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10. 19(일)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주섬주섬 배낭을 챙겨 6시 30분 산악회 버스에 오른다. 7시 30분 서대전 톨게이트를 빠져나간 버스는 호남고속도로를 달린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농촌 마을에는 주렁주렁 달린 감들이 가을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여산 휴게소에서 20분간 정차하고 9시 20분 광주톨게이트를 빠져나간다. 1번 국도와 광주 제 2순환도로를 거쳐 29번 국도를 지루하게 달리던 버스는 10시 25분 곰치 휴게소에서 10분간 정차한다.
다시 화순을 거쳐 고속도로 수준의 2번 국도를 따라 40여분 달려 장흥읍에 다다르고 장흥읍에서 관산으로 길을 잡고 약 20분 달리자 제10회 억새축제가 열리는 천관산이 보인다. 넘치는 축제 인파와 차량들 때문에 주차장 1km 전방에서 하차하여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20여분 정도를 걷는다. 도로 양쪽에는 축제에서 빠지지 않는 먹거리 상인들이 장사를 하고 있다.
오른쪽에 정자가 하나 보이고 갈림길이 나타난다. 왼쪽 1코스는 정상인 연대봉으로 곧바로 오르는 길이고, 오른쪽 2코스와 3코스는 금강굴을 경유 환희대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길이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조금 더 걸으면 수령이 600년인 소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위풍 당당하게 서 있고 장천재가 보인다.
본격적인 산행은 장천재(長川齋)를 기점으로 시작된다. 장천재는 조선 후기 실학자로서 천관산의 인문지리서를 펴낸 위백규 등 여러 학자들이 수학한 곳이라 한다.
12시. 체육공원을 지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가파른 산길을 10분 정도 묵묵히 오른다. 이마에 땀이 촉촉이 젖는다. 곧바로 평지와 내리막길이 5분 정도 이어지고 다시 오르막길을 20분 정도 올라 조망 좋은 바위 언덕에 이르면 탁 트인 남해안의 조망이 위안을 준다. 선인봉인듯한 바위를 등받이 삼아 잠시 휴식을 취하며 바위의 행렬을 바라본다.
아기바위, 사자바위, 종봉, 천주봉, 관음봉, 선재봉, 대세봉, 석선봉, 돛대봉, 구룡, 갈대봉, 독성암, 아육탑 등을 비롯 수십 개의 기암괴석과 기봉이 꼭대기 부분에 비죽비죽 솟아 있는데, 그 모습이 주옥으로 장식된 천자의 면류관 같다하여 천관산이라 불렀다고 하며, 신라 김유신과 사랑한 천관녀(天官女)가 숨어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한 사람만이 지나갈 수 있는 좁은 등산로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속도를 낼 수가 없다. 올라가는 사람과 내려가는 사람이 한데 엉켜 정체가 심해서 답답하다. 다시 20분을 오르자 종봉에 금강굴이 보인다. 바위에 생긴 조그만 굴인데 이름에 비해 초라하기 짝이 없다.
노승봉과 대세봉 그리고 천주봉과 같은 수많은 기암이 환희대까지 줄줄이 이어진다. 안내판 설명에 의하면 천주봉은 천주(天主)를 깎아 기둥으로 만들어 구름 속으로 꽂아 세운 것 같아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산 오름 길에 느낀 바, 천관산 주인은 바위인 듯 하다. 산등성을 포복하듯 슬며시 드러누운 여타 산의 바위와 달리 여기 바위는 고개는 빳빳, 등은 곧추세운 열혈남아의 분기탱천한 자세다. 그 모습 물끄러미 들여다 보다 심상찮음을 발견한다. 누가 일부러 집어다 가져다 놓지 않고서야 도저히 이룰 수 없는 형태. 바위는 퍼즐처럼 서로 아귀를 맞춘 자세로 한 덩어리를 이룬다.
어느덧 완만한 곡선의 능선 고개에 닿는다. 거치러진 숨결이 한결 편안하게 돌아온다. 환희대다. 환희대는 책바위가 네모나게 깎아져 서로 겹쳐 있어서 만 권의 책이 쌓여진 것 같다는 대장봉 정상에 서 있는 석대로 이 산에 오르는 자는 누구나 이곳에서 성취감과 큰 기쁨을 맛보게 되리라고 안내판에 적혀있다.
이곳부터 정상인 연대봉까지 1km는 탁 트인 광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짓눌렸던 시간을 보상이라도 해주듯 경치가 장관이다. 거의 평지와 다름없이 완만하게 이어진 산마루. 무성하게 자란 억새 군락이다.
패라글라이딩 동호회원들이 하나 둘 씩 산아래 남해 바다를 향해 비상한다.
연대봉에서는 억새축제가 열리고 있었고 사회자는 산이 바위로 이루어져 봉우리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천관산은 지리산, 월출산, 내장산, 내변산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중 하나라고 한다.
산 정상을 수놓은 은빛 억새의 은은한 물결 너머로 남해 바다가 아련하게 가물거린다. 다도해 국립공원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고 기암괴석과 봉우리들이 계곡과 조화를 이뤄 절경을 이룬다. 천관산 정상에서 맛볼 수 있는 풍경으로 바위의 행렬과 어우러져 억새의 가을 정취가 더욱 짙게 풍겨 나온다.
하산은 능선을 따라가다 불영봉을 거쳐 관흉쪽으로 내려간다. 멀리 남해 바다가 보이는 조망 좋은 넓은 바위에 혼자 앉아 늦은 점심 식사를 한다.
관흉으로 내려가는 길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 길이 뚜렷하지 않다. 선두가 지나가면서 붙인 안내 표시기를 따라 산길을 헤치며 약간 지루하게 걷다보면 대덕 노씨 중시조 묘가 보이고 23번 국도로 내려서게 된다.
버스가 정차해 있는 상천까지 약 2km를 아스팔트길을 따라 이동하면서 산행은 끝이 난다.
주차장에서는 산행 뒷풀이가 한창이다. 따끈한 김치찌개에 밥 한 덩어리는 진수성찬 부럽지 않은 꿀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