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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도봉산 Y계곡

 

누가 정말 행복한 사람인가?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이와모토 가츠시미라라는 사람은 "행복이라는 꽃은 감사라는 대지 위에서만 핀다. 그리고 이 꽃은 불평과 불만의 비바람에 순식간에 다 져버린다." 라고 말한다.

다른 조건이 어떠하든지 간에 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면 외형적인 것만으로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인생에 감사할 일이 너무도 많다. 다만 그저 모든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사한 조건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산행일 : 2010년 2월 24일(수)

산행코스 : 도봉탐방지원센타-다락능선-포대정상-y계곡-신선대-코바위갈림길-마당바위-스크린바위-도봉서원-녹야원입구-도봉탐방지원센타(원점회귀 6시간 30분소요)


서울 호산인의 안내를 받아 도봉산의 비경 중 하나인 Y계곡을 탐방하기 위해 KTX에 몸을 싣는다. 동반석을 이용하여 새마을호 요금보다 저렴하게 1시간 만에 서울에 닿는다.


 

서울역에서 도봉산역까지는 지하철로 이동한다. 40여 분 소요된다.

 

 

 

먼저 와서 기다리던 호산인 가족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산행 들머리로 향한다. 도봉산은 서울시 도봉구, 양주시, 의정부시에 위치한 산으로써 산 전체가 암봉으로 이루어진 바위산이다.


도봉산의 능선은 동북쪽으로는 북한산을, 북쪽으로 사패산과 연결되어 있으며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과 서쪽으로 이어지는 다섯 개의 암봉인 오봉, 우이암등 많은 바위 봉들이 많아 등산객들의 명품 등산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도봉' 이라는 명칭은 일제가 1914년 우리나라의 부, 군, 면을 통폐합할 당시 도봉산 아래의 다락원, 서말원, 무수원 등 마을을 합하면서부터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인터넷 검색으로 얻은 도봉산의 유래가 더 그럴 듯하다. 옛날에 도봉산 앞을 지나는 길을 평구도(平丘道)라 했다. 양주에 공무로 다니는 벼슬아치에게 마필을 이바지했던 역인 평구역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과 역 사이에 길을 가다가 공무를 보는 벼슬아치나 길손이 쉬거나 묵어가는 원(院)이라는 것이 있었다. 보통은 30리 간격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이 길에는 원이 유난히 촘촘히 많았다. 지금 남아있는 원만해도 그 이름도 운치있는 서낭당의 무수원(無愁院)을 위시해서 다락원(多樂院), 장수원(長水院), 호원(虎院) 등이 그것이다.


동쪽의 불암산, 수락산도 그렇지만 그보다 더 가까이 있는 서쪽의 깎아 지르는 듯이 수직으로 서있는 도봉산의 우이암, 주봉, 만장봉, 자운봉을 위시하여 사패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수많은 봉들은 지자요수(知者樂水)요, 인자요산(仁者樂山)의 경지를 숭상하는 선비들에게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길(道)에서 봉우리(峰)를 우러러 보는 산이라 해서 도봉산(道峰山)이라 한다. -성철용님의 <포토에세이>에서-


 

 

들머리에 위치한 광륜사는 원래 조선조 조대비가 만년을 보낸 곳이다. 조대비는 조선조 영돈령부사로 풍원부원군으로 피봉된 조만영의 딸로서 순조 세자빈(익종의 비)으로 책봉되었다. 후에 헌종을 낳았고, 헌종이 조선 제24대 왕위에 오르자 왕대비가 되었다. 이곳에 별장을 짓고 만년을 보내며 팔곡대사를 불러 나라의 평안을 위한 기도 및 자식들의 수명장수를 기원했다고 한다.

 

 

 

 

다락능선은 아마도 다락원이란 이름에서 온 듯하다. 다락원 마을이름의 유래를 살펴보면 지금의 의정부시 인접지역에 공송여객(公松旅客)들이 유숙하던 원(院)집이 있었고 그 원집에 다락 즉 누각(樓閣)이 있어서 얻어진 마을이라 한다.


 

 

 

 

 

 

 

 

 

 

멀리 불암산과 그 왼쪽으로 수락산이 조망된다. 산꾼들은 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 등 서울 북쪽 5개산을 한 번에 종주하는 것을 '불수사도북'이라 한다. 지도상 거리만도 40km 가까이 되는 데다 험준한 암릉을 넘어야 하는 난코스다.


 

망월사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조망대에 도착한다. 망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로, 선덕여왕 8년(서기 639년)에 해호화상(海浩和尙)이 왕실의 융성을 기리고자 창건했다.


망월사라는 이름은 대웅전 동쪽에 토끼 모양의 바위가 있고, 남쪽에는 달 모양의 월봉(月峰)이 있어 마치 토끼가 달을 바라보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선인들이 오고 간다는 선인봉(仙人峰 708m)과 높이로는 두 번째지만 희고 큰 화강암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는 만장봉(萬丈峰 718m)의 위용은 도봉산에서 으뜸으로 친다. 봉우리 정상에 자줏빛 구름이 걸렸다는 자운봉(紫雲峰 739.5m)이 가장 도봉산 최고봉이다. '푸른 하늘에 깎아 세운 만 길 봉우리'라는 선인의 시구처럼 도봉산은 예부터 소금강으로 불려왔다.

