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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립공원

조계산

산행일 : 2010년 11월 28일(일)

산행코스 : 주차장-선암사-큰굴목재-보리밥집-송광굴목사거리-천자암-송광사-주차장(약 9km)

 

11월의 마지막 휴일. 콘크리트 도시를 떠나 일상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평안한 휴일을 보낼 요량으로 구인회 테마산행에 따라 나섰다.


산행지는 그리 높지 않은 산(장군봉 884m)이지만, 1500년이나 된 고찰을 품고 있는 전남 순천의 조계산. 태고종의 본산인 선암사와 조계종의 승보사찰인 송광사라는 두 거찰을 함께 둘러볼 수 있어 매력적이다. 이들이 있어 청량산이라 불리던 동쪽 봉우리와 송광산이라 불리던 서쪽 봉우리를 합해 불교의 큰 맥이 이어지는 곳이라는 뜻의 조계(曹溪)라는 산 이름도 얻게 됐다고 한다.


호남고속도로 승주 나들목을 빠져나와 857번 도로를 타고 선암사(仙巖寺)로 간다. 승주 나들목에서 선암사까지는 약 7km, 10분 거리다. 대전에서 약 3시간 30분 소요.

 

 

선암사 주차장에서 하차하여 시골 아낙들이 펼친 길가의 정겨운 장터를 기웃거리고 선암사 매표소(입장료 1500원)를 지나 산책로를 걷는다.

 

 

 

 

선암사 입구로 들어서면 승선교(昇仙橋)가 가장 먼저 이방인을 반긴다. 홍예교(虹霓橋)인 승선교는 보물 400호로 선암사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우리나라의 무지개다리 중 가장 우아하고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 다리다.

 

 

승선교는 계곡으로 내려와 보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 무지개 아치의 반원 안으로 들어온 강선루와 암반을 흐르는 맑은 계곡 풍경이 일품이다.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올라갔다는 승선교(보물 제400호)

 

강선루를 지난면 삼인당(三印塘) 연못 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에 뿌리를 내린 앙상한 배롱나무가 잠시 걸음을 늦춘다. 삼인당을 한 바퀴 돌아보고 선암사로 향한다.

 

 

 

선암사는 태고종 유일의 총림(많은 승려가 모여 수행하는 곳)인 '태고총림(太古叢林)'으로,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송광사와 쌍벽을 이루는 수련도량이다.

신라 문무왕15년(675)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선암사의 처음 이름은 견강사(見江寺)였는데 뒷산 절벽 바위에서 신라의 국선 화랑도들이 수련하였다하여 "선암사"로 부르게 되었다. 선암사가 위치한 당감(堂甘)은 본디 제의를 올리는 신성한 곳으로, 당은 신이 내리는 신성한 나무를 모시는 집이고 감은 감로수를 뜻하는 말이다. 선암사 약수가 유명한 것도 그로부터 연유한다.

 

△'신선들이 내린 바위'라는 뜻의 선암사 일주문

 

일주문에 들어서면 대웅전을 중심으로 극락전, 관음전, 명부전, 조사전, 칠성각, 산신각, 요사채와 종각이 배치되어 있는 극락정토 도량이며 석축 위 동백나무가 매우 수려하다.


대웅전 앞 좌우에 서 있는 두 개의 석탑은 보물 395호 선암사 3층 석탑이다. 탑이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불교의 상징적인 예배의 대상이다. 두 개의 석탑은 양식과 건립시기(신라시대 후기인 9세기경으로 추정)가 같다.

 

△보물 제1311호 대웅전

 

 

선암사는 태고총림 고찰이라기보다 정감 넘치는 산장의 느낌을 준다. 사찰 안의 분위기도 소박하면서도 고즈넉하다. 전통미를 간직한 크고 작은 전각들, 돌담과 담쟁이의 조화, 주변 경관을 압도하지 않는 조형미가 아름답다. 산사(山寺)는 겨울 분위기가 짙어만 간다.

 

△절집과 절집을 잇는 돌담길은 깊은 산속의 마을길을 걷는 듯 정겹게 느껴진다. 

△고찰답게 많은 절집들이 빼곡히 들어선 가운데 토종매실 나무인 선암매가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맨 나중에 찾은 곳은 문화재로 지정된 뒤간(측간)이다. 맞배지붕에 특이한 건축구조를 가진 선암사의 대변소로 언제 지어졌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적어도 1920년 이전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입구에 들어서면 남자와 여자가 사용하는 칸이 양 옆으로 나뉘어 있다.

