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개최되는 가장 큰 메이저 대회인 춘천 조선일보와 서울 중앙일보 마라톤대회가 끝났다. 만 명이 훨씬 넘는 道伴들과 함께 같은 길을 달리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경기가 끝난 후 대회 주최 측에서 공개한 완주자들의 기록을 들여다보며 경기과정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를 돌려 보듯이 복기하는 것은 훨씬 재미있는 일이다. 아니 좀 더 솔직히 표현한다면 경기는 별로 즐겁지 않다. 아무리 열심히 훈련을 하여 단련이 되고 준비가 된 몸이라도, 역시 경기는 즐거움보다 고통에 가깝기 때문이다. 반면 경기가 끝난 후 치열했던 시간을 느긋하게 되새김질하는 것은 경기가 아무리 힘들었다 하더라도 고통보다는 즐거움에 훨씬 가깝다. 되새김질은 격렬한 운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통이 없기 때문이다. 어찌 생각하면 경기 후의 그 느긋한 평화, 여유로운 즐김 때문에 마라톤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나의 경우 이 번 서울 중앙마라톤은 실패한 대회다. 기록에 실망했고, 그런 기록을 생산한 나에 스스로 실망했다. 경기 후 며칠은 그 좌절된 희망에 마음이 아프기까지도 했다. 돌이켜서 그 실패의 원인을 분석해보면 내 스스로 테이퍼링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종전에 내가 해오던 방법을 갑자기 바꿔보려 한 것이 기본적으로 화근이 되었던 것 같다.
서울 중앙대회 2주 전에 참가한 하프대회 무렵부터 무리가 있었다. 서울 중앙 3주 전에 참가한 26km 산악마라톤대회 이후부터 하프 대회 전 1주 동안 이틀은 완전히 휴식을 주어야 하는데 하루 밖에 쉬지 않은 것이 테이퍼링 실패의 일차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스피드가 붙기 시작하는 등 몸이 한창 좋아질 때 조심해야한다는 철칙을 무시하고, 하프 대회 4일 전인 수요일에 실시한 서브-3 페이스의 10km 지속주 기록에 고무되어 그 다음날 쉬지 않고 8km를 km당 5분 페이스로 달린 것이 그만 피로를 누적시켜 하프 대회 까지 망친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만약이란 가정이 참으로 우습고 어리석은 일이지만, 종전처럼 목요일에 쉬어주고 금요일에 6km 조깅을 하며 1km를 빠르게 달리며 숨통을 열어준 다음 토요일에 쉬었다면, 일요일 대회는 아주 좋은 컨디션으로 하프 경기를 1시간 28분 전후에 주파했을 것 같다. 그러면 피로도 덜 쌓였을 것이고 이후의 테이퍼링도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어 서울 중앙대회를 그 어느 때보다 좋은 몸 컨디션으로 임했을 것 같다.
그러나 하프 대회 3일 전의 8km 달리기는 결국 독이 되어 힘든 하프 경기와 예상외의 부진한 기록으로 어김없이 이어져 경기가 끝날 무렵에는 오른쪽 종아리가 뭉쳐서는 쉽사리 풀리지 않아 이후 1주일 동안 짧으면서도 강한 훈련을 소화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했다. 수요일에 4km 템포런을 두 개 하는데, 다시 바른쪽 종아리가 뭉쳐 원하는 속도의 훈련을 70%밖에 소화하지 못했던 것이다. 오히려 종아리 근육 상태가 더 나빠져 원래 계획대로라면 대회 1주일 전인 일요일에 12km 전후의 강한 지속주를 해줘야 하는데, 종아리 근육이 풀리지 않아 그 다음날인 월요일에 10km 지속주를 서브-3 페이스로 겨우 해낼 수 있었다.
