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 : 2011년 8월 28일(일)
산행코스 : 괴목정-질바위-천황봉(천단)-수용추-암용추-괴목정(원점회귀)
계룡시는 북쪽으로 계룡산과 서쪽으로 향적산(국사봉), 남쪽으로 천마산이 포근하게 품 안아 청정하면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평을 듣고 있는 조그마한 시이다. 계룡산 동학사에서 계룡시 신도안 가는 밀목재를 넘어서면 우측으로 괴목정 공원이 있다.
태조 이성계가 신도안을 도읍지로 정하고 주변 형세를 살필 때 무학대사가 이곳을 지나다가 지팡이를 무심코 꽂아 놓은 것이 나무가 되어 지금까지 살아 큰 괴목이 되었다고도 하는데 그 괴목이 정자 같은 구실을 한다 하여 괴목정이라고 부른다는 유래가 있다. 보호수 수령은 500년이 넘는다.
△괴목정
△산행들머리-산행대장의 산행코스 설명
△으름
△계룡산 용화서 터
△휴식
△천황봉
△쌀개봉
△질바위
△헬기장 오르는 돌계단(천황봉까지 700m)
KBS 계룡산(천황봉)송신소에 도착한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직원의 안내를 받아 천황봉에 오른다.
△KBS중계소
계룡산은 예로부터 풍수 지리적으로 대길지(大吉地)로 여겨져 왔고 조선시대부터 지리산, 묘향산과 함께 우리나라 3악(嶽)으로 불려왔다. 특히 천황봉 정상은 통일신라시대 이래 제단을 설치하고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기 위해 제사를 지냈던 곳이다. 나라에 환란이나 질병 등이 닥쳤을 때는 어김없이 이곳에서 제사를 올렸다.
△천단에서 바라본 삼불봉
△천단에서 바라본 연천봉과 문필봉
△연천봉 등운암
높이 70cm 천단 표석의 재질은 화강암. 표석에 새겨진 "天壇"이란 글씨의 서체는 조선시대 유학자인 동춘당 송준길 선생의 친필 글자가 새겨진 충북 보은 속리산 사실비에서 집자(集字)했다.
등로 왼쪽에 범 한마리가 웅크려 앉아 있다. 범바위다. 호랑이가 웅크리고 앉아있는 모습과 똑같다. 정도령이 나타나 천지개벽 하는 날 신도안을 향해 웅크린 범이 몸을 일으킨다는 전설을 안고 있는 바위가 바로 이곳의 범바위다. 일명 정도령바위라고도 부른다.
문다래미 바위틈으로 등산로가 있다. 문다래미는 다람쥐의 북한 사투리 다래미와 문(門)의 합성어로 된 단어다. 멀리서 보면 다람쥐 형상을 닮은 것도 같다.
어느날 두 마리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본 이곳 사람들은 암용이 하늘로 올라간 자리를 암용추, 숫용이 올라간 자리를 숫용추로 불렀다. 암용추는 용동리에 있는 바위로 된 못으로 계곡의 물이 흐르다가 고인 10여평 남짓의 작은 웅덩이이며 주변 숲과 바위벽이 절경이다. 숫용추와 마찬가지로 암용이 도를 닦아 하늘로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암용추와 숫용추는 옛날에는 땅속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 두 용이 땅속을 통해 서로 만났다고도 전해진다. 실제로 암용추와 숫용추는 직선거리로 약 1km 정도 떨어져 있지만 계룡산 정상에서 보면 같은 능선상에 있다. 또 두 용추는 수심이 4-5m정도 이며 이곳을 제외하고는 계룡산 어느 바위에도 이런 웅덩이가 없다.
숫용추는 계룡시 신도안면 부남리에 계룡산 정기를 받은 바위로 된 못(웅덩이)으로 골짜기를 흐르던 옥같은 맑은 물이 스무자 정도 절벽의 폭포 밑에 깊이를 알 수 없는 검푸른 물이 괸 곳으로 위에서 떨어져 시원스레 부서지는 물소리와 바위벽이 숲과 어울려 신비스런 분위기를 자아내며 숫용이 도를 닦아 하늘로 승천했다는 전설과 동쪽 용동리의 암용추의 암용과 땅속으로 서로 왕래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1958년 여름, 부남리 숫용추 계곡 인근에는 임도(林道)를 내기위해 산길공사가 한창이었다. 이 지역에는 기암괴석 등 암반이 많아 공사가 꽤나 어려웠다. 하는 수 없이 공사업체는 폭약을 이용, 돌을 부수곤 했는데 어느 날 폭파 후 불행히도 숫용추는 물론 숫용추계곡 곳곳이 돌로 메워져 버렸다. 이를 안 주민들은 이곳엔 용이 살았고, 계룡산신이 있는 곳이라며 하루 빨리 메워진 숫용추를 복원하라고 공사업체에 요구했다. 주민들은 만약 이 돌멩이들을 치우지 않으면 계룡산신이 노해 재앙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계곡이 워낙 깊고 인근에 마땅한 공터가 없어 치울 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마을 주민들은 회의를 열고 숫용추 앞에서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하고 용왕과 산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인간들의 힘은 미약해 이 돌멩이를 치울 수 없으니 신(神)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간구한 것이다. 주민들은 이 같은 기도를 연이어 3번이나 올렸다.
기도가 끝난 후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다음 날 주민들이 가보니 바위돌로 메워졌던 숫용추는 단 1개의 돌멩이도 없이 예전과 같아졌다. 기도의 영험인지, 많은 비 때문인지 몰라도 숫용추는 감쪽같이 옛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그 후부터 주민들은 비가 오던 날 숫용추 속에 있던 숫용이 승천하면서 주위를 깨끗이 정리했다고 믿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신도안 주민들은 숫용추의 신비스러움을 똑똑히 목격하였으므로 이 일대를 신이 있는 곳이라고 더욱 깊이 믿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1년에 몇 번씩 정기적으로 산해진미를 차려놓고 기도드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같은 현상은 계룡대로 수용된 이후에도 몇 차례 더 반복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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