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지나 더위가 한풀 꺾이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처서(處暑)가 지났지만 여름이 닫히기 전 더위는 막바지 기승을 부린다. 성황골과 설악산 널협이골 트레킹의 아픈 기억 때문에 가지산 학심이골 계곡트레킹을 망설이다가 보고픈 얼굴이 있어 길을 나선다.
빈자리 하나 없이 산꾼을 가득 태운 버스는 대전요금소로 들어서 경부고속도로를 거침없이 질주하고 서울산(언양)요금소를 빠져나간다. 곧바로 보이는 석남사 이정표를 따라 24번 국도를 타고 진행한다. 석남사를 지나 밀양으로 넘어가는 도로를 굽이굽이 힘겹게 오르면 석남터널을 만난다. 석남 터널 입구 왼편에 상점 몇 개와 작은 규모의 주차장이 있다. 이곳에서 하차한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경북 청도와 경남 밀양 지역에 걸쳐 있는 가지산은 해발 1240m로 ‘영남 알프스’라 불리는 산악군 가운데 맏형이다.
10시 30분. 신발 끈을 고쳐 매고 도로를 건너 터널입구 오른쪽 들머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처음부터 가파르다. 계단식으로 잘 정비된 등로를 천천히 오른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고 숨이 거칠어질 즈음 능선에 닿는다. 들머리에서 15분소요. 가지산의 웅장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왼쪽은 능동산으로 오른쪽은 가지산으로 갈라진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5분 정도 진행하면 돌탑이 있는 사거리 안부에 닿는다. 오른쪽은 살티마을로 내려가는 길이고 가지산은 직진한다. 5-6분 정도 진행하면 석남사 사거리다. 오른쪽으로 석남사에서 올라오는 길이 보인다. 다시 5-6분 더 진행하면 허름한 석남재대피소가 보인다. 간이매점 무인대피소인데 예전에 난로로 어묵 등을 끓여먹고 그릇 속에 돈을 놓고 온 기억이 있다.
석남사 갈림길
잘 만들어 놓은 나무계단을 오르고 가파른 산길을 숨차게 치고 오르면 가지산중봉(1167m)에 닿는다. 석남재대피소에서 35분 소요. 건너편 산이 운무에 파묻혀 버렸다.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래고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정상까지는 20분 정도 소요된다.
가지산의 여름은 녹색의 숲과 흰 구름의 향연이다. 구름이 산등성을 휘감고 날씨에 따라 온갖 형상을 빚어낸다. 해안에서 몰려오거나 내륙에서 흘러온 구름이 이 산골짜기에서 만나 머문다. 공룡뼈처럼 늘어선 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밀양재
정상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선두 일행이 반긴다. 정상에는 정상표지석과 낙동정맥이라는 표지석이 하나 더 있다. 가지산은 본래 까치산이라는 순수한 우리말 이름으로 가(迦)는 까 의 음을 빌린 것이며 지(智)도 치의 음차(音借)로 까치의 옛말은 “가치”이고 가지산은 옛‘가치메’의 이두로 된 이름이라 한다. 울주군 상북면 사람들은 구름재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자주 구름에 뒤덮이는데서 유래하였다.
운무에 가렸던 북릉이 잠시 모습을 보이더니 부끄러운 듯 이내 운무 속에 숨는다. 정상 한쪽에 자리를 잡고 점심도시락을 펼친다. 삽겹살을 굽고 정상주 술잔이 오고가며 정을 나눈다.
식사를 마치고 선두 뒤를 따라 쌀바위쪽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선다. 울퉁불퉁한 돌길이 미끄러워 조심스럽다. 헬기장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에는 들꽃이 미소 지으며 나그네를 반긴다. 헬기장에서 쌀바위까지는 약 10여분 거리다.
어느 산악인의 추모비를 지나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쌀바위 쉼터에 닿는다. 허름한 쌀바위대피소는 문이 닫혀있고 쉼터에는 몇 사람이 점심식사 중이다. 외국인도 보인다. 상북면 청년회가 세운 쌀바위(미암 米岩)의 전설 안내판을 읽으니 그럴듯하다.
