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사는 법을 배우게 한다.
뜻밖에 의도하지 않은 길을 가게 될 때
계획하지 않은 길에도 즐거움이 있음을 터득하게 해준다.
2009년 8월 2일(일)
캉딩-신도교-탑공-팔미-단빠-일륭
모닝콜이 울리기 전에 삼식이가 아침 식사하러 가자며 문을 두드린다. 아침식사는 호텔에서 제공하는 뷔페다. 식사를 끝내고 숙소를 나오자 운해가 포근하게 감싼 산과 이국적인 풍광이 아름답다. 몇 장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버스에 오른다.
일륭으로 향하는 길고 긴 여정이 시작된다. 티베트의 동쪽으로는 칭장고원과 쓰촨성과 접경을 이루는 ‘캄’(Kham) 지역이 있다. 현지에서는 캄파 또는 캉빠라고 부르고 정식 행정단위는 간즈장족(티베트족) 자치주이나 외부에서는 ‘동티베트’라는 명칭이 많이 쓰인다.
캉딩은 티베트어로 ‘두 강물이 만나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말로 두물머리(양수리)쯤 되나보다. 이곳은 동티베트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간즈장족 자치주의 주도다.
동티베트라고 해서 혹시 무늬만 티베트 아닌가 의심하지만 이 지역은 인구의 70% 이상이 장족으로 1950년 중국에서 가장 먼저 생긴 소수민족자치주다.
1990년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중국은 전체 인구의 약 92%를 차지하는 한족과 55개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족을 제외한 기타 민족은 전체 인구의 약 8%에 불과하다. 이들 민족은 주로 광서, 신강, 운남, 귀주, 서장 그리고 내몽골 등의 변경 지대에 거주하고 있지만, 거주 공간은 전국토의 50 ~ 60%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티베트족을 장족이라고 한다. 현재 장족은 1600만 명으로서 중국 소수민족 중 가장 인구가 많은 민족이다.
검문소에서 통과를 막는다. 가이드가 무슨 수를 썼는지 통과시킨다. 해발 4300미터의 절다산 고개를 넘어가기 위하여 버스는 산허리를 굽이굽이 돌며 비포장 산길을 힘겹게 오른다.
티베트에 가까운 풍경이 펼쳐지더니 중국과 티베트의 분기점 캉빠 제1관문(해발4298m)에 도착한다. 이곳부터 본격적으로 티베트영역이 시작된다.
▲절다산-캉빠 제1관문(해발4298m)
티벳 양식으로 만들어진 둥글고 흰 탑인 영운백탑을 둘러싸고 타르초(불경을 적은 천)가 나부낀다. 우리나라의 직선적인 탑과는 달리 모든 선이 곡선으로 이뤄진 것이 특징이다. 탑 주위를 왼쪽으로 세 바퀴 돌면 소원이 성취된다는 전설이 있다.
산 위 정자까지는 계단이 놓여있고 주위에 수많은 야생화가 피어있다. 고소 때문에 천천히 걸음을 옮겨 정자로 향한다. 왕복 50분 정도 소요. 버스는 다시 굽이굽이 반대쪽 산길을 내려간다.
▲타르초
△사진제공 : 용아
△사진제공 : 용아
신도교에서 타공(塔公)가는 길로 들어선다. 험한 비포장 길이다. 구간구간 시간대별로 교통을 통제한다. 검문소에서 통행시간이 지났다고 막는다. 앞서 가던 지프차들이 차를 돌려 되돌아간다. 역시 가이드가 돈으로 해결했는지 우리 버스는 통과시킨다. 경운기를 탄 장족 가족들의 나들이가 정겹다. 고도 3500미터. 일행 중 고소로 두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생긴다. 때로는 버스가 진흙탕 속에 빠져 현지인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빠져나오기도 한다.
험준한 산허리를 가로질러 깎아지른 듯한 길을 구불구불 달리다보면 시야에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민둥산이 펼쳐진다. 또 다른 세계에 들어온 듯한 풍경이다.
산등성이 곳곳에 문신처럼 새겨진 글씨는 "옴마니반메움"이라는 티베트 글씨로 "온 우주(Om)에 충만하여 있는 지혜(mani)와 자비(padme)가 지상의 모든 존재(hum)에게 그대로 실현 될지어다"는 뜻이라고 한다.
