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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13. 공룡능선

산행일 : 2007년 5월 20일(일)

산행코스 : 한계령-중청산장-희운각-공룡능선-마등령-비선대-소공원

 

 

누군가가 공룡능선에 오르지 않고서는 설악을 논하지 말라고 했다.

도대체 설악산의 공룡능선은 어떤 곳이기에 그렇게도 함축성 있게 한 마디로 표현했을까?


꿈이 있고 그 꿈을 위하여 도전하는 용기가 있을 때 그런 사람은 행복하다.

꿈이 있는 중년은 여전히 청년이며 도전하는 중년은 여전히 아름답고 행복하다.

나도 중년에 꿈을 꾼다. 그 꿈은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난 지금 행복하다.


- 2004년 8월 29일 (일) 나의 첫 번째 공룡능선 산행기에서-



토요일 저녁. 가족들과 외식을 하고 집에 돌아와 무박 설악산 산행을 떠나기 위해 주섬주섬 배낭을 꾸린다.


일요일은 나의 마흔 여덟 번째 생일이다. 생일인데 가족과 함께 하지 않고 또 산에 가느냐는 가족들의 무언의 압력을 애써 모른 채하고 공룡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밤 9시 집을 나선다.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욕심을 버리려고 산에 간다하면서 또 다른 욕심에는 벗어나지 못한다.


승차 장소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머털님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도착한 산악회 버스에 오른다.


대전 시내를 돌며 산꾼들을 가득 태운 버스는 대전톨게이트로 들어선다. 신탄진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하고 전조등으로 어둠을 가르며 중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를 차례로 질주한다.

차내는 소등이 이루어지고 모두들 토막잠에 빠져 적막해진다.

  

일요일 새벽 2시 30분. 강원도 인제군과 양양군을 가르는 한계령에 도착한다. 한계령은 높다. 우리가 흔히 '아주 높고 눈이 많이 내리는 고개'라고 생각하는 대관령보다도 90m쯤 더 높은, 해발 920m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가수 양희은이 부른 '한계령'이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랫말 중에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라는 애잔한 가사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한계령의 한에 젖은 듯한 묘한 분위기가 어떤 정서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밤하늘을 수놓은 보석들이 영롱한 빛을 발하며 소리 없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린다. 토막잠을 자며 4시간을 넘게 달려 온 산꾼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지금은 대전에서는 볼 수 없는, 어렸을 적에 시골에서 보았던 그 하늘 모습을 오랫동안 쳐다보며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한다.


오월이지만 한계령의 밤공기는 차다. 운영진에서 준비한 컵라면으로 빈속을 채우고 헤드랜턴 불빛을 앞세워 들머리로 들어선다. 세 번째 타는 공룡이지만 긴장되는 건 내내 마찬가지다.


3시 15분. 산행은 한계령휴게소 뒤 설악루로 오르는 시멘트 계단을 오르면서 시작된다. 이름하여 108계단인데, 번뇌를 털어 내는 계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번뇌 덩어리인 것 같다. 계단 끝에 설악루가 있다.


위령비를 지나면 탐방지원센터로 바뀐 예전 매표소가 있다. 국립공원 입장료를 받을 때는 산행객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며 야간 산행을 통제하더니 입장료가 폐지된 지금은 산행객들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는지 불이 꺼진 채 인적조차 없다.


작년 가을 장수대에서 출발하여 귀때기청봉을 거쳐 이곳으로 하산할 때 산행이 늦어져 랜턴 없이 힘들게 내려온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어제 내린 비로 돌길이 미끄럽다. 작년 7월 집중호우로 곳곳에 산사태가 나 엉망이 되었던 등산로가 정비의 손길로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사방이 고요하고 뒤따르는 일행들의 거친 숨소리만이 귀가에 스친다. 가을에 넘쳐나는 산행 인파로 지체가 심할 때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힘든 줄 몰랐는데 숨이 차도록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들머리에서 약 1시간 15분지나 서북능선 삼거리에 도착한다. 왼쪽은 귀때기청봉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이 대청봉으로 가는 길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음을 옮긴다. 마치 하늘에 불이 난 것처럼 동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여명이 밝아온다.


어느새 날이 밝았다. 이곳은 이제 철쭉이 피기 시작했다. 신록 사이 웅장하게 솟은 암봉들이 한 폭의 산수화를 보여준다.