“옛날에 이 바위 아래에서 수도를 하며 산 아래로 가서 탁발하는 스님이 있었다. 어느 날 새벽예불 중에 바위틈에서 한 끼니의 쌀을 발견하고 이상히 여기면서도 밥을 지어 부처님께 공양하고 자신도 먹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쌀은 그만큼 거기에 있었다. 비로소 스님은 부처님께서 탁발을 면해 주시는 것이라 생각하여 더욱 수도에 정진하였다.
어느 해 마을에 큰 흉년이 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탁발승이 오지 않으니 이상히 여겨 스님을 찾아 왔다. 자기를 찾아 온 마을 사람에게 바위에서 쌀이 나오는 이야기를 하였다. 허기진 마을 사람들이 많은 쌀을 얻고자 바위틈을 쑤셨다. 이때 마른하늘에 천둥 번개가 치면서 쌀은 아니 나오고 물만 나왔다. 이러한 일이 있은 뒤로 사람들은 그 바위를 쌀바위(米岩)라 불렀다 한다.”
쌀바위 왼쪽 아래에 있는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운문령 방향으로 향한다. 트럭이 다닐 정도의 넓은 길을 약 7분 정도 걸으면 모퉁이 돌아가기 전 왼쪽으로 학심이골로 내려서는 길이 보인다. 가파르고 미끄러운 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20분 정도 내려서면 계곡 물소리가 들리면서 너덜 길로 바뀐다. 이끼 낀 크고 작은 돌들이 거칠게 널려 있고 각진 돌멩이 사이를 비집고 올라온 덩굴식물이 서로를 의지하며 하늘을 가리고 있다.
20분 후 왼쪽으로 보이는 첫 번째 폭포로 내려선다. 쏟아지는 물줄기가 시원하고, 폭포 아래 작은 소는 첨벙 뛰어들고 싶을 만큼 맑고 투명하다.
△ 천지를 뒤흔드는 우렁찬 물소리가 들려오는 학소대 2폭포.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힘찬 물줄기가 내려꽂힌다.
학심이골은 학이 노닐던 깊은 계곡에서 유래했으며 학심이골에 위치한 학소대 폭포는 먼저 그 위용부터가 장관이다. 아기자기한 여타 폭포와 비교하면 규모 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높이 또한 높고 수량이 많아서 물줄기에서 발생하는 운무가 무지개를 형성하기도 한다고 한다.
우렁찬 물소리를 내며 물기둥을 쏟아내는 학소대 1, 2 폭포와 이를 여유 있게 담아내는 넓고 깊은 소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쌍폭포까지 생각지도 않은 숨어 있는 비경에 마냥 행복하다.
폭포를 보기 위해 계곡으로 내려섰다가 다시 능선으로 올라오기를 반복하고 계곡을 건너다니며 합수점까지 진행한다.
운문사 산내 암자인 사리암 주차장까지는 부드러운 산책로다. 진초록의 숲길을 걸어가면서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자연의 싱그러운 향기가 그대로 전해온다.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이곳이 자연휴식년제 구간이라는 플래카드가 눈에 띤다. 원래 사리암 쪽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 주등산로였지만 오래 전부터 자연휴식년제로 출입이 제한돼 있다.
△신도 차량만 출입허용
운문사까지는 지루한 시멘트 포장도로가 이어진다. 운문사쪽에서 이곳으로 들어올 때는 신도차량만 출입이 허용된다.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쪽에 있는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됐다. 고려 충렬왕 때에는 삼국유사를 쓴 일연선사가 주지를 맡기도 했다. 1958년에 비구니 전문강원이 개설됐고, 260여명의 비구니들이 수학하는 국내 최대의 승가대학으로 유명하다. 30여 채의 건물과 금당 앞 석등 등 7점의 보물을 비롯해 많은 문화재가 보존돼 있다.
뜰에는 수령 500년쯤 되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현세의 업보를 놓으려는 듯 가지를 모두 내린 모습을 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180호다. 주차장까지는 500여m에 이르는 울창한 솔숲길을 지나야 한다.
운문사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친구와 만나 친구의 승용차로 버스가 있는 아래쪽 대형주차장으로 이동하여 근처 찻집에서 정담을 주고받으며 짧은 만남의 시간을 보낸다.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얼굴이지만 언제고 찾아가면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뒤늦게 도착하니 닭죽 끓이던 커다란 솥단지는 바닥을 드러내고, 코바님이 준비한 포도도 모두 제 주인을 찾아갔다.
누군가 그랬다. “인생은 게임이 아닌 즐거운 여행이 되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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