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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1. 오색-대청봉-백담사

2003. 10. 12(일)

오색-대청봉-소청봉-봉정암-구곡담계곡-백담사코스를 붉은 빛깔 새옷으로 갈아 입는 설악의 품에 안겨 무박 2일 산행을 다녀왔다.

비온다는 일기 예보가 있어 다소 심난했지만 예정대로 산행을 하기로 했다. 도시락을 정성껏 챙겨주는 아내가 고맙기만 하다. 매주 일요일마다 산에 가는데도 아내는 불평 한마디 안한다. 버스는 늘 그랫듯이 시내를 돌며 산악회 회원들을 태운 뒤 밤 11시 45분 대전 T/G를 빠져 나간다. 잠을 청해 보지만 좌석도 불편하고 잠이 쉽게 오질 않는다. 경부, 중부, 영동고속도로를 힘차게 달린 버스는 새벽 3시에 현남 T/G를 빠져나와 양양 방향으로 10여분을 더 달리고서야 소변을 위해 38선 휴게소에서 10분간 정차한다. 

4시 정각에 오색 매표소에 도착하여 헤드랜턴을 착용하고 등산화 끈을 조이면서 산행 준비를 한다. 이미 매표소는 설악 단풍을 보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이미 앞서간 동료의 모습들은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조용히 바람을 타고 들려온다. 랜턴 불빛에 희미하게 나마 어렴풋이 돌길이 비스듬히 누워있는 모습으로 다가와 내 앞에 눕고 그 길을 따라 한발 한발 걸어간다. 그렇게 한 시간을 바쁘게 오르면 제1쉼터가 나타난다. 물 한모금으로 가빠진 호흡을 달래고 산행은 계속된다.


갑자기 정체가 심해지더니 급기야 꼼짝을 않는다. 외길에 오르막과 내리막 경사가 급한 구간인데 미쳐 랜턴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이 엉금엉금 기면서 일어난 정체다. 거의 한시간 가까이 계속된 정체는 서서히 동이 트면서 해소된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외길은 두 사람이 함께 걷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인생이 그러하듯 정상을 오르는 길은 철저하게 혼자 걸어야 할만큼 좁다. 성급한 마음에 서두르면 앞사람을 길옆으로 밀쳐야하며 자칫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 

6시 30분. 예정시간 보다 30분 늦게 설악폭포을 통과한다. 정상인 대청봉까지는 2.5km. 계곡길 옆으로 시원스럽게 흐르는 물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7시. 제3쉼터(해발 1300m)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경사가 훨씬 가파르다. 바위에 숨은 빨간 단풍이 눈에 빨려 들어온다. 

부슬비가 내리고 자욱한 안개 때문에 시정거리가 10미터 정도이다. 8시정각. 4시간의 산오름 끝에 드디어 대청봉 정상에 선다. 감격한 다른 산악회원들이 애국가를 합창한다. 3대가 덕을 쌓으면 대청봉에서 일출과 푸른 동해 바다를 볼 수 있다는데 그건 고사하고 안개 때문에 10미터 아래도 볼 수가 없다. 대청봉 표지석 주변은 사진을 찍으려는 인파로 북새통이다. 

한가위에 덮이기 시작한 눈이 하지에 이르러 녹는다하여 설악이라 한다<동국여지승람>
산마루에 오래도록 눈이 덮이고 암석이 눈같이 희다고하여 설악이라 이름짓게 되었다<증보문헌비고>
주봉인 대청봉(1708m)과 북쪽의 미등령·미시령, 서쪽의 한계령에 이르는 능선을 설악산맥이라 하며, 그 서쪽 지역을 내설악, 동쪽 지역을 외설악으로 나눈다. 대청봉의 동북쪽에 있는 화채봉과 서쪽에 있는 궤떼기청봉, 대승령, 그리고 안산을 경계로 그 남쪽을 남설악이라 한다.

