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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립공원

대둔산 낙조대 일출

 2007 새해 첫날 일출 -대둔산 낙조대에서...

 

산행코스: 청령골매표소 - 고개언덕화장실 - 태고사갈림길 - 낙조대고개 - 낙조대(일출) - 낙조대고개 - 바위전망대 - 상여봉- 장군약수터- 고개언덕화장실- 청령골주차장

 

안영리에서 635번 지방도를 타고 복수쪽으로 가다 신대리(신대초등학교)를 벗어나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편으로 갈라지는 길로 들어선다. 길은 68번 지방도와 만난다. 이 지방도에 우회전으로 들어가면 바로 태고사 안내판이 있는 청령골 들머리가 나타난다. 이 길로 들어서면 행정저수지를 지나 청령골매표소에 이르게 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진산군 편에는 대둔산이 군 서쪽 10리에 있고 진산(鎭山)이라 써있으며 고산현 편에는 북 45리에 있다고 되어 있다. 1658년에 썼다는 안심사(완주군 운주면 완창리) 사적비에도 대둔산이라 되어 있다. 두 군데 모두 대둔산(大芚山)을 채소 이름 둔(芚) 자를 쓰고 있다.


어떤 이들은 권율 장군이 왜군과 싸우기 위해 대둔산에 진을 친 뒤로 진 칠 둔(屯) 자를 쓰기도 한다. 그러나 한자로부터 출발하는 이 논쟁은 아무런 뜻이 없다. 모든 산의 으름은 순수한 우리말로 된 이름에서 출발해야 한다. 대둔산의 원래 이름은 '한듬산' 이었다.


 '듬'은 두메, 더미, 덩이, 뜸(구역)의 뜻으로 한듬산은 '큰 두메의 산', '큰 바위덩이의 산'을 말한다. 그런데 이 이름을 한자화하면서 '한'은 대(大)로 고쳤으나 '듬'은 그 뜻에 알맞은 한자가 없어 소리에 가장 비슷한 '둔'자로 한자를 차용한 것이다. 반은 한자화하고 반은 이두식으로 소리 나는 대로 쓴 것이다.


벌곡 가야곡 양촌 등 일부 논산 사람들은 지금도 대둔산을 '한듬산'이라 부르고 있다. 또 한듬산의 모습이 계룡산과 비슷하지만 산태극 수태극의 큰 명당자리를 계룡산에 빼앗겨 '한이 들었다' 해서 '한듬산' 이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펌-


태고사는 신라 신문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태고사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태고사에 묵고 있던 원효대사가 하루는 밤하늘의 별자리를 보니 중국의 한 절에 불상사가 날 것이라는 괘가 나와서 널빤지에 “척판구중(널판을 던져 사람들을 구한다)”  고 적어서 중국을 바라보고 던졌다고 한다.


중국의 한 절에서는 나이 어린 동승 한 명이 화장실에 앉아 변을 보다가 하늘을 보니 커다란 황금 덩어리가 하늘에서 절 쪽을 향해서 날아오는 것을 보고 소리를 쳤다. 동승의 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밖으로 모두 뛰어나오자 절 뒤에 있는 산이 무너져 내려 절을 덮쳐 버렸다. 놀란 사람들이 황금이 떨어진 곳으로 달려가 보니 황금은 없고 널빤지에는 동방의 원효가 널판을 던져서 많은 사람들을 구했다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태고사로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산길로 들어서면 바로 골짜기를 건너가는 쇠다리가 있고 잘 손질된 외길이 위로 뻗쳐 있다. 낙조대 고개로 오르는 길은 능선이 아니고 골짜기여서 너덜길이다. 그러나 길이 잘 다듬어져 있고 계단 등이 잘 되어있어 그리 어렵지는 않다.


배티재 (梨峙, 옛날에 돌배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 지금도 골짜기에 한 그루가 군 지정 보호수로 남아 있음)와 삼군봉 그리고 장군약수로 가는 갈림길이 시작되는 곳을 지나 곧 낙조대 고개에 이른다. 태고사 주차장 위와 장군약수 또는 배티재 갈림길 두 곳에 안내판이 있으나 거기에 적힌 거리가 정확하지 않아 믿을 것이 못된다.