오른쪽 멀리 대청봉이 보이고 국가시설물이 차지한 중청 봉우리를 오른쪽으로 돌면 끝청갈림길(해발1600m)이다. 중청휴게소는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 잡은 산행객들로 북적인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속살을 훤히 드러낸 공룡의 모습에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저 멀리 동해바다가 까마득하고 운무에 가린 울산바위가 신비롭다. 눈앞에 펼쳐지는 대자연의 파노라마를 감상하며 준비한 떡과 커피로 아침 식사를 하며 휴식을 취한다.


소청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지난해 수해로 엉망이 되었던 것을 잘 정비하여 말끔하게 단장을 해 놓았다. 왼쪽 계단은 봉정암을 거쳐 백담사로 내려가는 길이다. 운무에 감춰졌던 용아가 살짝 그 모습을 드러낸다.


소청에서 희운각으로 내려서는 길은 정비가 한창이다. 갈기를 날카롭게 세운 용의 모습과 무너미고개 위의 신선봉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망이 좋은 바위에 걸터앉아 공룡의 모습에 넋을 놓기를 몇 번 반복하고 긴 철계단을 내려 희운각에 도착한다. 식수를 보충하고 흐르는 계곡물에 등산화와 바지에 묻은 진흙을 털어낸다.


무너미고개(해발1020m). 천불동계곡과 가야동(伽倻洞)계곡의 경계에 위치하여 내외설악을 구분 짓는 곳이다. 무너미의 무는 물에서, 너미는 넘는다(건넌다).에서 왔다. 물을 넘는다(건넌다).란 뜻의 무너미를 한자(漢字)로 수유(水蹂), 수월(水越)이라고도 표기하는데, 이 지명도 전국에 무수히 많이 분포한다.


오른쪽 천불동으로 내려서는 사람들의 모습이 여유롭게 느껴진다. 왼쪽 공룡능선 입구에는 8월말까지 등산로 정비 중이므로 산행을 자제해 달라는 안내문이 걸려있다.


희운각에서 마등령까지 5.1km 구간을 공룡능선이라 부른다. 설악산을 거쳐 가는 백두대간의 등줄기인 이 능선을 경계로 동쪽지역을 외설악, 서쪽지역을 내설악이라 부르며, 그 생긴 모습이 공룡이 용솟음치는 것처럼 힘차고 장쾌하게 보인다하여 공룡릉(恐龍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천천히 오르막길을 올라 신선봉에 올라서면 내설악의 장엄한 경관이 한눈이 들어온다. 갑자기 눈앞에 펼쳐지는 대자연의 파노라마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눈앞으로 펼쳐진 공룡 등에 기암괴석과 첨봉들이 사열하듯 늘어서 있고, 매봉, 1275봉, 그리고 저 멀리 마등령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으로 울산바위와 동해 바다가 보이고, 왼쪽으로 깊고 깊은 가야동계곡과 용아릉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펼쳐진다.


우리나라의 산에는 풍광이 수려한 곳에 신선봉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봉우리가 많이 있지만 이곳 신선봉의 모습이 그 중 으뜸이다.


계속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오르내리기를 반복하여, 천화대에 이르러 자연의 신비한 아름다움에 다시 한 번 감탄한다. 천화대는 20여 개의 바위봉우리로 이루어진 암릉인데, 천불동계곡의 지류인 설악골과 잦은바위골을 가르며 비선대부근까지 흘러내린 이 바위능선에는 석주길, 염라길, 흑범길 등의 유명한 암릉코스가 있다. 천화대(天花臺)에 우뚝 솟아오른 범봉은 설악산 암릉의 상징이라 할 만큼 수려하다.


거친 숨을 토해내며 노인봉(1120m)에 오른다. 저 멀리 비선대 위에 신선암이, 그 멀리에는 울산바위가 바위 사이로 조망되고 동해는 이들을 떠받들고 있는 듯하다. 뒤쪽으로는 천화대 범봉의 웅장한 자태와, 인간들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아 왔던 내설악의 용아장성이 손에 잡힐 듯 하고, 저 멀리 서북 주능을 따라 귀때기청과 끝청, 그리고 운무에 가린 대청봉의 장엄한 모습이 아스라이 멀게만 느껴진다.


곧바로 뚝 떨어지는 가파른 길을 밧줄과 나뭇가지에 의지해서 내려서 샘터(마등령 2.3km)에 도착한다.


1275봉을 오르기 시작하여 10분간 가쁜 숨을 토해내며 치고 올라 1275봉에 도착한다.

