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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월출산(천황사-도갑사)

2003. 11. 09(일)

7시 25분 유성 나들목을 빠져나간 소월산악회 버스는 호남고속도로를 달려 1시간 후 정읍휴게소에서 20여분을 정차한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 탓인지 산행에 참가한 인원이 평소보다 적다. 휴게소에서 온누리늘푸른 산악회와 월출산 산행을 함께 하기로 결정하고 버스는 다시 광주를 향해 달린다. 9시 25분 광주 나들목을 빠져나와 순환도로를 타고 소태 요금소에서 1번 국도와 13번 국도를 이용하여 나주를 거쳐 영암까지 간다. 흩뿌리던 빗줄기도 멈추어서 걱정을 던다. 영암에서 월출산을 끼고 4km 정도 남쪽으로 더 달려 11시 정각 국립공원 월출산 주차장에 도착한다.

육지와 바다를 구분하는 것처럼 우뚝 선 월출산은 서해에 인접해 있고 달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전설에 의하면 월출산에는 움직이는 바위 세 개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바위들의 정기로 산아래 고을에 큰 인물이 난다고 하여 중국 사람들이 몰래 그 바위들을 밀어 떨어뜨렸는데 그 중 한 바위가 다시 기어올라갔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신령스러운 바위가 있는 곳이라 하여 산아래 마을을 '영암'(靈巖)이라고 했다고 전한다.

"천황사에서 도갑사에 이르는 종주 코스를 택한다면 산의 노른자위를 대부분 맛볼 수 있다." - 조석필 월출산 中에서 -

이번 산행은 천황사 ⇒ 구름다리 ⇒ 사자봉 ⇒ 통천문 ⇒ 천황봉 ⇒ 구정봉 ⇒ 향로봉 ⇒ 미왕재 ⇒ 도갑사로 이어지는 종주 코스로 천황사에서 시작하여 영암아리랑 노래비를 지나 구름다리와 주봉인 천황봉을 거쳐 구정봉(마애여래좌상), 향로봉, 미왕재를 지나 도갑사 쪽으로 내려오면 된다. 약 9km의 거리로 소요시간 6시간이 예상되는 코스이다.

국립공원 월출산을 알리는 표지석을 시작으로 아스팔트 포장 도로를 5분 정도 걸으면 통나무를 길게 놓아 만든 계단이 나오고 영암아리랑 노래비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돌계단 산길을 5분 정도 따라가다 보면 갈림길이 나오고 왼쪽으로 100m 정도 오르면 천황사 절터가 나온다. 2001년 4월에 화재로 소실되어 빈터만 남아있는 절터 왼쪽으로 조릿대나무 산길을 따라 올라간다. 이곳부터는 상당히 가파른 암벽들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구름다리 0.3km 표지판이 보이면서 길은 더욱 가파라진다. 바위 사이에 난 길을 오르다 보면 쉼터에 이르고 그 옆에 구름다리가 나온다. 

바람폭포 옆의 사자봉과 매봉을 연결하는 구름다리는 지상 120m 높이에 건설된 길이 52m, 폭 0.6m의 국내에서 가장 긴 구름다리로 협곡 위에 설치되어 있는 월출산의 명물이다. 많은 등산객들이 오르고 내리면서 정체가 매우 심하다. 협곡을 따라 불어 오르는 바람이 청량감을 준다. 산은 온통 바위들이 뒤덮고 있다. 정상인 천황봉을 비롯하여 구정봉, 향로봉, 장군봉, 매봉, 사자봉, 주지봉, 죽순봉 등 기암 괴석들이 마치 거대한 수석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남도의 산들이 대부분 완만한 육산인데, 월출산은 숲을 찾아보기 힘든 바위산으로 산세가 아름다워 예로부터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운다. 

 
산은 언제나 오름의 길이 있으면 내림의 길이 있다. 천황사 1.5km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갑자기 길은 아주 급경사의 내림길로 돌변한다. 그렇게 5분 정도를 내려서면 서서히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급한 오르막길은 나무계단과 철계단으로 이어지고 한 발 한 발 오름의 길이 점점 힘들어진다.

산악인의 백서에 글귀처럼 "언제나 절망도 포기도 없다 온갖 고난을 극복할 뿐". 그렇게 인내하며... 거친 숨을 내쉬며 오르고 또 오르고 있을 뿐이다.
바람골로 불리는 계곡길을 따라 오르면 기암괴석이 즐비하게 늘어선 능선길에 이어진 자잘한 돌밭길이 나타난다. 여기서 다시 암봉 사이를 돌아가며 몇 개의 철사다리를 오르내리고 암벽을 지나가다 보면 통천문이란 바위굴에 다다른다. 천황봉을 오를 때 만나는 마지막 관문의 바위로 이 굴을 지나야 천황봉에 오를 수 있다. 작은 바위와 바위가 서로 기대어 이루어진 문. 그 문을 하늘로 통하는 통천문이라한다. 

