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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중국 야딩 내선코라1

일시 : 2월 13일(일)-2월 14일(월)

이동경로 : 대전-인천공항-청두(成都)-1박-리장(麗江)-샹그리라(香格里拉)

 

여행 후휴증으로 거의 한달 동안 무기력한 상태였다가 이제 서서히 생활이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사진으로 지난 여정을 돌아보며 추억을 떠올린다.

 

바보는 방황은 하지만 현명한 자는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떠나지 못할 이유 99가지 보다 1가지 이유 때문에 떠난다. 배낭을 꾸렸기 때문이다.

 

2월 13일(일)-1일차 : 대전-인천공항-성도

 

오후 2시 30분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인천공항행 버스 승강장에 도착한다. 이번 트레킹의 대장인 산찾사님을 비롯하여 동행들과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인천공항행 버스에 오르면서 여행은 시작된다. 인천공항까지는 예정시간보다 20분 빠른 2시간 40분이 소요된다.

    

 

티켓팅을 한 후 수하물을 부치고 출국수속을 한다. 비행기 탑승 시간까지는 언제나 기다림의 지루한 시간이다. 면세점에서 카메라도 구경하고 무료 인터넷 라운지에서 지인들에게 출국인사 쪽지도 보내며 무료함을 달랜다.

 

 

 

탑승수속이 시작되고 오후 8시 정각 아시아나 비행기는 힘차게 인천공항을 이륙한다. 스촨성 청두까지 비행시간은 약 4시간이 소요된다는 안내방송이 흐른다.

 

기내 작은 스크린에 고도 3만피트(약 9천미터) 비행속도 시속 8백킬로미터 자막이 뜬다. 원래는 운남성 쿤밍(곤명)에서 이번 여행을 시작해야 하지만 지금이 쿤밍 여행의 적기여서 여행자들이 많아 비행기표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스촨성 청두(성도)에서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기내식이 제공되고 음료와 와인 및 스낵도 제공된다. 현지시간 오후 10시 50분 비행기는 스촨성 청두국제공항에 무사히 착륙한다. 기온은 영상 8℃이고 한국과 시차는 -1시간.

 

 

 

숙소까지는 버스로 약 30분 이동한다. 스촨성의 면적은 남한의 약 4배 정도이고 인구는 8500만 명이 거주하며 성도인 청두 인구는 약 1천만 명이라고 한다.

 

* 스촨성(사천성)

사천성(四川省)이란 이름은 양쯔강(양자강), 민장강, 퉈장강, 자링강 등 4대 강이 성내에 흐름으로서 사천성이란 명칭이 붙여졌다 한다.

 

성의 수도는 성도(成都, 청두)로서 인근의 도시에 수많은 유적지와 문화유산 관광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해발 고도 1,000~3,000m의 다량산, 민산산, 다바산, 우산산 등의 산지와 고원이 있고 분지는 적색 토양으로 500m 이하이며 광대하고 비옥한 평원과 공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도는 사천 분지의 서부 평원에 위치해 있다. 서남지구의 과학기술, 상업 무역, 금융의 중심지이자 교통, 통신의 요충지이며 자가용 보유 대수로 중국에서 3~4번째에 속할 정도로 많아 교통 체증도 만만치 않다.

 

사천성은 서부 지역과 동부 지역이 확연하게 구분된다. 동부는 중국 4대 분지 중 하나인 쓰촨분지로 해발고도가 낮고 기후가 온화해 세계적으로 가장 인구가 조밀한 농경 지역이다. 서부는 티벳 고원의 일부이며 평균해발이 3,000m가 넘는 고산지대로 척박한 자연환경과 싸우며 삶을 꾸려온 티베트인들이 사는 곳이다.

 

면적은 48만5,000평방킬로미터로 중국에서 다섯 번째로 크고 인구도 중국에서 세 번째로 많다. 21개 시와 180개의 현급 도시, 소수민족 자치주 3개와 자치현 3개를 관활하고 있다. 서장, 광서 성, 운남 성, 중경, 청해 성, 산서 성, 귀주 성과 맞닿아 있다.

 

역사적 고증에 의하면 사천성에는 은 주 시대에 이미 2개의 나라가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지금의 사천 서쪽 지역에 있던 촉국, 또 하나는 지금의 사천 동쪽에 있던 파국이다. 이 때문에 사천은 파촉의 땅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북송시대 이 일대를 4개의 주로 나누면서 사천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사천이 역사상 가장 화려하게 꽃핀 시기는 바로 유비가 촉나라를 세우고 위나라, 오나라와 경쟁하던 삼국시대였다. 그 후로 사천 성은 정치의 중심에서 멀어졌지만 천부의 땅으로서 누구나 손에 넣고 싶어 했던 중요한 곳이었고, 현대 들어서 중경이 직할시가 되면서 성도와 더불어 서남부 지역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삼국시대에는 촉한의 도읍지로서 제갈공명, 유비 현덕 등이 활약했던 삼국 지역의 후반이 펼쳐진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쉽게도 유적은 남아 있지 않다.

