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09. 21(일)
길을 나선다. 아침 일찍 산행을 떠난다.
눈이 부실 정도로 파란 하늘을 보며 어느덧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죽령주막에서 삼형제봉을 지나 도솔봉에서 반대쪽 전구동으로 하산하는 코스로 산행시간은 5시간이다.
한때는 신라와 고구려와 국경이 되기도 했던 죽령, 고려와 조선시대 때는 청운의 꿈을 안은 선비들의 과거길이었고 온갖 문물을 나르던 보부상들과 나그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던 옛길, 아흔 아홉 구비에 구름도 쉬고 넘는다는 죽령.
죽령주막 건너편에서 시작되는 산행은 한 사람 지나갈 정도의 오솔길이다.
서두를 필요 없이 천천히 산행을 시작한다. 시간을 쪼개면서 생활하는 산 아래와는 달리 바위, 나무들과 만나면서 여유를 되찾는 귀한 시간이다. 일상에서의 이탈은 자연으로의 귀의이다. 자연으로 돌아와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연을 닮아간다. 그렇게 5분 정도를 걷다보면 갑자기 산길이 일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된다.
산오름
산을 향하여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산오름의 발걸음에 일상의 욕심과 이기심과 고뇌와 고통을 털어버리고 산의 향기에 취하여 산이 주는 의미를 알게하소서..
<無名人의 싯귀절 중에서..>
숨가쁜 호흡을 하면서 30분 정도를 오르면 「죽령 1.3km, 도솔봉 4.7km」첫 번째 안내 표지판이 나타난다.
2001년도에 이곳에서 흙으로 돌아간 어느 산사람의 추모석이 이곳에 함께 있다. 물 한 모금으로 가쁜 숨을 고르고 잠시 쉬어간다. 다시 산행을 시작하여 산죽군락지를 40분 정도 오르면 「죽령 3.3km, 도솔봉 2.7km」안내 표시판을 만난다. 이곳에서부터 정상까지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된다. 약 40분여분 산행을 계속하면 삼형제봉 (1,260m)에 도달한다. 이제까지 나무 등걸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던 소백산 줄기가 시원스레 드러난다. 국립천문대, 연화봉 그리고 저 멀리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이 시원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소백산이 남쪽 전경을 남김없이 드러내 놓고 있다.
허기진 속을 초콜렛으로 속여가며 잠시동안의 풍요로움을 느끼며 먼산을 바라본다.「죽령 4.3km, 도솔봉 1.7km」마지막 안내 표지판은 숲 속에 아름답게 놓아진 나무 계단 시작점에 위치한다. 150계단이다. 도솔봉에서 하산하는 길에 이러한 나무 계단이 두 곳 더 있다.
그렇게 가파르지는 않지만 쉬지 않고 오르니 마지막 고개쯤에서는 숨이 헐떡인다. 도솔봉은 앞으로 오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왼쪽으로 돌아 뒤쪽으로 도솔봉 정상(1314m)에 도달한다. 죽령주막에서 3시간 소요. 대여섯평 넓이의 공간에 시원한 바람.... 더위가 금방 식는다.
도솔봉 정상에는 아주 조그만 표지가 땅에 박혀 있을 뿐이다. 멀리 산아래 풍기읍과 영주시가 손에 잡힐 듯 가깝고 국립소백산 천문대 모습이 조그맣게 눈에 들어온다. 운무에 가려졌다, 벗겨졌다 멀리 보이는 비로봉은 仙界인 듯 신비롭다. 너울거리는 안개는 마치 선녀의 옷자락인양 부드럽게 비로봉을 감싸 안고 있는데 한 폭의 그림이다. 정상에서 한 컷하고 때늦은 점심을 마친다.
눈앞에 것만 쫓아 정신없이 달리던 삶...세월이 지나고 나서 그 욕망이 부질없는 것임을 알고 나니 부끄러움으로 남는다. 좀 더 높이, 좀 더 많이 거머쥐면 능력 있다고 생각하던 철부지였다. 살다 ... 결국 한줌 흙으로 돌아갈 때 허접 쓰레기만 늘리는 건데....
더 낮추면 그뿐인걸, 받기보다 주기를 애쓰면 될 것을, 마음하나 편케 해주면 될 것을... 이런 것들이야말로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마흔을 넘기고서야 조금씩 알게 된 것도 산을 오르면서부터다.
하산.
정상의 조망을 아쉬워하며 이제는 내림의 발걸음을 한다.
갑자기 경사가 심한 길을 내려서니 왼쪽으로 헬기장이 나선다. 전구동으로 가는 길은 급경사에 낙엽이 많아 길이 무척 미끄럽고 험하다. 이곳은 사람들이 별로 많이 이용하지 않은 듯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1시간 반정도 내려오다 걸음을 멈추고 산골짜기 흘러내리는 계곡물에 산행에 지친 발을 담근다. 흐르는 물은 생명수라 했던가...생명수와 같이 늘 깨어 있는 모습으로 살 순없을까? 물 속에 나를 드려다본다. 이곳에서부터 전구동까지는 흙길이 아닌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인공의 길이다. 산 깊은곳 까지 사람들이 편리함을 위하여 산의 한부분을 깍아서 만들고 그 위에 시멘트 포장을 해서 만든 길을 터벅터벅 내려오면 길 양옆으로 빨갛게 익어 가는 탐스런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 과수원이 나타난다. 10분 정도 더 길을 내려서면 도솔사가 보이고 도솔봉 안내 표지가 쉼터 옆에 서 있다.
산행의 끝을 접어두며 바람결에 먼지 일어나는 길을 걷고 그 길 위로 간간히 차는 휘달리고...산행은 끝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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