 

 

 

 

 

 

 

 

도봉산 기름바위를 스쳐 지나 포대정상으로 향한다. 곳곳에 잔설이 미끄러워 조심스럽게 오른다.  발아래 의정부시가지가 펼쳐진다.

 

 

 

 

 

 

 

 

 

 

 

 

널찍한 바위에 앉아 즐기는 점심식사는 세상 그 어떤 보약보다도 훌륭한 보약이다.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시간이다.

 

 

 

 

포대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철난간이 설치되어 있어 보다 안전하게 오를 수 있다.

 

 

 

 

 

 

 

 

 

 

 

 

 

산행대장은 도봉산의 진수를 보여줘야 한다며 가장 험준한 Y계곡으로 안내한다. Y계곡 탐방로는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 등 도봉산의 세 봉우리를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등 경치가 뛰어나 코스다.

 

 

 

 

포대능선에서 신선대에 이르는 약 200m 가량의 Y계곡에서는 글자 그대로 Y자 모양의 깎아 지르는 급경사 암벽을 로프에 의지해 오르내려야 하는 난코스로, 길이 협소해 탐방객이 집중되는 주말과 공휴일에 안전사고와 혼잡을 피하기 위해 일방통행제를 실시해 오고 있다.


포대정상에서 신선대방향으로 '내리막길만 허용'하는 것으로, 신선대에서 포대능선 방향으로 가려면 포대 우회탐방로 삼거리로 돌아가야 한다.

 

 

 

'산 정상에서의 일방통행'이란 말이 생소했지만 Y계곡 위험구간을 직접 보니 수긍이 간다. 가파른 암벽구간을 철난간 하나를 의지해서 양쪽 방향에서 함께 지나가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철난간에 걸린 직벽 앞에선 오금이 저려오지만 안전시설 덕분에  멋진 경관을 즐길 수 있에 마냥 행복하다.

 

 

 

 

 

 

 

 

 

 

 

 

 

우이암의 모습이 잘 보이는 마당바위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등산로 안내판을 보며 걸어온 길을 더듬어본다.   

 

 

 

 

 

 

 

 

 

일명 스크린바위로 부르는 커다란 바위에 오른다.  

 

 

선인봉(仙人峰 708m), 만장봉(萬丈峰 718m), 자운봉(紫雲峰 739.5m) 그리고 신선대, 뜀바위, 코바위, 주봉, 배꼽바위, 칼바위 등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병풍처럼 펼쳐지며 빚어내는 조화는 가히 금강산이 부럽지 않다.


낭떠러지에 비스듬히 누워서 이 경치를 감상하면 여태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황홀한 풍광에 넋을 놓게 된다.

 

 

 

 

 

 

 

 

 

길은 부드럽고 편안해진다. 도봉서원 건너편 계곡에 '고산앙지(高山仰止)'라 새겨진 바위가 반쯤 물에 잠겨 있다. 조선 인조때(1640년) 김수항이 새긴 글씨로, 고산앙지라는 말은 ‘높은 산처럼 우러러 사모한다’는 뜻으로 시경(詩經)의 소아보전(小雅甫田)편에 나오는 글이다. 


 

 

침류대는 조선시대 인조 때 종2품 기의대부에 이른 시민 시인 유희경(1545~1636)이 이곳 계곡 바위에 지은 누각이다. 이름 그대로 맑은 시냇물을 베개 삼아 누워 즐길 수 있는 경치 좋은 곳이어서 도봉산을 사랑한 유희경은 명사들과 이곳에서 시회를 가졌다. 현재는 누각은 없으며 침류대의 주춧돌만 남아 있다.

 

 

도봉서원은 양주목사 남언경이 조선 중종 때 신진 사림(士林) 세력을 배경으로 도학정치를 실현하고자 했던 정암 조광조(趙光祖 1482년~1519년)를 기리기 위해 그가 경치 감상을 위해 자주 찾던 도봉산 자락에 1573년(선조 6)~1574년(선조 7) 세운 서원이다.

1696년(숙종 22)에는 조정의 논의와 숙종의 명으로 조선 후기의 가장 대표적 성리학자인 우암 송시열(宋時烈 1607년~1689년)을 조광조와 함께 배향하게 됐다.

 

수도권 내 가장 대표적인 서원이었던 만큼 역대 왕들의 관심도 각별하여 영조는 ‘도봉서원’이라는 현판을 직접 써 내려주었고, 정조는 직접 방문한 후 제문(祭文)을 내리고, 관리를 파견해 대신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산행의 시작은 항상 즐겁기 마련이다. 들뜬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떠나온 산행의 기분을 끝날 때까지 이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은 도봉산의 멋진 풍광에 취해 그 여운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함께 동행하여 숨겨진 비경을 볼 수 있게 해 준 호산인 가족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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