△길가 유료화장실(1위엔)
▲룽다 : 경전이 적힌 깃발
라싸 다음으로 해발고도가 높은 캉딩공항(4,270m) 표지가 눈에 띠고 멀리 산 중턱에 “캉딩정가(康定情歌)”라는 커다란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말로 풀면 ‘캉딩 사랑 노래’쯤 되는 이 노래는 높고 구성진 음색이 인상적으로 이씨 소녀와 장씨 소년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어 여러 차례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가 되기도 했으며, 1970년대에 세계 10대 명곡으로 꼽혀 우주선에 실리기도 했다고 한다.
타공초원까지는 고슬고슬한 풀로 뒤덮인 초지가 계속 이어진다. 종종 그 사이를 메우는 오색 물결이 있다. 다름 아닌 티베트불교, 라마교 문화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타르초와 룽다다. 만국기처럼 걸어놓은 것이 타르초, 깃발처럼 세워 놓은 것이 룽다인데 둘 다 경전이 깨알같이 적힌 다섯 색깔의 천쪼가리로 이뤄진 것이 특징이다. 흰색은 구름을, 초록색은 물을, 파란색은 하늘을, 노란색은 풍요로운 대지를, 빨간색은 태양과 열렬한 불심을 뜻한다.
룽다와 타르초를 읽는 것은 바람이다. 사람은 경전을 읽지 않고 다만 듣는다. 얇은 천이 바람에 한번 흔들릴 때마다 거기 새겨진 말씀이 셀 수 없이 읽힌다고 믿기 때문에 글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바람이 읽어 주는 말로 불도를 닦을 수 있고, 보살이 될 수 있고, 신을 경배할 수 있다. 티베트어인 룽다는 ‘바람의 말’을 의미한다. 룽다 외에도 물레나 크고 작은 원통 안팎에 경전을 새겨 돌리는 전경(轉經), 마니차(법륜 法輪) 등도 흔히 볼 수 있다.
오후 1시 30분. 타공(塔公)마을에 도착한다. 타공은 보살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는 의미란다. 식당에 점심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타공사를 관람한다. (입장료 10위엔)
타공사는 티베트불교의 주종파인 황교(겔룩파)의 모태가 된 연화교의 시조를 모신 것으로 유명하다. 천여 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닌 이 절에서 불공을 드리면 라싸에 있는 조캉사원에 가지 못했어도 같은 효과를 본다고 믿는데 그 이유는 바로 연화전에 모신 석가모니 상이 조캉사원의 것과 동일한 모양이기 때문이다. 연화보살이라고 불리는 이 불상은 황교의 트레이트 마크인 말갈기 모양의 노란 모자를 쓰고 있다. 불상은 티베트 전성기의 왕인 송첸캄뽀와 혼인한 당 태종의 딸 문성공주가 티베트로 올 때 가져온 것이라고 전해진다.
연화전 옆에 있는 천수관음전도 흥미롭다. 천수관음보살은 관세음보살의 여섯 가지 모습 중의 하나인데 민간 전설에 의하면 그녀는 원래 고대 묘장국의 셋째 딸, 묘선공주로 어려서부터 불교에 심취해 비구니가 됐다. 왕은 여러 번 회유하며 말렸지만 딸이 말을 듣지 않자 절을 허물고 승려들을 내쫓았다. 왕의 폭정을 알게 된 천신은 묘장왕의 전신에 농창이 생기는 병을 주었다. 백방으로 겨우 수소문한 끝에 왕은 혈육의 손과 눈으로 만든 약을 써야 함을 알고 첫째 딸과 둘째 딸에게 부탁했으나 그녀들은 아버지를 버리고 떠나 버렸다. 오히려 묘선만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부친을 위해 한쪽 손과 눈을 내줬고, 왕은 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 이 일에 감동한 석가모니께서는 묘선 공주에게 중생을 고난에서 구제하고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주었다고 한다. 중국에는 천(千, qian)의 발음이 ‘온전함’을 뜻하는 전(全, quan)과 비슷해 “석가모니께서 온전한 두 개 손과 두 개 눈을 주라고 말한 것이 실수로 천 개 손과 천 개 눈이 된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인터넷자료-
# 따비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길을 떠난다.
태고의 순수함을 간직한 채 파란 하늘과 꼿꼿이 볏을 세운 민둥산들과 야크떼, 황량한 대지에 간혹 보이는 티베트 전통가옥이 한편의 아이맥스 영화처럼 펼쳐지는 창밖의 풍경은 조용하고 평화롭다.
