼어난 계곡미 그리고 울창한 숲이 어울려 뛰어난 자연 경관을 이루고 있는 덕유산은 덕(德)이 많아 너그럽고 넉넉한 산이라 德裕山이라 불린다. 영호남지방을 가름하는 우리나라의 4번째 높은 산이다. 덕유산의 주봉은 향적봉(상봉)이며 그 남서쪽에는 남덕유산(1507.4m)이 솟아 두 봉우리는 쌍봉을 이루며 두 곳을 연결하는 분수령은 전북과 경남의 도경계를 이루고 있다.
덕유산은 두문산(1,051m), 칠봉(1,161m), 거칠봉(1,178m)등의 고봉 등을 거느리고 봄철이면 칠십리 계곡에 빨간 철쭉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짙푸른 녹음으로 피서객을 손짓하며 가을이면 붉게 타는 단풍으로 만산을 물들이고, 겨울이 되면 하얀 눈이 뒤덮인 설경 속에 설화를 피워 신비경을 이룬다.
정상에는 사람 키보다 큰 정상 표지석과 3군데 돌무더기가 있으며 사방으로 시원스러운 조망을 감상할 수 있다. 북으로 가깝게는 적상산을 아래로 두고 멀리 황악산, 계룡산이 보이며 서쪽은 운장산, 대둔산, 남쪽은 남덕유를 앞에 두고 지리산, 반야봉이 보이며 동쪽으로는 가야산, 금오산이 조금 멀리 비계산과 오도산까지 나란히 한 눈에 들어온다.
무주리조트의 곤돌라를 이용,백련사를 경유하지 않고 만선봉에서 설천봉 향적봉까지 능선 트레킹코스로 오르는 관광객을 많이 볼 수 있다. 칼바람 때문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하산을 서두른다. 무주리조트 스키장 쪽으로 나무 계단을 타고 내려오다 오른쪽 산길로 접어들어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오면 실크로드 슬로프와 만난다.
슬로프를 따라 20여분 내려오다 오른쪽 철조망에 가려진 안내판을 만난다.
칠봉으로 가는 길인데 스키장이 들어서면서 폐쇄된 등산로이다. 14시 10분 칠봉에 도착한다. 걸어온 능선이 한 눈에 펼쳐진다. 산의 모습은 말이 아니다. 산정상에서 내려오는 스키코스가 흡사 이발기로 머리를 밀어놓은 모습이다. 문명과 원시의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산, 인간 몸부림과 자연의 여유로움이 함께 하는 산, 덕유. 무주 리조트의 스키장이 덕유산 주봉까지 올라오는 바람에 등산객에 관광객까지 가세하여 훼손과 오염이 가속되고, 슬로프를 만들면서 상처난 산줄기들은 천년이 흘러도 한결같은 모습이어야 할 아름다운 경관을 망가트려 놓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각자 돌아서서 영역 표시를 하고 에델바이스님이 준비한 딸기를 나누어 먹으면서 이 겨울에 딸기라니 ... 옛날 임금님보다 낳다는 생각들을 한다. 하산길을 재촉한다. 매우 급경사 철계단과 이어지는 돌계단을 내려서니 한 숨 돌리기 전에 더 가파른 철계단이다.
조심조심 내려서 14시 40분 칠봉약수터(해발 1100m)에 도착한다. 옛날부터 불로장수를 구하던 사람들이 찾아든 곳으로 지금도 피부병을 비롯한 만병통치의 성수로 여겨진다고 한다. 비워있던 물통마다 가득가득 약수로 채우고 한 바가지씩 벌컥벌컥 들이킨다. 산길 따라 지친 발걸음을 옮겨 15시 20분 인월담 다리를 몰래 넘어 오다 공원관리소 청소하는 아저씨와 마주친다. 계곡물에 탁족하고 온다고 둘러대고 빠른 걸음으로 주차장을 향한다.
15시 50분 주차장에 세워둔 버스에 오르면서 산행은 끝이 나고 하산주를 위하여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긴다. 맘씨 좋은 주인 아주머니가 서비스로 내 주신 산나물과 버섯, 된장찌개와 파전을 안주 삼아 동동주 한 사발씩 건배하고 그렇게 산행은 마무리된다. 에델바이스님이 로또에 당첨됐다면서 오늘 한턱 쏜다고 계산대로 향한다.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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