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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남덕유산(황점-삿갓재-삿갓봉-월성재-황점)

2004년 1월 25일 (일)

설 연휴 마지막날이고 갑자기 찾아온 동장군이 며칠째 맹위를 떨치고 있는 탓에 오늘 산행에 나선 사람은 다섯명이다. 덕유산에 눈이 많이 내렸다는 소식에 아름다운 눈꽃과 설경을 기대하며 산꾼들을 태운 버스는 예정보다 10분 늦은 7시 40분 대전을 출발한다.

8시 10분 안영요금소로 진입하여 5분 뒤 산내분기점에서 대진고속도로로 빠져 거침없이 달린다. 8시 50분 덕유산휴게소에서 10분간 정차한다. 마침 소월산악회 버스가 바로 옆에 정차하며 아는 얼굴들이 내리기에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권사장님이 남덕유산 가는 길을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9시 15분 서상요금소를 빠져나가 좌회전해서 26번 국도를 타고 진행하다 영각사 조금 못 미쳐 오른쪽으로 1001번 지방도로를 타고 남령재를 넘는다. 굽은 산길에 내리막길로 얼어있어 매우 미끄럽다. 차가 설설 긴다.

9시 40분 황점 마을에 도착한다. 남덕유산은 3대강의 발원샘을 갖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왜구들과 싸운 덕유산 의병들이 넘나들던 육십령은 금강(錦江)의 발원샘이며 정상 남쪽 기슭 참샘은 거룩한 논개의 충정을 담고 있는 진주 남강(南江)의 첫물길이 되며 북쪽 바른골과 삿갓골샘은 낙동강(洛東江)의 지류 황강(黃江)의 첫물길이다. 월성계곡 상류에 위치한 황점 마을은 옛 이름이 삼천동(三川洞)이다. 덕유산 산행하면 으레 향적봉을 목표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거의 모든 등산로가 향적봉을 향해 뚫려 있으나 등산객들이 별로 찾지 않는 남덕유산도 향적봉에 견줄만한 산세를 지닌 산이다.

향적봉이 백두대간에서 약간 비켜 나 있는 반면 남덕유산은 백두대간의 분수령을 이루므로 백두대간 종주 팀들에게는 오히려 향적봉보다 더 의미 있는 산이다. 남덕유를 산행할 경우엔 대개 육십령에서 함양군 서상면으로 들어가 영각재에서 올라가는 코스를 택하나 거창군의 오지 북상면 황점에서 삿갓골로 들어가 삿갓골재-삿갓봉-월성재-남덕유산-영각재-황점을 연결되는 원점회귀 산행 코스는 접근하기가 용이하고 호젓하여 좋은 인상을 주며 삿갓골재에서 월성재까지 능선타기는 덕유산 종주의 기분을 맛보기에도 충분하다.

월성계곡의 상류 끝 마을인 황점에는 농가 10여 호가 모여 있는 깊은 산골 마을이다. 

버스 정류소 옆에 나씨 효자비각이 세워져 있고 종점상회에서 50여m 떨어진 곳에 황점매표소가 산행기점이다.

정상쪽을 바라보니 생각보다 눈이 많이 보이고 계속해서 눈발이 날려 시야가 희미하다. 기온도 매우 차갑다. 9시 50분 단단히 산행 채비를 갖추고 농가를 지나 계곡으로 들어선다. 

700여m를 넓은 산길을 따라 들어가다 나무다리로 계류를 건너 삿갓골로 접어든다. 오름길이다. 계곡은 눈 속에 파묻혀 깊은 겨울잠에 빠져있고 산은 온통 흰눈을 뒤집어쓰고 있다. 10시 20분. 연이어서 두 개의 철제 다리를 건너고 곧이어 나무다리를 건너면 삿갓골재(대피소) 1.7km 이정표가 보인다. 

이마에 땀이 흐른다. 자켓을 벗어 배낭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고 아이젠과 스패츠를 착용한다. 10시 55분 삿갓재대피소 0.8km 이정표가 서 있는 '쉬어 가는 곳'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숨을 돌린다. 

길은 점점 경사를 더해가고 눈발은 쉬지 않고 날린다. 11시 15분 삿갓골재 0.5km 이정표가 보인다. 지난달 소백산 산행에 이어 두 번째 산행에 나선 은선님이 힘이 드는지 쉬어가자고 한다. 살얼음 깨고 물 한 모금 목으로 넘기자 온몸이 떨린다. 살짝 언 영양갱이 꿀맛이다. 산행은 계속된다. 
 
11시 35분 나무 계단을 오른다. 머리 위로는 하얀 설화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겨울 속 깊이 빠져든다.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설경을 바라보면 마치 신선이 살고 있는 곳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11시 40분 나무 계단을 다 오르자 삿갓재(1280m) 대피소에 닿는다. 갈림길이다. 오른쪽은 동업령을 거쳐 덕유산 향적봉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이 삿갓봉을 거쳐 남덕유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바람이 옷 속으로 파고든다. 재빨리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 이른 점심 식사를 한다. 이미 대피소 안은 등산객들로 만원이다. 벤치에 자리를 잡고 컵라면에 은선님이 건네는 보온 도시락 속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밥이 그 어떤 진수성찬도 부럽지 않다. 차 한잔으로 40분간의 여유로운 식사를 마치고 스패츠와 아이젠을 착용하면서 다시 산행을 서두른다. 이곳부터 월성재까지는 2.9km 남덕유산 정상까지는 4.3km이다. 시작부터 무릎까지 눈이 쌓인 오름길은 네 발 아이젠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육발 아이젠을 착용한 진호님이 선두에 나서 은선님과 혜숙님을 끌어올린다. 지나온 길에 보았던 설경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황홀경에 빠질 만큼 아름다운 설경이다. 모두들 탄성의 연발이다.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눈꽃에다 무릎 위에까지 차 오르는 하얀 눈더미는 동화의 나라에 온 착각을 부른다. 원근감을 알 수 없는 무채색 세상에 나그네들은 아예 몽롱해진다. 