 

 

 

자정이 되어서 숙소에 여정을 풀고 곧바로 잠자리에 든다.

 

 

 

 

2월 14일(월)-2일차 : 성도-리장-중텐(샹그리라 해발 2880m)

 

오전 4시10분. 모닝콜 소리에 눈을 뜬다. 5시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리장행 비행기를 타기위해 공항으로 이동한다. 가로등이 졸고 있는 거리는 이따금 차량이 지나갈 뿐 조용하다.

 

아침은 버스 안에서 중국식 도시락(빵, 소시지, 사과, 우유)으로 간단하게 해결한다.

 

 

구내선 탑승 수속 중 여권과 영문이름이 다른 일행이 있어 약간 지연되었지만 가이드의 수고로 해결되어 7시 30분 사천 항공기에 탑승한다. 기내에서는 비스킷과 생수가 제공된다. 창밖으로 만나는 일출과 운해가 장관이다.

 

 

 

 

 

창밖으로 펼쳐 보이는 옥룡설산은 일행들 모두의 감탄사를 자아내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1시간 10분 정도의 비행을 하고 리장(여강)공항에 안착한다. 착륙을 마치자마자 승객들은 우르르 출입구에 몰려든다. 오히려 여행객으로 보이는 서양인들만 차분히 기다린다. 누가 중국인들을 만만디라고 했던가. 지금 그들에게 만만디의 습관이 남아있는 곳은 지리한 승부처에서 철저히 버티는 것만이 남아 있을 뿐 일상은 항상 조급하다. 그 조급함을 부르는 이유 중에 하나가 돈이다. 그들은 이제 부자가 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공항으로 마중 나온 제이와 인사를 나누고 빵차 3대에 분승하여 리장 시내에 있는 제이 집으로 이동한다. 아침 햇살에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 옥룡설산을 바라보며 약 1시간 정도 달려 제이집에 도착한다. 제이는 가장 먼저 야딩트레킹의 가장 큰 적은 고소이며 가급적 트레킹을 끝날 때까지 금주하라는 부탁을 한다.

 

 

 

△위롱쉬에샨(玉龍雪山 5,596m) 리지앙(麗江) 시내 어디에서나 보이는 만년설의 산.

 

 

10시30분 제이 아내가 준비한 송이 비빔밥은 이번 여행에서 최고의 별미다. 후식으로 꿀박힌 사과와 커피까지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리장고성 관광을 위해 이층 시내버스(요금 1원)에 오른다.

 

 

 

 

 

 

 

 

인구 35만 명이 살고 있는 리장은 옥룡설산 아래 자리한 나시족 자치구다. 윈난성의 북부 <중디엔>과 <따리>의 중간쯤, 해발 2,400m 고지대에 자리한 리장은 남방비단길(실크로드)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8백년 역사의 오래된 도시로 티벳과 통하던 차마고도의 주요한 요충지였다. 13세기까지는 나시(納西)족이 독립국가를 이루고 있었던 곳이다. 장강(長江) 상류지역의 금사강(金沙江)을 인접한 리장 지역의 고성은 원대(元代) 초기에 형성되기 시작하여 후대 많은 차마방들의 발자취를 남긴 곳이다.

 

 

 

 

고성(古城)은 입구의 커다란 물레방아부터 시작되는데 헤이롱탄(黑龍潭)공원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개울을 중심으로 미로처럼 뻗은 골목 좌우로 자리 잡은 전통가옥들에 들어선 카페와 기념품점, 식당들이 영업 중이다.

 

 고성 지역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세월을 잊은 듯 한 분위기에 편안함을 느낀다고 장기간 머무는 여행객들이 많은데, 따리(大理)와 더불어 특히 서양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후티아오샤(虎跳峽) 트레킹과 위롱쉬에샨(玉龍雪山) 관광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참고로 여행책자를 보면 고성 개울을 따라 늘어선 카페 골목에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이 있다고 한다. 이름은 <사쿠라 카페>. 엄청나게 많은 메뉴 중에서 김치찌개가 값도 싸고(18元) 아주 훌륭한 맛에 특히 반찬으로 좋았다고 한다.

 

 

 

사람과 상권의 중심에 형성되는 쓰팡지에(四方街)는 도시 곳곳에 형성된 중심지로 밤에는 공연하는 장소, 낮에는 약속의 광장처럼 쓰인다. 사방으로 길이 있어 이곳에서 옛날 마방들은 각자의 길로 간다.

