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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55. 오리정골

산행일 : 2011년 6월19일(일)

산행코스 : 의신마을-삼정-오리정골-벽소령대피소-작전도로-음정

 

전주-광양간 고속도로의 전면 개통으로 지리산 남쪽으로의 접근이 빨라졌다. 좌석을 꽉 채운 버스는 유성요금소에서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익산 JC에서 장수방향으로 빠져 새로 개통된 전주- 광양간 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순천방향으로 달린다. 오수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한다. 새로 생긴 오수휴게소의 화장실은 장소도 협소하고 환기가 되지 않아 심한 지린내가 코를 자극한다. 서남원을 지나 구례화엄요금소로 빠져나간다. 섬진강과 지리산의 물이 만나는 화개에서 쌍계사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화개천을 따라 깊숙이 거슬러 올라간다. 쌍계사를 지나 칠불사와 갈라지는 곳에서 약 10여분을 진행하면 마지막 동네가 바로 의신마을이다.

 

지리산 의신마을은 하동군 화개면에서도 가장 산중에 있는 하늘아래 첫 마을이다. 의신마을은 깊은 산골에 불과했지만 남서쪽으로는 남해와 섬진강을, 북동쪽으로는 삼남지방을 연결하던 벽소령이 있어 교통의 요충지였다.

 

의신마을은 요충지인 만큼 수많은 전쟁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의신마을은 굳건히 아픔을 이겨내고 지금도 40여 가구가 지리산에서 자라는 고사리 등 각종 산나물과 고로쇠 수액으로 도시민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 사람들이 찾지 않은 산골이었던 이곳은 어머니의 산 지리산이 빚어낸 천혜의 자연조건으로 부농의 꿈을 이뤄가고 있다.

 

'화개면지'에 따르면 의신은 대성리의 중심 마을로 화개에서도 사찰이 가장 많았던 불교의 요람지였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의신사' 혹은 의신의 암자에서 도를 닦은 '의신조사'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의신마을은 원래 한자로 "依神" 또는 "義神"이었으나 경술국치 이후 의병활동 근거지로 재난을 입게 되자 "神" 대신 "信"을 사용해 지금은 "義信"마을로 고쳐 쓰고 있다.

 

 

의신 윗마을 삼정은 삼각등, 말안장터 등 '세 곳의 길지가 있어 이곳에 묘를 쓰면 세 사람의 정승이 나올 것'이라 하여 삼정 혹은 삼점이 되었다 한다. 삼정에는 벽소령 등산로 말고도 빗점골, 왼골, 사태골, 절골 등의 샛길이 주능선까지 이어지는데 그 중 빗점골은 빨치산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의 최후 격전지이기도 하다.

 

벽소령 대피소의 북쪽은 경남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이고, 남쪽 초입은 경남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 '삼정 마을'이다. 그러니까 벽소령 등산로를 기준으로 남과 북에 각각 '삼정'이란 똑같은 이름의 동네가 있는 셈이다.

 

마천의 삼정은 음정, 양정, 하정을 합친 이름이고, 화개의 삼정은 대성리 안에 속한 작은 마을이란 게 다를 뿐. 어디에서 시작하든 산 밑까지 바짝 들어선 이 마을들 곁을 따라 산행에 나서야 하는데, 마천 삼정(음정)이 벽소령까지 6.7㎞인 반면 화개 삼정은 고작 4.1㎞로 그 거리가 대폭 줄어든다. 다만 화개 삼정에는 버스가 들어가지 못하므로 버스 종점인 의신에서 치자면 이 역시 6.8㎞. 따라서 남이든 북이든, 마천이든 화개든, 삼정을 거쳐 벽소령으로 오르는 길은 비슷비슷한 편이다.

 

 

오리정골 입구 다리에서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오리정골로 들어선다. 골짜기의 이름은 근처의 옛 마을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옛날 근처에 의신마을보다 훨씬 큰 오리정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 오리정골 들머리 (삼정마을 아래 첫번째 다리 )

 

            △ 오리정골은 초반에는 작으마한 소폭들과 못으로 이루어져 있다. 멋진 풍광을 보며 계곡치기를 한다.

 

 

 

 

 

 

 

 

 

 

 

 

 

 

 

계곡 물가 반석에 앉아 펼친 점심은 상추쌈과 참치회를 비롯하여 오삼불고기까지 각종 먹거리로 풍성하다. 즐거운 점심시간은 오랫동안 이어진다.

 

            △ 점심식사

 

 

끊어진 다리를 지나 계곡 끝에서 소로를 만난다.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소로를 따라 계속 진행하면 벽소령대피소 뒤편과 이어진다.

 

 

 

벽소령은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지리산 종주코스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벽소령에서 바라보는 월출은 가장 뛰어나며, 벽소령의 명월은 지리산 10경 중 하나이다. 벽소령이란 이름의 유래도 달밤이면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희고 맑아서 더욱 푸르게 보인다 하여, 푸를 벽(碧), 밤소(宵)를 써서 벽소령이라 한다.

 

            △ 벽소령대피소

 

어찌하다보니 혼자가 되었다. 예상보다 산행시간이 늦어져 비린내골로 하산하려던 계획을 변경하여 편안한 길을 택하고 작전도로로 내려선다. 작전도로는 1968년 1월 발생한 김신조 사태이후 군 특수부대가 이곳에 주둔하면서 만들어진 도로이다.

 

 

처음 가는 길 / 도종환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뿐이다

누구도 앞서 가지 않은 길은 없다

 

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

두려워마라 두려워하였지만

많은 이들이 결국 이 길을 갔다

 

죽음에 이르는 길 조차도

자기 전 생애를 끌고 넘은 이들이 있다

순탄하기만 한 길은 아니다

낯설고 절박한 세계에 닿아서 길인 것이다.

 

 

중간에서 오른쪽 광대골(생이바위골)로 내려서는 지점까지는 걸어본 길이지만 음정마을 끝까지는 처음 걷는 길이다. 혼자 걷는 걸음이 여유롭다.

 

           

 

 

'비린내'의 어원에 대한 유래는, 음정마을 상부의 이 골짜기가 제비가 날아오는 형국이어서 비연래(飛燕來)골이라고 한다는 설과, 소금장수가 등짐 무게를 줄이려고 소금을 버렸다는 생선비린내설이 있다고 한다.

 

음정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이 삼정리 음정마을의 유래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마을 전설에 의하면 음지말 남쪽골짜기를 비리내골, 옛날 선녀가 지상에 내려와 나뭇꾼과 살다가 날개옷을 찾은 뒤 남편과 자식들을 두고 날개옷을 입고 하늘로 올라가는데 그 남편과 아들이 하도 원통하여 눈물을 흘려서 비리내골이 만들어졌으며 그 자리에서 바위로 변하였다고 하는데 현재 벽소령 정상에는 부자(父子)바위가 서 있다."

 

 

산행종점인 삼정리는 산 아래 자리 잡은 하정, 양정, 음정마을을 합쳐 삼정리(三丁里)라 부른다.

 

            △ 삼정리 음정마을 버스정류장

 

            △ 오도재(지리산 제일문)

 

 

           

            ▼ 뒤풀이(오리훈제-중산님 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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