고개는 사거리다. 낙조대, 태고사 또는 배티재, 고스락의 마천대, 수락골로 가는 네 갈래길이 여기서 갈린다.  여기서 마천대까지의 바위등성이는 바위봉우리들이 우람하고 아기자기하며 경관이 매우 좋다. 또 고개에서 남쪽으로 능선 따라 100여m 나아가면 금산 논산 완주 세 시군의 경계가 되는 삼군봉이 있다. 이 삼군봉에 서서 배티재 일대의 경관과 장군봉 일대 남면의 기암 괴봉을 둘러보는 맛이 좋다.


낙조대는 고개에서 그리 멀지 않다. 바위봉우리인 이 낙조대는 특히 태고사쪽으로 천길 벼랑을 이루고 있어 멋이 있고 태고사쪽은 물론 삼군봉 쪽으로도 기암 괴봉이 수풀처럼 펼쳐져 있어 장관이다.


대둔산의 주봉은 마천대(천마봉)로 해발878m의 수려한 바위로 되어있으며, 그 다음이 낙조대이다. 이 낙조대에서 수락골 건너 월성봉과 바랑산을 넘어 드넓은 놀뫼 강경 뜰로 떨어지는 낙조가 무척 좋다고 한다. 어떤 이는 이 낙조대에서 서해가 보인다고 했으나 확인할 길이 없다.


대둔산은 빼어난 준봉이 연속으로 펼쳐지며 기암괴석, 선송, 장죽 등과 어울린 웅장한 자태는 옛사람의 절찬을 받을 만큼 아름다워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린다. 그리고 신라 때 원효대사는 사흘을 머무르며 들러보고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산이라 하였다.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오늘, 어제 저문 해가 그리웠는지 아니면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것인지 여러 발자국이 모였다. 누군가 피워 놓은 모닥불에 몸을 녹이고 또 동행한 귀연식구들의 수고로 뜨거운 국물이 몸 속에 전해지자 여유가 생긴다.

 

발자국에 기다림이 고일 무렵, 시뻘건 해가 돋아 오른다.  기대와 희망이 솟아오른다.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희망하는지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지고 기다리던 얼굴에 화색이 돈다. 환해진 발자국들은 뜨거운 하루를 품에 안고 일상으로 기운다.


하산은 낙조대 고개에서 태고사쪽으로 내려오다 갈림길에서 장군약수터로 향한다. 바위 전망대에 올라서 천길 바위벼랑을 바라보며 새삼 대둔산의 장쾌함에 감탄한다.


상여봉으로 발길을 향한다. 장군바위를 거쳐 약수터로 길을 잡았다. 약수터까지는 좁고 가파른 비탈길이다. 10여분 내려오니 장군약수터가 있다. 약수터 위 절벽에는 큰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 겨울의 정취를 더한다. 약수를 한바가지 떠 마시니 목 줄기를 타고 시원하게 흐른다.


계단길이 끝나자 파이프와 밧줄로 난간을 만든 오솔길이 나타난다. 길은 매우 아름답다. 낙엽이 쌓인 양탄자 길을 20여분 내려오니 철다리를 지나 출렁다리가 예쁘게 놓여있다.


이 새로 난 등산로는 화장실이 있는 언덕 위로 이어진다.



























 ▲ 대둔산 생애봉 아래 장군약수(將軍藥水)는 옛날에 용천수(龍泉水)라고 불렀지만 먹으면 힘이 난다고 해서 장군수라 부른다. 대둔산에서 제일 좋은 장군수는 마시기만 하면 만병이 낫는다는 신비스런 약수로 알려져있다.

 

한 스님이 열심히 백일 기도를 마치던 날 꿈에 장군약수터 정상(용머리)에서 뛰어내리라는 선몽을 받고 수차례 낭떠러지 앞에 섰으나 "생"의"애"착으로 망설이던 걸 본 어느 포수가 스님 말씀을 듣고 평생 살생만 하던 자신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스님 대신 뛰어내렸다고 한다. 때마침 등천하는 시각이어서 포수가 등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생애봉이라는 이름은 이 전설에서 유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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