  

△고성의 중심광장 - 쓰팡지에(四方街)

 

 

 

 

 

 

 

 

 

 

 

 

 

 

 

 

 

 

 

 

 

 

명나라와 청나라 때에 보이현인 이곳을 중심으로 하여 나라 안팎으로 향하는 다섯 갈래의 차마고도가 뻗어 나갔다. 첫 번째 길은 관마대도(官馬大道), 두 번째 길은 티베트로 가는 차마대도(茶馬大道), 세 번째 길은 장라 차마도 (江萊茶馬道), 네 번째는 가뭄 시기의 차 운송길로 이곳에서 쓰마오(思茅), 누오자를 거쳐 난창을 건너 멍리엔으로 가서 미얀마, 다섯 번째 길은 멍라 차마도 이다.

 

 

고성 관광을 마치고 운남성(雲南省)의 대표 음식 중 하나인 쌀국수(미시엔)로 점심식사를 해결한다. 독특한 이름 덕분에 여러 가지 유래가 많지만, 그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다.

 

옛날 과거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에 한 유생이 공부를 하기 위해 집을 떠나 호수 한 가운데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 유생의 아내는 육지에서 호수의 남편을 위하여 뒷바라지를 하던 중, 음식을 나르기 위해 호수까지 가려면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음식이 식는 것을 우려하여 육지와 호수까지 다리를 만들어서 빠르게 음식을 날러 남편에게 따뜻한 미시엔을 만들어 먹였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그리고 유생의 아내가 매일 유생을 위해 식사를 만들어 호수 건너 다녔던 다리에서 유래하여 이 쌀국수의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여행 중 먹을 과일을 사기 위해서 걸어서 재래시장으로 이동한다. 우리나라의 한라봉과 비슷한 과일을 구입했는데 싸고 맛이 좋다. 

 

 

 

 

 

제이집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 후 샹그리라로 이동하기 위해 리장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한다.

 

 

 

 

 

 

 

오후 3시 정각에 출발하는 샹그리라행 버스에 탑승한다. 샹그라리까지는 약 3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중국서점에서 나온 지도를 보면 대충 도로는 4가지로 구분된다. 고속공로(高速公路) / 국도(国道) / 성도(省道) / 현도(县道)

 

고속공로(高速公路) : 제일 좋은 길이다. 하지만 과적으로 인한 도로파손 되어 있는 곳이 상당히 많아서 그리 높은 속도를 낼 수 없는 곳이 많다. 또한 도로공사를 할 때 일정구간 전체를 막고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도착시간을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

 

국도(国道) :  우리나라의 국도와 똑같은 개념이지만 오지에서의 국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가 많다. 몇 십킬로미터에 걸쳐서 비포장인 곳도 있다. 말이 국도지 우리나라의 지방도보다 훨씬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도(省道) : 성급(省級)에서 관리하는 도로이며 우리나라로 이야기 하지면 지방도 수준이지만 오지에서 만나는 성도는 비포장이 태반인 경우도 허다하다. 지도상에서는 그럴듯한 녹색실선으로 표시되어 있지만 정말 혀를 끌끌 찰 정도의 길이다.

 

현도(县道) : 거의 마을길이라고 보면 된다. 비가 많이 오거나 하면 십중팔구 끊어진 길이거나 아니면 끊어진 길 잇는 공사 중인 길이다.

 

이런 도로사정에서 '도착지까지의 거리로 시간을 예측한다는 일은 무의미 하다'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중국 오지는 어디를 가도 도로공사가 현재 진행형이다. 작년 다르고 올 해 다르고....지난 달 다르고 이번 달 다르다..

 

 

 

도로변 화장실 사용료는 5각. 리지앙을 빠져나온 버스는 한참 후에 구절양장의 길에 접어든다. 멀리 장강(長江 양쯔강)의 상류인 진사지앙(金沙江) 줄기 따라 오른쪽으로 옥룡설산이 펼쳐진다. 강폭이 좁아 호랑이가 뛰어 건넜다는 호도협의 트레킹이 시작되는 곳까지 약 2시간이 소요되고 그곳에서 길이 갈라져 4-50분 정도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 고도 3300미터 고개를 넘자 소중디엔이라는 장족마을이 나타난다. 추위가 느껴지고 스투파(백탑)와 타르초 그리고 마니차가 보이기 시작한다.

 

 

 

샹그리라 터미널에 도착한다. 운남성 북부 디창장족자치주의 주도인 샹그리라는 운남성에서 유일하게 티벳탄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원래 이름은 중텐(中甸)에서 2002년 샹그리라(香格里拉)로 개명했다. 해발 3200미터에 위치한 대초원과 4000미터 이상의 고봉이 수 백개. 6000미터 이상의 고산을 13개나 가지고 있는 운남성에서 제일 높은 곳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차마고도(茶馬古道)’라는 단어와 함께 중국 사회에서 급부상한 '샹그리라' 열풍은, 이제 전 세계를 강타하는 매머드 급 태풍으로 변하고 있다. 대체 '샹그리라'란 무엇인가!