그래도 다음날 화요일에 8km 회복 조깅을 하고 수요일에 3km 템포런 2개를 km당 4분 08초 속도로 크게 힘들지 않게 달려 뭉쳤던 바른쪽 근육이 완전히 풀린 줄 알았다. 그래서 다음날에는 쉬고 금요일에 6km 조깅을 하며 1km 전력질주를 해주고, 게다가 26층 아파트 계단을 3분 03초의 지금까지 가장 빠른 기록으로 달려 올라갔다. 1km 전력질주를 할 때는 왠지 속도가 별로 나지 않고 발이 지면에 접촉할 때 느낌이 좋지 않았는데, 훈련 후에 평상시의 근력운동과 스트레칭을 한 후 아파트 계단을 빠른 속도로 가볍게 올라 그런 데로 몸 컨디션이 나쁘지 않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모든 준비 훈련은 끝나고 토요일 하루 쉬면 가벼운 마음으로 대회에 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대회를 치러보니 금요일의 훈련에 문제가 크게 있었다. 결과적으로 금요일의 1km 전력 질주와 26층 계단 빠르게 올라가기가 회복되는 몸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 되어버린 것이다. 근육의 피로가 가시기도 전에 다시 오히려 피로가 가중된 것이다. 경기 당일 km 당 4분 20초 페이스로 달리는데도 다리 근육에 젖산이 쌓여 있는 느낌이고, 15km쯤 달리는데 벌써 몸이 힘들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중간에 이O형 선수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 날 3시간 11분 58초의 기록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선수를 따라가 보려고 정신력으로 버텼던 것이 그나마 그 기록을 가능케 했던 것 같다.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었다. 금요일 훈련을 가볍게 조깅만 해주었어도 경기는 훨씬 역동적이고 가볍고 순조롭게 풀렸을 것이다. 금요일 강한 훈련이 나이 62세의 나에게는 경기를 그르치는 2차적인 원인이자 치명적인 독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이런 실패한 경기로 인하여 경기 후 한동안은 내 기록이 60대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냥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지난여름 내가 흘린 땀, 그 노력에 비하여 거둔 수확은 너무 초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으로 간사한 것이 사람의 마음인가보다. 대회가 끝나고 며칠이 지나니 경기 실패에서 온 낙담과 우울은 깨끗이 사라지고 60대 고수들의 전체적인 경기 결과가 슬슬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대회 끝나고 며칠 뒤 대회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완주자 전체 순위와 연령별 순위도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마찬가지로 궁금했던 춘천 조선마라톤대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역시 전체 완주자들의 전체 순위와 연령별 순위도 정리되어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나름대로 양쪽 대회를 비교하니 몇 가지 흥미 있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우선 풀코스 참가자가 서울 중앙은 1만7천 여 명, 춘천 조선은 18,142 명이라 했는데, 완주자는 서울이 5,444 명, 춘천은 11,161명이나 되었다. 조선이 중앙보다 완주자가 배 이상 많은 놀라운 결과가 벌어진 것이다. 5시간 이내 완주자만 놓고 볼 때도, 서울이 5,226명인 반면, 춘천은 9,304명이나 된다. 역시 춘천이 중앙에 거의 배에 가까울 정도로 많다.
완주자수나 완주율에서 그토록 큰 차이가 나는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우선 양쪽 대회에 참가했던 기억을 되살려서 비교해볼 때 우선 달리는 주로가 서울과 춘천은 사뭇 다르다. 서울 대회는 잠실에서 성남을 돌아올 때까지 시종일관 도로가 춘천대회에 비해 거의 배 이상 넓다. 또한 긴 직선도로가 군데군데 펼쳐져 있다. 같은 속도로 달려도 직선의 넓은 도로에서는 곡선의 좁은 도로보다 쉽게 지친다. 넓은 도로는 좁은 도로에 비하여 같은 속도로 달려도 속도감을 덜 느끼고, 또한 직선의 긴 도로는 곡선의 도로보다 변화가 별로 없어 지루함을 훨신 많이 느끼기 때문이다.
주로 주변의 풍경도 춘천대회와 서울대회는 많이 다르다. 서울대회는 잠실에서 수서역 까지 빌딩 숲속을 달려야 한다. 수서역을 지나야 비교적 시야가 확 트이는 것 같은 시원한 전원 풍경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춘천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전원적인 풍경 속을 달린다. 무엇보다 호수와 산을 바로 옆에 끼고 달려 수려한 경관 면에서는 수서에서 반환점인 성남 공항까지의 왕복길 주변의 전원적인 풍경도 비교가 안 될 정도다. 웬만큼 단련되고 준비된 러너라면 춘천대회에서는 그 아름다운 풍경의 변화에 지루함을 느낄 사이가 없다. 아름다운 경관 속에서는 같은 속도로 달려도 역시 훨씬 피로감을 덜 느낀다.
