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전속력으로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지천으로 핀 꽃은 하나가 지기 무섭게 다른 하나가 피어난다.
마지막 봄을 즐기기 위해 유독 시선을 모으는 여행지가 있다. 바로 전북 고창이다.
고창읍성
국내서 읍성이 가장 많이 축조된 곳이 전북 고창이다. 고창읍성과 무장읍성, 그리고 흥덕읍성은 모두 고창군 관할에 있다. 그만큼 중요한 요충지가 고창이었다.
이들 읍성의 공통점은 바다가 인접한곳에 축조돼 있으면서 고을의 행정과 군사적 기능을 도맡았다. 축성 초기에는 모두 토성이었으나 자주 무너지고 방어에 허술함이 드러나자 석축으로 고쳐 쌓았다.
현재의 고창읍성은 조선 단종(1453) 때 전라도 백성들의 결정체다. 전체 둘레가 1,7km. 높이 4~6m. 동서북쪽에 옹성의 성문과 6곳의 치성을 설치했다. 성 밖에는 해자(垓子)를 파 전략적 요충 시설도 갖추었다.
특히 고창읍성의 성문은 특이하다. 조선시대 때 흔히 볼 수 있는 석축아치형의 홍예문과는 확연히 다르다.
문루가 2층 다락집이다. 아래층 한복판에 출입구를 냈다. 어간에는 문짝 둔테구멍도 있다. 성내 면적이 5만여 평. 동헌. 객사 등 22동의 관아건물과 시설물이 전화(戰禍)로 소실된 것을 30년에 걸쳐 모두 복원했다.
동헌은 조선시대 때 각 고을에 중앙정부에서 파견된 관리가 정무를 보던 곳이다. 동헌 옆에는 ‘내아’라고 하는 수령의 살림집도 세웠다.
조정에서 파견된 관원들의 숙소인 객사에는, 중앙에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그리고 나라에 경사와 궂은 일이 있을 때 대궐을 향하여 예를 올렸다.
고창읍성의 역사는 어림잡아 600년이다. 고려 말 경부터 서해안의 영광 법성포 해안으로 왜구의 침입이 많아졌다. 호남 내륙을 쟁탈하는 가장 빠른 길이 고창 지역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일대는 곡창지대로 원시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으며, 수많은 고인돌이 당시를 말해줄 정도로 왜구들의 탐의 대상이었다. 적들에게 양식과 내륙 침입의 길목을 지키고자 했던 선조들의 슬기가 고창에 녹아있다.
백제 때 고창의 지명이 모량부리였다. 지금도 일명 모양성으로 부르는 고창읍성은 장성의 입암산성. 나주진관(鎭管)과 함께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중요한 전초기지였다. 이 지역이 함락되면 호남 내륙은 순식간에 빼앗기고 만다.
읍성의 축성에 사용된 석재는 거의 자연석이지만 초석, 대리석, 당간지주 등 절터에서 나온 듯한 석재들도 간혹 끼여 있다. 특히 북문인 공북루의 주춧돌 높이는 1m쯤 되는 것과 기둥이 땅바닥까지 내려온 것도 있어 이채롭다.
고창읍성은 야트막한 산을 이용해 바깥쪽만 석축으로 쌓는 ‘내탁법’을 사용했다. 성문 앞에는 옹성을 만들어 적으로부터 성문을 보호할 수 있도록 축성하고 성내에는 관아를 만들고 주민들은 성 밖에서 생활하다가 적의 침입이 있으면 성안으로 들어와서 함께 항전할 수 있도록 모든 시설을 갖추었다.
성벽에는 축성에 참여했던 고을 이름과 축성연대가 뚜렷이 새겨져 있다. 계유년(1453)에 전라 좌·우 도민들과 특히 부녀자까지 동원됐다.
그들은 성을 ‘한 번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번 돌면 무병장수, 세 번 돌면 극락 승천한다.는 말을 믿고 있다. 성을 돌때는 반드시 손바닥만 한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돌았다.
특히 돌을 이고 성을 도는 관습은 여인네들의 체중을 가중시켜 성을 더욱 단단히 다지게 하는 의도였다. 축성 당시 무병과 극락 승천한다는 관리들의 아이디어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읍성이 아낙네들 힘으로 축조됐다는 전설 때문에 답성도 부녀자들만의 전유민속(專有民俗)이 됐다. 흙 한 줌, 돌 하나도 부녀자들의 손과 머리로 운반해 쌓았던 당시의 대역사를 되새겨 보는 뜻으로 이 풍습은 550년이 지난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글 : 인터넷에서 발췌하여 편집
고창청보리밭축제(4월18일~5월17일)
드넓게 펼쳐진 푸르른 보리밭이 그림 같은 고창 공음면 학원관광농원 청보리밭 일원에서 ‘청보리밭축제’가 열린다.