 

샹그리라(Shangli―La)'는 영어 단어다.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튼(1900~1954)이 1933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처음 등장하는 샹그릴라는 이후 유토피아, 무릉도원 등과 같은 낙원을 상징하는 이상향을 가리키는 낱말로 자리 잡았다.

 

이 소설에서 샹그릴라는 티베트 고원에 자리한 땅으로 사람들의 수명이 200년에 달하고 100살은 어린애 취급받는 곳이라고 한다.

 

본래 샹그릴라는 티베트어 '샴발라'(Shambala)에서 비롯된 이상향이다. 샴발라는 시간이 정지된 지상낙원에서 생로병사의 고통 없이 살고자 하는 티베트인의 염원에 깃든 극락정토이다.

 

제임스 힐튼이 소설 속에서 묘사한 '샹그리라'의 모습은 이랬다.

문명세계와는 완전히 단절된 티베트고원의 깊은 산 속... 그 입구에는 거대한 피라미드형의 설산과 반달 모양의 깊은 계곡이 지키고 있었다. '샹그리라'는 시간이 멈춘 불로장생의 땅이었다.

 

깎아지른 설산의 중턱에는 푸른 잔디로 뒤덮인 초원이 칼로 잘라놓은 테라스처럼 펼쳐져 있었고, 그 고원의 테라스에는 신비로운 라마교(티베트불교) 사원(寺院 Temple)이 자리 잡고 있었다.

 

라마교와 함께 기독교, 유교, 도교 등 다양한 종교가 함께 공존하는 평화의 땅이었다. 블루문(Blue- Moon)이라고 불리는 계곡에서 황금이 쏟아져 나오는 엘도라도의 땅이었다. 그 부(富)의 힘으로 동양의 정신문화에 서구의 물질문명까지 끌어들인 조화의 땅이었다.

 

2001년 12월 윈난성은 중뎬을 샹그릴라로 만들기 위해 이름마저 '샹거리라'(香格里拉)로 고쳤다. ‘상그릴라’는 이곳 장족의 말로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중국 정부는 2002년 윈난성 디칭장족자치주의 정식 행정 명칭을 샹그릴라현(縣)으로 바꾸었고, 200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시켰다.

 

샹그릴라로 개명한 위력은 컸다. 작년 한 해 중뎬을 찾은 관광객 수는 250만 명을 넘어섰다. 관광객이 뿌린 돈도 10억 위안(한화 약 1950억 원)에 달한다. 1995년 한해 찾는 이가 7만 명에 불과했던 해발 3280m의 작은 티베트인 마을이 세계가 주목하는 관광지로 탈바꿈한 것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첩첩산중이다. 저 멀리 발 아래로 아스라이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드디어 '샹그릴라'에 왔다. 어쩌면 샹그리라는 우리가 살아오는 내내 마음속에서 계속 살아 숨 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었을 뿐…

 

 

빵차에 분승하여 숙소로 이동한다. 마중 나온 태준씨는 이곳에 사는 유일한 한국인으로 나시족과 결혼하여 "자희랑 여행사"를 운영한다.

 

 

 

 

 

야크떼와 말떼를 방목하며 아무렇게나 다니는 돼지들이 곳곳에서 꿀꿀거리며 거리를 활보한다.

 

샹그릴라로 불리는 지역 대부분은 모계 사회 전통과 주혼(走婚)의 풍습을 갖고 있다. 이 결혼 풍습은 여성을 중심으로 가족이 꾸며지고, 남자는 여자와 사랑을 해도 해가 뜨기 전에 그 집을 나서야 한다. 이혼 증가와 가정 파괴로 인한 가정 붕괴, 또 사유재산 남용으로 인해 에너지 과다소비 등이 문제가 되는 이 시기에 이들의 결혼방식은 대안이 아니라도 뭔가 신선한 느낌을 준다.

 

생활력이 강한 모계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나시족과 결혼 조건은 한 달에 300원(한화로 약 6만원)정도는 벌어야 하고 술주정과 외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한다. 태준씨는 경쟁이 싫어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하는데 공감이 간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저녁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향한다.

 

야크고기와 두부피, 감자, 야채 등을 훠궈(샤브샤브)로 허기를 달래고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거대한 마니차가 눈길을 끄는 비산공원으로 이동한다. 계단을 오르자 숨이 가쁘다.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다. 자주 소변을 보게 되고 머리가 약간 아프다. 두통약을 복용하고 난방은 되지 않지만 침대에는 전기장판이 있어 비교적 따뜻하게 취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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