사진 한 장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림길로 내려선다. 8시 30분 중청휴게소에서 30분간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서서히 하산을 시작한다. 9시 10분 소청봉을 지난다. 안개도 걷히고 부슬비도 멎었다. 

잰걸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며 봉정암으로 간다. 태백산 정암사와 함께 한국 5대 적멸보궁 중의 하나로 국내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보궁이며 지리산 법계사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곳에 세워진 사찰로 마등령에 위치해 있다. 약수가 반긴다.

 

대청봉에서 물들기 시작한 단풍은 하루에 40m씩 아래로 내려와 지금은 해발 1300m 봉정암부터 구곡담 계곡을 거쳐 수렴동 계곡까지 단풍이 온산에 불을 지르고 있다. 봉정암 사리탑에서 바라보는 공룡능과 그 틈새 사이의 울산바위의 남성미 넘치는 위풍당당한 자태에 살포시 고운 빛깔 드러낸 가을의 모습은 설악을 찾는 모든 이들이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기에 충분하다. 

하산 속도를 내 보려고 하지만 불타는 설악이 발길을 잡는다. 수정처럼 맑은 계곡과 암봉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단풍이 어우러져 최고의 풍경을 연출한다. 한시간 정도 계곡을 따라 산길을 내려가다 보면 사자 바위가 보이고 다시 30분을 더 하산하여 철다리 밑을 흐르는 계곡물에 잠시 발을 담그고 피로를 씻어낸다. 몇 번의 철계단을 내려오면 쌍폭을 시원스럽게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희미해진 머릿속까지 맑게 해준다. 
 
얼마를 더 내려가면 절벽처럼 급경사의 내림길을 만나니 이를 사람들은 '깔딱고개'라 부른다. '깔딱고개'란 별명에서 알 수 있듯 백담사 쪽에서 오르면 정말 숨 넘어 갈 듯 가파르고 힘들게 하는 오름길이지만 하산중이라 내림길이서 다행이다. 12시 정각 만수담 넓은 바위 위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길을 재촉한다.

 

12시 40분 수렴동 산장통과. 2시 10분 백담 산장 통과할 때 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계곡과 온 산에 뿌려진 형형색채의 고운단풍은 대자연의 캠버스에 뿌려진 창조주 하나님의 작품이다. 구곡담에서 수렴동으로 이어지는 폭포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담이 짙푸른 색깔을 드러낸채 자리잡고 있다. 
 
2시 20분 백담사에 도착한다. 어찌 보면 역사의 아픔이며 부끄러움이기도한, 전직 대통령이 유배를 함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진 백담사. 만해 한용운님의 작은 흔적만이 있었고 전 전대통령이 유배되었던 작은 요사채는 공사중이다. 백담사 경내를 휭하니 한바퀴 둘러보고 길을 재촉한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진다. 배낭에서 판초우의를 꺼내 입고 걷고 또 걷는다.


한 번쯤 백담계곡을 다녀 온 사람이라면 한국의 계곡을 말할 때 어김없이 아름다움과 깨끗함의 첫 번째로 손꼽을 만한 곳이다. 백 개나 되는 소(웅덩이)가 있기에 백담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유래에서 알 수 있듯 백담계곡은 크고 작은 웅덩이의 연속이다. 천년 세월의 물길에 크고 작은 바위는 하얀 속살을 부끄럼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온통 바위뿐인 계곡에 움푹 패인 웅덩이에 고이고 넘치며 흐르는 물은 맑다못해 서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깨끗하다. 백담사에서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있는 매표소까지 그렇게 맑고 경이로운 계곡이 7km쯤 이어진다.


3시 40분. 하산 완료 산행 25km 산행시간 11시간 40분 길고 긴 산행은 끝을 맺는다.

올 가을, 정말 웅장한 대 자연의 풍경화를 보며 마음을 살찌우고 싶다면 발 품 파는 수고를 아끼지 말고 산행을 하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