 

 

 

 

선암사에서 서부도밭 쪽으로 길을 잡으면 작은 굴목재를, 다리를 건너면 큰 굴목재를 넘는다. 큰 굴목재 쪽이 길이 좋지만 가파르다. 조계산 생태체험야외학습장의 울울창창한 편백나무 숲이 장관이다. 송광사까지는 산길로 6.5㎞ 정도 떨어져 있다.

 

 

△서부도전

 

천천히 고도를 높이다가 숨이 거칠러질 즈음 선암굴목재라 불리는 큰굴목재(굴목이재)에 도착한다. 굴목이재는 선암사와 송광사를 잇는 고개마루다.

 

 

 

큰 굴목재를 넘으면 소문난 보리밥집이 나온다. 이 보리밥을 먹기 위해서 조계산 산행을 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이름난 보리밥집이다.

 

 

 

 

동그란 양은 쟁반에 각종 나물과 채소가 가득한 밥상이 제공되는데 셀프다. 곰삭은 김치와 고소한 나물, 싱싱한 야채를 큰 그릇에 한데 몰아넣고 참기름에 고추장 넣고 쓱쓱 비벼 먹으면 입안이 행복해진다. 장작불 아궁이 위에 걸린 가마솥 뜨끈한 숭늉도 셀프다. 1인분에 6천원. 파전에 막걸리도 함께 즐길 수 있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길을 재촉한다. 맴산골 삼거리를 지나 송광굴목 사거리에서 왼쪽은 유명한 쌍향수가 있는 천자암(天子庵)으로 가는 길이다. 천자암 1.6㎞를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산허리를 타고 돌아가는 길은 등산객들이 많이 찾지 않아 조용하다.

 

 

 

△숯가마터

 

 

 

천자암을 찾은 이유가 순전히 곱향나무 때문이기에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점점 다가갈수록 크게만 보이는 나무, 신기하기만 하다. 두 그루 향나무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쌍향수(雙香樹)란 이름이 붙었는데, 나무 전체가 엿가락처럼 꼬였고, 가지가 모두 땅을 향하고 있다.


 

 

보조국사 지눌스님과  제자인 금나라 왕자 담당스님이 짚고 있던 지팡이를 꽂았더니 가지가 나고 잎이 피었다고 전해진다. 높이 12m, 수령 800년으로 항상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똑같은 기울기로 비슷한 굵기의 나무는 커다란 기둥을 감고 올라가는 넝쿨 같이 느껴진다. 커다란 두 마리의 용을 보는 듯하다. 쌍향수를 이리저리 올려다보며 한참을 구경한다. 어떻게 저런 모습으로 800년 세월을 보냈을까?

 

 

800년을 다정스럽게 서있는 향나무 두 그루. 천연기념물 제88호.

 

△운구재에서 송광사까지는 0.8km가 아니라 1.8km 정도 거리다.

△운구재

양탄자처럼 낙엽이 깔린 호젓한 길을 따라 편안한 걸음을 옮긴다.

 

 

 

 

 

 

천자암에서 약 50분. 송광사로 접어든다. 침계루(枕溪樓)의 붉은 나무기둥과 창문이 주변의 초록빛깔과 어우러지면서 수려한 풍광을 만들고 있다.


선암사와 더불어 조계산의 양대 가람을 이루는 송광사에도 능허교라는 빼어난 무지개다리가 있다. 선암사 승선교에 견줘 크기는 작지만 우화각과 육감정, 침계루 등 주변 전각들과 어우러진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조계산 북쪽 기슭에 자리 잡은 송광사는 합천 해인사(법보사찰), 양산 통도사(불보사찰)와 더불어 한국 삼보사찰(三寶寺刹)로 불리고 있다. 신라 말엽 혜린선사(慧璘禪師)가 작은 암자를 짓고 길상사라 부르던 것을 시작으로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정혜결사(고려후기 불교계의 정풍운동으로 선종과 교종이 서로 갈등하자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으로 결론)를 일으켜 수도, 참선의 도량으로 삼은 뒤부터 국사 16명을 배출한 승보사찰이다.

 

 

 

절 마당으로 들어서자 넓은 공간 사방으로 대웅보전과 승보전, 지장전 등의 건물이 둘러서 있다. 거대한 불상이 모셔진 대웅보전 안에서는 무언가를 기원하는지 모를 이들이 부처를 향해 합장을 하고 있다.

 

 

승보전 왼쪽에 있는 비사리구시가 눈길을 끈다. 송광사는 800년을 함께 살아온 두 그루의 곱향나무 "쌍향수"와  "비사리구시", 어느 순서로든 포개지는 신기한 그릇 "능견난사(能見難思)" 등 세 가지 명물로 유명하다.

