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8(일)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으로 유명한 경북 영주의 부석사를 모르는 이는 별로 없다. 하지만 그 사찰과 이름도, 창건설화도 똑 같은 충남 서산의 부석사를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서산의 '돌이 떠있는' 사찰 부석사(浮石寺)는 도비산(島飛山) 자락에 들어앉아 있다.
도비산(島飛山)은 바다 가운데 '날아가는(飛) 섬(島)' 같다 해서 지어졌다는 설이 있고, 또 매년 봄이면 산 전체에 복숭아꽃이 만발해 복숭아 '도(桃)', 살찔 ‘비(肥)’를 써서 ‘도비산(桃肥山)’이라고 한다는 설도 있다.
태종대 왕 도비산 강무 기념비
조선조 제3대 태종이 셋째 아들인 충녕대군(제4대 세종대왕)을 대동하고 1416년 2월 16일에 7,000여 명의 군사와 함께 이곳 도비산을 직접 방문하여 사냥하였던 곳이다.
이 사냥은 단순한 사냥이 아니라 조선시대 임금이 참여하는 군사훈련의 일종으로 강무(講武)라고 부른다.
서산지역에서 이곳 도비산을 택한 이유로는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부석면 창리(왜현리) 지방에 왜구의 침입이 잦았으므로 도비산에 올라 이를 살피기 위한 일이었을 것으로 판단되며, 이 해미성의 축조를 구상하여 다음 해인 1417년부터 1421년까지 해미읍성을 축조하게 되고, 덕산에 있던 충청 병마절도사영을 해미읍성으로 옮기는 등 충청 서해안 방어를 위한 큰 역사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우리 고장이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국방의 역할을 담당하였던 지역으로 대왕께서 친히 궁중을 떠나 장기간 지방에 머물며 지방을 살살이 돌아본 일은 매우 드문 일이라 할 수 있다.
▶ 태종대왕(1367~1422): 조선 제3대 왕(1400~1418)이며 이름은 방원, 자는 유덕, 태조의 다섯째 아들임.
▶ 세종대왕(1397-1450): 조선 제4대 왕(1418~1450)이며 이름은 도, 자는 원정(치과) 태종의 셋째 아들임.
부석사는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문무왕 17년(577년)에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덕숭산 수덕사(修德寺)의 말사이다. 창건에는 여러 가지 이설(異說)이 있다.
신라 고승 의상과 관련된 서산 부석사의 창건설화는 이렇다. 의상이 당나라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할 때였다. 대사를 사모했던 당나라 여인 선묘낭자가 결혼을 애원했으나 의상은 거절하고 배에 올랐다. 선묘낭자는 바닷물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신라에 돌아온 의상은 그녀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이곳 도비산에 절을 세우려했으나 주민들의 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이때 검은 바위가 떠올라 "절 짓는 일을 방해하면 큰 재앙을 내리겠다"고 위협했고, 그 덕에 불사는 무사히 진행될 수 있었다.
의상이 이 절을 창건할 때 도둑의 무리가 몇 번이나 달려들어 허물어버리자, 선묘(善妙)의 화신(化身)인 용(龍)이 크게 노하여 큰 바위를 공중에 띄워 빙글빙글 돌리면서 금시라도 떨어뜨릴 기세를 보였다. 도둑들은 혼비백산하였고, 절을 창건한 뒤 선묘의 호법(護法)을 기념하기 위하여 부석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 설화는 경상북도 영주의 부석사에 얽힌 설화이므로 의상의 창건 또한 신빙성이 없다. 현재 절 앞 10㎞ 지점의 바다에 부석섬이 있고 이 절이 있는 산 이름을 섬이 날았다는 뜻에서 도비산이라 한 것이 모두 이 설화와 관련된 것이다.
또 다른 설에는 고려 말의 충신 유금헌(柳琴軒)이 망국의 한을 품고 물러나 이곳에다 별당을 지어 독서삼매로써 소일하였는데, 그가 죽자, 승려 적감(赤感)이 별당을 사찰로 변조하였고 사찰명도 바다 가운데 있는 바위섬이 마치 뜬 것같이 보이므로 부석사라 하였다고 한다.
극락전 내에 봉안되어 있었던 아미타삼존불은 1980년에 도난당하였다. 현재 일본 쓰시마 관음사(觀音寺)에 있는 금동관음보살상은 1330년(충혜왕 17)에 이 절에서 조성하여 봉안한 것인데, 고려 말에 왜구에게 약탈당하였던 듯하다.
부석사의 경내에는 극락전, 안양루, 관음전, 산신각 등이 있다. 극락전에 모셔진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숙종 15년 1689에 숙종의 왕자의 증가 탄생한 것을 기념하여 만든 것이다. 원래는 용봉사라는 절에 있었으나 1905년 이곳으로 옮겨 왔다. 산신각에는 산신과 함께 선묘남자와 용왕을 모셨으며, 산신각에서 산 위로 좀 더 올라가면 만공이 수행하던 토굴이 있다.
큰 법당인 극락전과 안양루가 마주보고 섰고, 극락전 옆으로 요사채인 목룡장과 심검당이 나란히 붙어있다. 부석사의 건물들은 보잘 것 없다.
내려다본 들판 한가운데 작은 숲속에는 전설 속의 검은여가 있다. 바다 위에 고개만 내밀던 돌로 '부석'의 바로 그 '뜬 돌'로 여겨지던 것이다. 간척공사 이후 82년부터 검은여 주변은 육지로 변했고 돌은 땅 위로 올라섰다. 주민들은 이 바위를 지금도 신성하게 여기고 있다.
산 아래 너른 들판이 펼쳐진다. 툭 터진 시야에 바라만 봐도 배부른 풍경이 한가득이다. 추수를 끝낸 황량한 들판이 부남호와 이어지며 광활하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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