엄청난 높이의 수직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멀리 대청봉과 중청봉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마등령 1.1.km 이정표를 지나고 나한봉 오름길이 시작된다. 5분 정도 지나면 밧줄에 의지해서 오르는 협곡 암벽을 만난다. 성벽처럼 둘러친 바위의 밑을 따라가다 한차례 더 가파르게 오르막길을 치고 오른다.


나한봉(1250m) 도착한다. 나한봉(羅漢峰)에 올라서면 험하기로 소문난 용아가 부드러워 보인다. 그 너머로 귀때기청봉, 대승령, 안산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선이 눈에 들어오고, 용아 아래로 가야동계곡(지금은 휴식년)이 보인다. 용아능 너머의 구곡담계곡, 백운골, 귀때기골 등이 모여 수렴동으로 수렴하고 이어서 백담으로 이어진다. 나한봉은 불교의 수호신인 나한(羅漢)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마등령 0.5km 이정표가 보인다. 천만 년을 내려오면서 자연 그대로 간직한 기암괴석의 경치가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며 봉우리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신비함에 매혹된다. 한 마디로 신의 걸작품이요, 명작이다. 공룡능선을 오르지 않고는 설악을 이야기 말라고 했던 말의 의미가 마음에 와 닿는다. 생긴 모습 그대로 공룡이 용솟음치는 것처럼 힘차고 장쾌하게 보인다.


마등령 (해발1240m)에 도착한다. 마등령은 산이 험준하여 손으로 기어올랐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등령의 상징인 돌탑 위의 나무 독수리상은 돌탑의 돌을 이용하여 등산로를 보수하는 바람에 사라졌다. 갈림길이다. 왼쪽으로 내림길은 오세암(1.4km)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비선대(3.7km) 가는 길이다.


일행과 점심식사를 하고 돌계단을 따라 천천히 오른다. 너덜지대를 통과한다. 비선대 2.5km 이정표를 지나고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샘터에서 갈증을 달랜다. 비 온 다음 날이어서 물이 풍부하다.


비선대로 내려가는 길은 너덜 길과 가파른 돌길로 이루어져 결코 만만치 않다.


비선대 0.7km 이정표가 보인다. 정면과 오른쪽으로 소나무와 기암절벽이 어우러져 멎진 절경을 이루며 나그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칼로 자른 듯이 솟구친 암벽이 깊은 골 양편으로 끝없이 이어져 있고, 그 암벽에는 소나무가 그림 속 풍경처럼 자라고 있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하늘 높이 솟구친 암봉이 갖은 형상으로 다가섰다가 뒤로 멀어져 간다. 기이한 암벽들이 마치 병풍을 펼쳐놓은 듯하다.


왼쪽으로 엄청난 크기의 암봉인 장군봉이 위압감을 주며 다가선다. 장군봉 암벽을 릿지하여 기어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찔하다.


산 아래 천불동계곡이 보인다. 금강굴 입구 갈림길이다. 비선대 앞에 우뚝 솟아있는 삼각모양의 돌 봉우리를 미륵봉(일명 장군봉)이라 하며 깎아지른 듯한 큰 돌산 허리에 위치한 자연 동굴인 금강굴은 1400여 년 전에 원효스님이 수행했던 곳이라 전한다.


비선대에 도착하여 넓은 암반 위로 흐르는 계곡물에 탁족하며 20분간 휴식한다. 비선대는 기암절벽 사이에 한 장의 넓은 바위가 못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와선대에 누워서 주변 경관을 감상하던 마고선이 이곳에서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비선대라고 부른다.


새로 놓은 돌다리 오른쪽으로 집선봉과 권금성이 보이고 왼쪽 뒤쪽 멀리 말안장처럼 하늘금을 그은 곳이 길골을 지나 백담사로 이어지는 저항령이다.


소공원 2.5km 이정표를 지나고, 금강교를 건너면 왼쪽으로 신흥사 통일대불이 보인다. 신흥사에서 설악산 관광객을 위해 건립했다는 거대한 청동좌불은 둥그렇게 단을 쌓아 그 위에 모셨고 정면으로는 큰 석등 2개와 향로가 세워져 있다.


두 그루의 멋진 소나무가 자리한 소공원 오른편에 권금성으로 오르내리는 케이블카가 눈에 들어온다. 국립공원입장료는 폐지되었지만 매표소에서는 문화재관람료(실은 신흥사 입장료)를 징수하고 있다.


시내버스(요금 천원)를 타고 B지구 주차장에 도착하여 12시간 반의 산행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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