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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남도2(순천-송광사)

여행은 자유다.

여행은 마음의 자유고, 몸의 자유다.

여행은 눈의 자유요, 코의 자유이고 입과 귀의 자유이다.

마음이 가는대로 몸이 가고, 눈이 가는대로 보고,

코가 가는대로 냄새 맡고, 입이가는대로 맛을 보며,

귀가 가는대로 듣는 영육의 여정이요, 감각의 유랑이다.

 

































































송광사

송광사(松廣寺)는 대한민국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조계산 북쪽 기슭에 자리잡은 절로서, 합천 해인사(법보사찰), 양산 통도사(불보사찰)와 더불어 한국 삼보사찰로 불리고 있다.


신라 말엽에 혜린대사가 작은 암자를 짓고 길상사라 부르던 것을 시작으로 보조국사 지눌이 정혜사를 이곳으로 옮겨와 수도, 참선 도량으로 삼은 뒤부터 승보사찰이 되었다. 지눌, 진각을 비롯한 16국사를 배출하였으며, 외국 승려가 수도하는 국제선원이 있다.


송광(松廣)이라는 이름에는 몇 가지 전설이 있다. 그 첫째는 18명의 큰스님들이 나셔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 절이라는 뜻이다. 곧 '송(松)'은 '十八(木)+公'을 가리키는 글자로 18명의 큰스님을 뜻하고, '광(廣)'은 불법을 널리 펴는 것을 가리켜서 18명의 큰스님들이 나서 불법을 크게 펼 절이라는 것이다.


둘째로 보조 국사 지눌스님과 연관된 전설이다. 곧 스님께서 정혜결사를 옮기기 위해 터를 잡으실 때 모후산에서 나무로 깎은 솔개를 날렸더니 지금의 국사전 뒷등에 떨어져 앉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뒷등의 이름을 치락대(솔개가 내려앉은 대)라 불렀다한다. 이 전설을 토대로 육당 최남선은 송광의 뜻을 솔갱이(솔개의 사투리)라 하여 송광사를 솔갱이 절이라 풀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일찍부터 산에 소나무(솔갱이)가 많아 '솔메'라 불렀고 그에 유래해서 송광산이라 했으며 산 이름이 절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목조문화재가 많은 사찰로 경내에는 약 80여 동의 건물이 있고, 16국사의 영정을 봉안하는 국사전 등의 국보 3점을 비롯하여 하사당, 약사전, 영산전 등 보물 13점, 천연기념물인 쌍향수 등 국가문화재 17점과 정혜국사사리합 등 지방문화재 10점을 포함, 모두 27점의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승보전과 지장전이 자리하고 있어 장엄한 기상을 나타낸다.














송광사에는 우화각을 받치고 있는 능허교 다리가 있다. 그 다리 천정에는 용머리가 조각되어 있다. 용머리는 물을 타고 들어올 삿된 기운을 잠재워주는 벽사물이다.


이 용머리 철사줄에 엽전 석 냥이 꿰어져 있다. 이 돈은 전에 이 우화각을 불사할 때 쓰고 남은 돈이라고 한다.


당시 책임자가 남은 돈을 주머니에 몰래 쓱싹하지 않고, 남은 엽전 석 냥을 철사에 꿰어 지금껏 걸어둔 것이란다. 이 엽전 석 냥은 나중에 우화각을 다시 고치거나 다시 지을 때 쓴다는 것이다. 안팎으로 청렴결백하게 살라는 앞선 수행자들이 물려준 아름다운 가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