 

 

송광사의 3가지 명물 중 하나인 비사리구시는 1742년 남원 세전골에 있었던 큰 싸리나무가 쓰러지자 이것을 가공하여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송광사 대중의 밥을 담아 두었던 것으로 쌀 7가마 분(4천 명분)의 밥을 담을 수 있다고 한다.

 

 

 

 

 

단청 빛깔이 퇴색한 관음전을 돌아 뒤쪽에 이르자 경사가 급한 계단이 언덕 위까지 이어져 있다. 계단을 오르자 송광사 경내가 내려다보인다. 날 듯 한 지붕들이 고즈넉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곳에는 문화재가 많다. 16국사 영정을 모시는 국사전(국보 제56호), 목조삼존불감(국보 제42호), 고려고종제서(국보 제43호), 순천송광사화엄경변상도(국보 제314호) 등 국보 4점과 경전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불교공예품으로 희귀한 유물인 경질(보물 제134호) 등 보물 수십 점이 남아 있다. 그래서 성보박물관도 꼭 들러봐야 한다. 주의 실내는 사진촬영금지!

 

 

[자료사진]

송광사 제6대 조사인 원감국사가 중국 원나라에 다녀오면서 가져왔다는 바루는,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두들겨서 만든 그릇인데도 마치 기계로 찍어낸 것처럼 일률적으로 만들어져 위로 포개도 맞고 아래로 포개도 그 크기가 딱 들어맞았다.


원감국사의 바루를 본 숙종은 궁으로 돌아와 신하들에게 “송광사의 바루가 유명한데, 우리도 그런 그릇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 하명하여 조선 팔도의 유명한 장인들을 불러 모았다. 하지만 송광사 바루처럼 만들기는 똑같이 만드는데 두 개 이상을 만들어 포개보니까 한 줄로 포개지지가 않았다.


결국 모두들 포기하고 돌아가자 숙종이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눈으로 볼 수는 있지만 만들기는 어렵구나.” 그래서 숙종은 송광사에 있는 바루에 지금의 능견난사(能見難思)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지나가는 스님에게 다른 국보와 보물의 위치를 묻자 스님들의 수행 정진하는 곳이어서 일반인은 그곳의 출입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문화재 관람료까지 받으면서 문화재를 공개하지 않은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능허교 아래에도 용머리가 조각돼 있는데 용이 물고 있는 여의주에 엽전 세 냥이 매달려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조선시대 신도들의 시주를 받아 능허교 불사를 벌였는데 그때 쓰고 남은 돈이란다. 시줏돈을 허투루 쓰는 호용죄(互用罪)를 경계하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우화각 아래쪽 다리에 서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잔잔한 개울에 비친 우화각의 모습이 정말로 아름답다.

 

 

 

일주문을 나와 계곡의 경쾌한 물소리를 따라 걸어 내려가 주차장에 닿는다.

 

 

 

△물속 반영1

△물속 반영2

△물속 반영3

 

송광사주차장을 출발하여 순천만으로 향한다. 순천만까지는 40여분 정도 소요. 마침 해넘이가 장관을 연출한다. 조금 만 더 일찍 도착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순천만 일몰

△용광로처럼 발갛게 달아오른 둥근 해가 갈대밭을 붉게 물든인 뒤 첨산 너머로 떨어지는 풍광은 가슴이 아릴만큼 아름답다.

 

 

△순천만 관광열차(요금 1천원)

 

순천만 갈대는 11월 초 서리가 내릴 때쯤이면 머리를 풀어헤치며 솜털뭉치처럼 포근하고 넉넉하게 모습으로 변한다. 그 넓이가 70만 평이나 된다고...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올 것 같다고 했다. 해질 무렵, 혹은 새벽녘에 순천만을 보고 온 사람들은 그렇게 그곳을 추억했다.


"처음 그 노을을 보았을 때 나는 개펄 위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두 손 가득 웅덩이의 물을 담았다. 함께 모은 내 두 손바닥 안에서도 노을이 떴다. 세상의 모든 보석들의 광휘를 용해한 것 같은 그 빛…."(곽재구의 포구기행 - 순천만에서)

 

 

 

 

 

어두움이 내려 앉는다.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호박과 시래기 등 갖은 야채를 넣고 된장으로 간을 한 후 살아있는 짱뚱어를 넣고 끓인 구수한 짱뚱어탕에 꼬막 정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귀가 길을 서두른다. 11월의 마지막 일요일. 구인회 식구들과 조계산에서 하루를 보낸 행복이 물감처럼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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