‘새생명의 꿈, 초록의 함성’이란 주제로 한 달간 펼쳐질 제6회 고창청보리밭축제는 보리밭 샛길 걷기·보리피리 불기·민속놀이·민속 공예·꽃마차 타기 등 옛 추억과 애틋한 향수를 떠올리는 체험행사와 보리 음식 맛보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또 고창농악 한마당 공연, 동력 패러글라이딩 퍼레이드, 통기타 가수 축하공연, 원시 공룡체험전, 보리짚 공예품 전시회 및 시연 등 보리와 관련한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또, 시골장터와 농특산품 판매장에서는 봄나물에 고추장을 넣어 비빈 보리밥과 보리개떡, 보리뻥튀기, 복분자와인 등을 맛볼 수 있으며 청정 농특산물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시골장터도 열린다.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정읍 I.C- 고창방면 22번 국도 -흥덕- 23번 국도를 따라 고창 도착- 795번 지방도로를 따라 무장을 거쳐 공음쪽으로 4Km 진행- 좌측으로 군도 4호선인 선동 방면의 도로를 따라가면 행사장 도착. 모든 도로교통안내 표지판에 '고창 청보리밭'이 표기돼 있어요.
선운사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말이에요(송창식의 노래 '선운사' 중에서)
늦동백, 곧 춘백이라 불리는 선운사 동백은 한겨울이 아니라 성미 급한 봄꽃들이 시들어가는 4월이 되어서야 흐드러지게 붉게 피어 오는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8~9월이면 슬픈 전설을 안고 있는 꽃무릇이 찾는 이들에게 행복감을 선사한다.
선운사는 수백 년 된 동백꽃이 군락을 이루고 피어 있어 이름이 난 절이다. 미당 서정주의 친필이 새겨진 시비 '선운사 동구(洞口)'가 동백꽃 피는 시기와 상관없이 언제나 그곳에서 동백꽃 대신 다정스레 반기기 때문에 더더욱 정감이 가는 곳이다.
동백꽃은 대부분 기온이 따뜻한 남쪽에서 피기 마련이지만 선운사 동백은 비교적 북쪽에 자리 잡고 있음에도 선홍빛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피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그렇기에 동백꽃이 필 무렵 그곳을 찾을 때는 기쁨도 두 배가 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아스라한 우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시가 생각난다.
선운사 입구에 새겨진 미당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는 이렇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디다.
오랜만에 이곳을 찾아왔는데 곱게 단장한 보도로 선운산을 찾은 등산객들이 스쳐 지나간다.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
가수 송창식이 부르는 '선운사'다. 요즘처럼 슬픔이 많은 시기에는 가슴속 깊숙이 다가오는 노랫말이 귓전을 맴돌며 마음 한가득 다가온다.
송창식 - 선운사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드득 지는 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임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임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에요
고창군 아산면과 심원면 경계에 솟은 고창 선운산(禪雲山, 336m)은 서쪽으로는 서해에 붙어 있고, 북쪽으로는 변산반도를 바라보고 있다. 선운산의 가장 큰 물줄기인 선운계곡에 자리 잡은 선운사는 577년(백제 위덕왕 24)에 검단선사가 도적떼를 교화하고 창건한 절집. 번성기에는 89 암자와 189 건물, 24 토굴이 있던 대가람이었다. 지금도 그윽한 선운계곡 안에는 참당암 도솔암 석상암 동운암 등 유서 깊은 암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경내 마당에는 오색찬란한 연등이 바람에 나부끼고,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스님이 표정 없이 먼발치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선운사를 찾은 비구니가 동백꽃을 가지런히 모아 두 손에 한가득 쥐고 미소를 짓는다.
선운사 곁으로 흘러내리는 도솔천에서는 잔잔한 물길 사이로 비추는 나무들의 한가로운 모습이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흐르는 물인데도 물속이 맑지가 않다. 바위나 자갈 등이 시커멓게 변해 있다. 가뭄 탓에 고인물이 썩었나 의심하며 지나가는데 친절하게도 안내 표지판이 눈길을 끈다.
떡갈나무를 비롯한 도토리나무 상수리나무 등에서 나오는 타닌 성분으로 인해 변한 것처럼 보인단다.
선운사 한편에는 가녀린 여인네의 모습처럼 수선화가 피어있다. 고요한 산사에서 울리는 풍경소리와 세상의 모든 상념들을 잊기 위해 사색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사람과 뭔가를 간절하게 소원하는 사람의 뒷모습이 고즈넉한 선운사의 하루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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