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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추암 일출

 

야간 운행은 돌아가는 길이라도 운전자의 편의상 고속도로를 타는 것이 좋다. 경부고속도로 대전톨게이트로 진입하여 중부와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까지 이동한 후 다시 동해고속도로를 탄다. 동해휴게소에 도착하여 약 30분간 휴식하고 10분 더 진행하여 동해톨게이트로 빠져나가 7번 국도를 타고 삼척으로 향한다. 추암까지는 약 10분 거리다.

 

강원도 동해안의 강릉과 삼척 사이에 자리한 동해(東海)는 해오름의 고장이다. 동해는 어촌인 묵호읍과 농촌인 북평읍을 합쳐서 만든 고을이다. 벌써 사반세기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직까지도 동해란 지명은 귀에 설다.

 

동해 8경을 소개하는 관광안내도가 보인다. 동해 8경은 능파대(촛대바위)를 비롯하여 용추폭포, 무릉반석, 망상 명사십리, 천곡천연동굴, 만경대, 호해정.할미바위, 초록봉 등이다.  

 

드디어 추암(湫岩)이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촛대바위, 칼바위, 형제바위 같은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동해 추암은 애국가 첫 소절의 일출 배경으로 등장하는 곳이다.


추암은 강원도 동해시 바다와 접한 자그마한 마을로, 남한산성에서 정동쪽이 이곳이고 추암 해수욕장보다 더 유명한 촛대바위가 있다.

 

 

 

북평 해암정(北坪 海岩亭)

해암정은, 삼척심씨 시조 신재공(信齋公, 沈東老)이 1361년 (고려 공민왕 10년)에 진주군(眞珠君)으로 봉하여지고 퇴관 후 추암 해변에 정자를 짓고 노후를 자연과 벗하면서 살았으니, 그 정자가 바로 해암정이다. 해암정의 현판은 송시열 (宋時烈)이 1675년 (숙종 1년)에, 이곳에 들러 남긴 것이며, 1794년 (정조 18년) 후손들이 정자를 중수하였다. (유형문화재 제63호)


규모양식을 보면,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10개의 기둥은 모두 원주로써 전면을 제외한 3면이 모두 4척정도의 높이까지 벽체를 세우고 모두 개방되었다. 문을 열면 사방이 트이는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으면, 신선이 따로 없음을 느낄 수밖에 없다.

 

동해 팔경 중 제 1경 능파대(촛대바위)

조선 世祖 임오년 (壬午年) (1462년) 이곳을 찾은 한명회 (韓明澮)는 능파대기 (凌波臺記) 에서

" 삼척군 동쪽으로 십리쯤 가면 한 곳에 경치 좋은 곳이 있는데 혹은 불끈 솟아오르고 혹은 구렁이 나고 절벽을 이룬 것이 바다 가운데 있다. 그 위는 매우 넓어 수십 명의 사람이 앉을 수 있고 기암괴석이 좌우로 늘어 서 흡사 사람이 눕기도 하고 비스듬히 서 있기도 하는 것 같고 또는 호랑이가 꿇어앉은 것 같기도 하고 용이 꿈틀거리는 것 같이 천태만상을 이루었으며 소나무가 우거져서 그 사이로 비치니 참으로 조물주의 작품이라 하겠다. 강릉 경포대와 통천 총석정과는 그 경치가 난형난제이며 기이한 점은 이곳이 더 좋다 하겠다. 속되게 "추암" 이라고 부른 것은 무슨 이유인고. 이제나마 자년에 대하여 부끄럼이 없게 "능파대(凌波臺)" 라고 그 이름을 고치노라." 라고 했다. 능파 (凌波)는 "급류의 물결 또는 여인의 사뿟사뿟 걸음걸이 같다"라는 뜻이다. ( 자료: 강원도 교육청 발간 "해뜨는 고장 동해" 1995 )

 

 

일출이 아름다운 곳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태양이 뜨기 직전에 바다와 하늘 전체에 드리워진 붉은 장막은 태양이 자신을 고대하는 사람들에게 선사하는 선물이다.

 

 

5시 19분. 형제바위(왼쪽이 형)사이로 해가 떠올라 시뻘건 기운이 촛대바위에 서리면서, 감탄이 터질 만한 장관을 연출한다.

  

 

 

어제도 내일도 뜨는 해지만, 동해 수평선 위로 불끈 솟아오르는 해는 새로운 희망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애국가 첫 소절의 배경화면을 장식했던 곳으로 각종 기암괴석과 바다에 일부러 꽂아 놓은 것처럼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있는 촛대 바위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고 있으며 특히 아침 해돋이가 장관을 이루는 해상 선경이다.

 

옛날 이곳 추암 해변에 한 남자가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소실을 얻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본처와 소실 간에 투기가 빚어지기 시작했으며 이 두 여자의 시샘에 급기야 하늘도 노하여 벼락으로 징벌을 가해 남자만 남겨 놓았는데 오늘도 홀로 남은 촛대바위가 그 남자의 형사이라고 한다. 1900년대까지 이 남자와 본처 그리고 소실을 상징하는 3개의 바위가 있었는데 그 중 2개의 바위가 벼락으로 부러져 없어졌다는 전설이 남아있다.

                   ▲주위의 기암과 어우러진 촛대바위 사이로 떠오르는 동해의 일출은 보는 이들마다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촛대바위 주변에는 천년을 산다는 거북이 가족, 부부바위, 손자를 업은 시어머니의 기도상, 큰섬·작은섬(형제바위) 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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