눈꽃 터널 오름길을 지나 13시 정각 ←삿갓봉이라는 표지가 보이는 갈림길이다. 발자국이 사라졌다. 먼저 지나간 사람들이 삿갓봉을 거치지 않고 우회해서 월성재로 향한 모양이다. 진호님이 나무에 매달린 표시기를 찾아 러셀하면서 길을 열고 일행이 뒤따른다. 눈이 많이 쌓인 곳은 허리까지 묻힌다. 태어나서 처음 하는 경험들에 모두들 즐거워한다. 

혜숙님은 추억을 남기느라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그러나 이곳은 낭만만 있는 곳이 아니다. 계곡에서 올라오는 찬바람이 거센데다 깊은 눈길에 체력소모가 심하다. 뒤따르던 다른 등산객들이 앞으로 치고 나가지 않는다. 러셀을 기다리며 주춤거린다. 13시 15분 드디어 삿갓봉(1418.6m)에 도착한다. 탁 트인 시야가 시원스럽다. 삿갓봉은 남덕유산 산행의 경관을 집약하는 장소로 무룡산이 지척에 보이고 다른 능선의 산들도 더욱 가까이 보여 가장 아름다운 조망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볼을 할퀴고 지나가는 바람에 밀려 단체 기념사진만 찍고 서둘러 내림길로 들어선다. 

가파른 내림길에 오궁(오리궁둥이 모습을 하고 탄다고 해서 붙인 이름)썰매를 타며 마냥 모두들 동심으로 돌아가 즐거워한다. 14시 남덕유산 3km 이정표가 서 있는 지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사라졌던 발자국이 다시 나타난다. 앞서가던 다른 팀 등산객중 한 명이 다리에 쥐가 난다고 주저앉는다. 진호님이 비상용 채혈침으로 찌르고 주무르자 다시 일어나 걷는다. 고맙다며 귤을 몇 개 건넨다. 은선님이 다리가 안 좋다며 잠시 걸음을 멈추고 쉬어가자 한다. 갈증은 나는데 물통의 물이 얼어 마실 수가 없다. 볼펜조차 얼어서 글씨가 쓰여지지 않는다. 
 
14시 25분 월성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올라선다. 하얀 능선과 파란 하늘이 금을 긋는다. 계곡너머로 서봉이 솜털 같은 하얀 고깔을 쓰고 있다. 먼저 내려선 일행이 월성재에서 손을 흔든다. 가파른 내림길이다. 넘어지고 미끄러지며 내려서 14시 30분 월성재에 도착한다. 갈림길이다. 

날리는 눈발에 시야가 흐려 덕유산 정상이 보이지 않는다. 남덕유산의 산정에는 있는 참샘은, 겨울에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온수이고, 여름에는 손을 담글 수 없을 정도로 찬물이 솟아난다고 한다. 임진왜란때 일본인들이 이 산을 보고는 '크고 덕이 있는 산에서 싸울 수 없다' 하여 퇴군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덕유산 정상 1.4km 왕복 시간 반은 소요된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망설인다. 정상에 다녀오면 17시가 넘어야 황점에 도착하게 된다. 오늘은 실컷 겨울 등산다운 산행을 했으니 정상 정복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하산하기로 한다. 월성재에서 바랑골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하산한다. 내림길은 가파르다. 오궁썰매를 즐기며 하산한다. 15시 50분 길 오른편에 샘이 보인다. 이 혹한에 얼지 않고 졸졸 나오는 샘이 신기하다. 한 그릇 가득 받아 갈증을 해소하고 길을 재촉한다. 진호님은 뛰다시피 하산한다.

15시 황점 3km 이정표를 지나고 15시 20문 나무 계단을 만난다. 폭포와 소와 담이 어우러진 비경지대는 깊은 겨울잠에 빠져있어 아쉬움을 준다. 미끄러운 산사면에는 로프가 설치돼 하산을 돕는다. 산판길이 시작된다. 길이 뚜렷하고 눈이 덮여 있어 걷기가 좋다. 산판길은 ‘마지막 계곡’ 이정표가 있는 곳까지 느긋하게 이어진다. 개울을 건너면 ‘덕유 08-01’ 이라 적힌 표지목이 있다. 15시 30분 흙길이 보이고 커다란 안내도를 조금 지나니 월성재 3.7km라고 적힌 이정표가 서 있다. 이곳이 월성재 입구. 황점매표소에서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100여m 쯤 서상면쪽 이동하여 길이 꺾이는 모퉁이 오른쪽이다.

스패츠와 아이젠을 벗고 버스에 오른다. 모두들 배낭에서 간식들을 한꺼번에 쏟아낸다. 거창으로 향하는 길 오른쪽으로는 월성계곡과 사선대 등 아름다운 계곡경치와 덕산정 등 멎진 정자가 산행에 지친 나그네를 달랜다. 거창을 지나 무주로 향한다. 성우님이 안내한 무주 식당에서 먹은 저녁식사, 구수한 청국장과 토속적인 반찬에 갓 지어낸 흰쌀밥 또한 산행의 즐거움을 배가시키며 이어준다. 추운 겨울날 남덕유산에서 만끽한 천연계의 아름다움을 가슴에 간직하고 많은 분들이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며 다음 산행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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