높은 고개를 올라서자 멀리 티베트 4대설산 중 하나인 야라설산이 눈에 들어온다. 타공초원을 빠져나와 단빠로 가는 길부터는 풍경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평탄한 초지가 끝나고 어느새 울창한 협곡으로 접어든다.
팔미(八美)까지 30km는 아직도 비포장 길이다. 아슬아슬하게 좁은 길,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위태로운 흙길이 이어진다. 전신 맛사지와 엉덩이에 굳은살이 박일 각오를 하고 버텨보지만 울컥 멀미가 오른다. 팔미에서 잠시 정차하고 단빠로 행한다. 단빠까지 약 80km는 포장도로다. 그래도 버스는 시속 40km를 넘지 않는다.
공사중이라 도로 사정이 말이 아니다.
야라설산을 사진에 담기위해 차가 잠시 정차한다. 단빠로 가는 길은 여행이 아니라 모험이라는 말이 썩 어울린다. 불편함과 험난함, 위험에 대한 불안은 그곳에서 만날 신비와 놀라움을 생각하면 오히려 설렘으로 바뀐다.
가파른 산골짜기를 가로지르는 대도하 양 절벽에는 산비탈에 지은 집들이 보인다. 바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갑거 마을이다. ‘가융장족이 지은 갑거라는 집’이라는 뜻으로 흔히 ‘갑거장채’라고 하는 이 가옥은 139여 채가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다.
갑거장채는 나무와 돌과 흙 세 가지 재료로만 만든 웰빙 하우스. 집은 보통 3~6층의 복층 구조로 이뤄져 있고 문이 4개나 된다. 과거 외부의 침략을 많이 받았던 민족이라 주변을 경계하는 습관이 건축양식에도 반영된 것이다. 이는 마을 곳곳에 세워진 망루에서도 볼 수 있는데 현재는 동절기용 이불이나 말린 곡식 등을 보관하는 공동창고로 쓰인단다.
밤 9시 20분. 단빠에 도착한다. “바위 위의 도시”라는 뜻의 단빠는 ‘미인국’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하다. 과거 칭기즈칸에 의해 멸망한 서하왕조의 후손들 중 남자는 모두 죽임을 당하고 왕가의 여인들만 포로가 돼서 몽고로 끌려갔는데 도중에 도망치며 숨어든 곳이 바로 이곳, 험난하기 짝이 없는 단빠 협곡이다. 이들이 세운 동녀국에는 여황제였던 서하왕조 태조의 피를 이어받아 미인들이 많았다고 전한다.
장자지에와 비슷한 절경을 지닌 홍석탄(紅石灘)의 비경이 펼쳐지며 감탄사를 자아낸다.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굉장한 친밀감을 갖게 한다.
늦은 저녁 식사를 하지만 모두들 피곤에 지쳐 입맛이 없는지 뜨는 둥 마는 둥 한다.
목적지인 일륭까지 몇 시간이 걸릴지 언제 도착할지 모른다. 이제 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다.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면 다행이다. 중국여행은 생각을 바꿔야한다. 우리의 빨리빨리는 통하지 않는다. 빗줄기가 굵어지고 번개가 친다. 홍석탄은 길다.
도로 공사로 또 지체되고 설상가상으로 기사가 길을 잘못 들어 20여 분 정도 허비하고 협곡에서 아찔한 회차를 한다. 시계는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다.
사방은 짙은 어둠속에 묻히고 간간히 화물차만 지나간다. 새벽 3시 15분. 캉딩을 출발한지 19시간 만에 일륭의 일월산장에 도착하여 여정을 푼다.
오늘 동티베트 여행은 오랫동안 추억의 창고에 보관하고 두고두고 음미할 값진 여행이다. 산행 짐을 챙기고 새벽 4시가 넘어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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