13시 5분 그 문을 지나면 곧바로 나무계단의 내림길이다. 이 바위굴을 지나면 시원한 바람과 함께 월출산의 북서쪽 능선이 펼쳐지고 영암고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5분 정도 내림길과 오름길을 반복하고 힘차게 마지막 철계단을 오르면 정상인 천황봉이다. 갑자기 안개가 자욱하게 끼면서 산아래 모든 것들을 덮어버린다. 맑은 날에는 장흥군 일대와 목포시, 그리고 멀리 두륜산과 무등산까지 보인다고 한다. 천황봉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극락보전(국보 제13호)으로 유명한 무위사가, 서쪽에는 해탈문(국보 제50호)이 있는 도갑사가 자리하고, 구정봉 아래 암벽에는 높이 8.5m의 마애여래좌상(국보 144호) 등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정상은 동시에 수십명이 앉을 수 있는 평평한 암반으로 정상 표지석이 서 있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월출산 천황봉에 보름달이 뜬다." 하춘하가 부른 영암아리랑 노랫말이 말해 주듯 서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일몰이 장관이고,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 여름에는 시원한 폭포수와 천황봉에 항상 걸려있는 운해,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산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산이 허락하기에 오를 뿐이고, 정상은 반환점일 뿐이다. 험한 급경사에 사람들이 서로 내려가려고 정체가 심하다. 조심조심 내려오자 안개가 거치기 시작하면서 눈앞에 주능선이 시원스럽게 펼쳐지고 건너편으로 보이는 구정봉까지 크고 작은 암봉이 서로 조화를 이룬다. 갖가지 형상의 바위들을 감상하며 그리 길지 않은 능선길을 지나간다. 14시 15분 일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바람이 분다는 작은 고갯길 바람재를 지나 베틀굴에 도착한다. 

임진왜란 당시 이 근방에 사는 여인들이 난을 피해 이 곳에 숨어서 베를 짰다는 전설에서 생긴 이름이다. 굴의 깊이는 10m쯤 되고, 굴속에는 항상 음수(陰水)가 고여 있어 음굴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굴 내부의 모습이 마치 여성의 국부와 같은 형상에서 생겨난 이름이라 한다. 

곧바로 구정봉에 오른다. 구정봉에 오르려면 한사람 겨우 지나갈 정도의 동굴 같은 바위틈을 지나야 한다. 구정봉은 월출산의 제2봉(해발 738m)으로 20여명이 앉을 수 있는 암반으로 바위 위에는 항상 물이 마르지 않는 아홉 개의 웅덩이가 있다고 해서 붙어진 이름이라 한다. 오랜 세월 동안 화강암이 물에 삭아서 가마솥처럼 파인 웅덩이로써 큰 것은 지름이 3m이고 깊이는 50cm 정도가 된다. 옛날 동차진이란 사람이 이곳에서 하늘을 향해 오만과 만용을 부리다가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아홉 번의 벼락을 맞아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월출산 내에서는 가장 빼어난 절경으로 이름난 곳이다. 14시 40분 구정봉에서 내려와 갈림길에서 바위를 등지고 간단하게 점심 식사를 마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국보 제144호 '마애여래좌상'은 구정봉에서 500여m 쯤 떨어진 벼랑 아래 큰 바위에 새겨진 석불이다. 거대한 바위를 움푹 파가면서 새긴 불상으로 몸길이가 6m나 된다고 한다. 아쉽게도 이 국보를 보지 못하고 억새밭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억새밭으로 향하는 부드러운 능선에는 연꽃송이, 사자, 뱀의 머리, 매의 부리, 죽순, 붓끝 같은 기암 괴봉이 도처에 널려 있어 산행이 지루하지 않게 한다. 구정봉에서 향로봉을 지나면 미왕재이다. 산행 중에 억새밭이라는 안내표시가 군데군데 있는데 이 억새밭이 미왕재를 말한다. 억새꽃이 만발하여 바람에 흔들릴 때면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 충분하겠지만 지금은 가을의 끝자락이어서 그리 볼품이 없다. 

여기서부터 도갑사까지는 가파른 내리막길이지만 부드러운 흙길이고 나무계단이 놓여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온산을 붉게 물들였을 낙엽들이 마치 카펫을 깔아 놓은 것처럼 늦가을 의 정취를 더하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겨울이 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도갑계곡을 따라 삼림욕을 즐기며 여유있게 하산길을 내려온다. 

16시 15분 도선수미비각과 부도전이 보인다. 주위에 아직 단풍이 남아 마지막 가을을 정리한다. 

10여분 여유 있는 발걸음을 옮기자 아담한 고려시대 5층 석탑과 석등을 앞세운 대웅보전이 조용히 나그네를 맞아준다. 

도갑사(道甲寺)는 신라시대 통고(通高)에 의해 창건되었다. 원래 이 자리에 '문수사'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여기서 어린 시절을 보낸 도선국사가 그 터에 다시 사찰을 지어 도갑사로 개창하였다고 한다.

속세의 먼지를 털고 어지러운 마음을 가다듬어 준다는 해탈문(국보 제50호)을 나와 계곡을 따라 숲길을 내려가면 오른쪽에 도선대사와 수미왕사의 공적을 새긴 높이 4.8m의 비석이 보이고 일주문이 반긴다. 일주문을 나오면 수령 450년 된 높이 20m의 보호수 팽나무가 눈길을 끈다. 

제 1주차장(소형)을 지나 산악회 버스가 주차해 있는 제 2주차장(대형)을 향해 포장 도로를 걷다보니 길가에 단풍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발길을 잡는다. 

어김없이 권사장님이 김치찌개를 맛있게 끓여놓고 산행에 지친 산꾼들을 맞이한다. 온누리늘푸른 산악회원들과 어우러져 산행 뒤풀이를 마치고 대전으로 향한다.

날씨가 궂을 때 야구장을 찾는 사람이 진정한 야구팬인 것처럼 날씨가 궂을 때 산을 찾는 사람이 진정한 산꾼이라는 권사장님의 말씀이 오래 동안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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