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0일(일)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각. 산으로 대장의 기상 소리에 모두들 눈을 뜬다. 쏟아질 듯 밤하늘을 가득 채우고 반짝이던 별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반달이 세상을 비춘다. 밤사이 이슬도 내리지 않아 보송보송하고 코끝을 스치는 새벽공기가 상쾌하다. 침낭을 걷어 배낭을 정리하고 나무 데크 중앙에 빙둘러 앉아 빵과 떡 그리고 과일로 간단한 요기를 한다. 후식으로 마시는 커피향이 좋다.
아니온 듯 다녀가소서. 비박흔적을 없애고 랜턴불빛으로 어둠을 밀어내며 한라산 남벽을 천천히 오른다. 중턱에 앉아 쉬는 시간. 멀리 아름다운 제주 야경이 눈에 들어온다.
능선에 오르자 백록담이 눈에 들어온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야트막한 능선을 오른다.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이 발걸음을 더디게하고, 추억을 담느라 모두들 정신이 없다.
동쪽하늘에 붉은 기운이 감돌며 새 날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드디어 구름을 뚫고 붉은 불덩이가 솟아오른다. 모두들 탄성을 지르고 동행 중 누군가는 감격에 겨워 급기야 울음까지 터드린다. 매일 떠오르는 태양이지만 한라산 정상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감동 그 자체이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일출은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라산 일출은 현행법을 어겨야만 볼 수 있다. 한라산은 비박이나 야간산행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한라산 북릉정상에는 무너진 돌탑과 삼각점이 자리하고 있다.
개미등과 장구목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북릉에서 내려서는 길은 약간 험하다. 돌을 깎아만든 계단옆에 쇠줄은 낡고 녹이슬었으며 밧줄도 엉성하게 매어있다. 산행이 금지된 곳이어서 정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나. 산으로 대장이 자일을 깔아 안전하게 내려선다.
△아침햇살 품은 왕관릉
윗세오름에서 남벽분기점을 거쳐 돈내코로 이어지는 정규등로로 내려서면서 언제 또 이 멋진 풍광을 가슴에 담을수 있을지 몰라 자꾸만 뒤돌아본다.
정규등로를 따라 윗세오름휴게소에 도착한다.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영실로 내려선다. 커다란 배낭을 배고 아침 일찍 산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왼쪽으로 병풍바위가 펼쳐진다. 수직의 바위들이 마치 병풍을 펼쳐놓은 것처럼 둘러서 있어 병풍바위라 부른다. 비폭포에는 한여름 폭우가 내린 후 기암절벽 사이로 폭포가 흘러내려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해발 1500m 표지석을 지나면 영실기암(오백나한 五百羅漢)의 풍광이 펼쳐지며 잠시 발길을 멈추게 한다. 제주10경의 하나인 오백나한은 기암의 수가 500개나 된다는 데서 유래됐다. 나한이란 불교 용어로 생사를 초월해 법도를 배울 게 없는 자를 일컫는 말로, 바위들이 솟아 있는 모양이 마치 장군들의 모습과 같다고 하여 일명 오백장군이라 부르고 있다.
오백나한에는 “ 제어미의 육신으로 끓인 죽인 줄도 모르고, 죽을 먹은 오백 명의 아들이 비통함에 울다가 바위로 굳어졌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온다.
영실소나무 숲을 빠져나오면 휴게소가 있는 영실에 닿는다. 영실(靈室)은 신들의 거처라는 의미다.
영실샘물로 목을 축이고 근처 음식점에서 비싼(한 그릇에 6500원) 고기국수로 아침식사를 한다. 아스팔트 포장길을 따라 30분 정도 걸어 영실공원관리사무소가 있는 주차장에 도착하면서 한라산 비박산행은 끝을 맺는다.
△먹이를 찾아 나들이를 나온 노루가 조릿대 속에 숨어 도망가지도 않고 우두커니 서 있다.
영실 공원관리사무소에서 약 2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존자암을 찾았다. 옛 문헌(신증동국여지승람. 탐라지)에 의하면 존자암은 '오랜 역사를 가진 사찰'로 기록되었다 한다. 그러나 창건의 시기는 알 수 없다. 특히 일부 학자들은 한반도의 불교문화가 제주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을 제기하며 존자암을 말한다. 존자암 가는 길 입구 간판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한국불교 최초 사찰, 2500년 전 탐라국 발타라 존자 창건. 한라산 영실 종자암(적멸보궁). 제주도 문화재 43호. 존자암세존사리탑 문화재 17호'.
존자암 가는 길은 늘 호젓하다. 예전에 이 길은 조릿대가 무성한 울퉁불퉁한 산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잘 정비된 산책로다. 1.2km 산길을 걸어보면 신이 숨겨 놓은 산길의 풍경에 빠지게 된다.
볼레오름 기슭에 위치한 존자암은 고승의 수도장으로 알려진 절집이다. '덕이 높고 큰스님이 암자를 짓고 거주하였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존자암은 '한국 불교 최초인 적멸보궁이 봉안돼 있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대웅보전(법당) 뒤를 답사하다보니 처마 밑에 영궁(瀛宮)이라 쓴 편액이 걸려 있다. 영궁(瀛宮), 한자로 영(瀛)자가 ‘신선이 사는 섬’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존자암은 '신선이 사는 궁전'이란 뜻인가?
존자암에서 가장 관심이 되는 것은 절집의 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존자암세존사리탑이다. 세존사리탑은 부도를 말하는 것으로, 존자암의 부도는 특별하다. 일반적으로 부도는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는 탑이기도 하지만, 스님들의 사리를 봉안하기도 한다. 종 모양으로 생긴 존자암의 부도는 연꽃의 봉우리처럼 생겼다.
2000년 11월 1일 제주도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된 존자암세존사리탑 앞에는 이런 안내문이 있다.
한중일 불교 최초 전래지로써 탐라국 제6존자 발타라 존자가 2550년 인도에서 모셔온 세존사리탑입니다. 탐락국 역사와 한국불교가 살아 숨쉬는 성스러운 성지오니 경건하게 참배하십시오. - 한라산 영실 적멸보궁
△존자암을 적멸보궁이라 일컫는데는 존자암지의 경내에 있는 세존사리탑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세존사리탑에 관한 자료는 1650년(효종2년)에 암행어사로 왔던 이경억의 詩에 "千年孤塔在 천년을 지나온 탑 외로이 서 있는데"라고 사리탑을 경외하였다 한다.
성산읍으로 이동하여 시원한 콩국수와 된장찌개백반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한라산과 함께 세계자연유산과 세계지질공원으로 선정된 '성산일출봉'이다.
성산일출봉은 예부터 정상에서 바라보는 해 뜨는 광경이 아름다워 '영주십경(瀛州十景)'에서 제1경으로 꼽혔다. 전형적인 수성화산으로, 높이는 해발 182m다. 원래는 섬이었지만 제주도 본섬과의 사이에 모래와 자갈이 쌓여 연결됐다. 정상에는 지름 600m, 바닥면의 높이가 해발 90m인 거대한 분화구가 있다. 사면이 급한 경사를 이루고 커다란 암석이 분화구의 사방을 둘러싸 마치 옛 성처럼 웅장한 경관을 자랑한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1박 2일 동안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 제주도 여행은 아름다운 추억을 소중히 간직한 채 대전으로 향한다. 배안에서 취객의 주정도, 길을 잘못 들어서 30분 넘게 시간을 허비한 기사의 알바가 여행의 옥에 티였지만 그래도 옥은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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