양쪽 대회 코스 주변의 교통여건도 완주 여부에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춘천은 중간에 힘들어 포기하고 싶어도 회수차를 이용하지 않으면 출발선으로 복귀할 교통수단이 마땅히 없지만, 서울은 출발지점인 잠실과 수서 사이에 얼마든지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쉽게 포기의 유혹에 말려들 수 있다.
어떤 주자들은 춘천대회 코스에는 25km 전후해서 상당히 긴 언덕 오르막이 있어 기록을 내기에는 서울이 춘천보다 낫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보이에는 그 난이도가 비슷하다. 춘천은 피로가 몰려오는 30km 이후에 언덕 오르막이 없지만, 서울은 30km 이후에 서울공항 정문에서 신촌동으로 넘어가는 언덕, 세곡동에서 율현동으로 넘어가는 언덕, 수서역 근처와 40km 지점 근처의 언덕 등 경기 종반에 여러 개의 언덕이 도사리고 있다. 결코 서울대회가 춘천대회보다 공략하기 쉬운 코스라 단언할 수 없다.
결국 양쪽 대회를 비교할 때 완주자수가 엄청난 차이를 보인 이유는 주로와 주변의 환경 등 종합적인 조건에서 춘천이 중앙보다 훨씬 앞섰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환경요인 못지않게 날씨도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이긴 하나, 춘천이나 서울이나 모두 날씨는 예년에 비해 달리기에 상당히 적합한 기온이었다. 그래도 굳이 어느 한 쪽을 선택하라면 날씨도 마라톤 경기하기에 춘천대회가 서울대회보다 조금 나았건 것 같다.
정작 내가 궁금한 사항은 연령대 시상이란 제도의 유무가 참가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 하는 점이었다. 서울 대회는 부상의 내용이 뭔지는 모르지만 연령대 시상이 있었고, 춘천은 경기가 끝난 후 연령대 순위는 발표하지만 별도의 시상은 없다. 따라서 연령대 시상의 존재 여부에 따라 각 연령대 입상권에 있는 고수들이 양 쪽 대회에 얼마나 참가했는지 그 숫자가 상당히 궁금했던 것이다.
30대와 40대는 종합 순위나 연령대 입상을 하려면 풀코스 2시간 30분대에서 40분대를 달려야 하기 때문에 경기 후 그 기록을 달성한 선수만 숫자를 파악해보니, 30대에서 춘천은 2명, 서울은 12명이었다. 압도적으로 서울이 많았다. 40대에서는 춘천이 26명, 서울이 30명이었다. 거의 비슷했다. 50대에서는 연령대 입상을 하려면 2시간 40분대에서 50분대를 달려야 하기 때문에 역시 경기 후 그 기록을 달성한 선수 숫자를 파악하니, 춘천은 66명, 서울은 80명이었다. 서울이 훨씬 많았다. 60대에서는 연령대 입상을 하려면 서브-3나 최소한 싱글 기록을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경기 후 그 숫자를 확인하니 춘천은 2명, 서울은 9명이나 되었다. 압도적으로 서울이 많았다. 70대에서는 연령대 입상을 하려면 최소한 3시간 40분대 이내에는 들어야 할 터인데, 춘천에서는 단 한 명도 없었고, 서울에서는 8명이나 되었다.
다만 한 가지 밝혀둘 것은 나이 기준이 서울과 춘천이 조금 달랐다는 점이다. 60대의 경우 심O성 선수가 춘천대회에서 서브-3를 했는데 60대 명단에는 오르지 않고, 서울대회에서는 60대 명단에 올라 있었던 것이다. 나이 60의 기준을 춘천은 53년생 이전 출생자나 대회일 기준하여 만 60세 나이, 서울은 54년생 이전 출생자로 정한 모양이다. 때문에 내가 파악한 숫자는 양쪽 대회의 기준이 서로 달라 약간의 오차가 있을 수 있다. 그런 오차를 감안하여도 양쪽 대회를 비교하여 한 가지 알 수 있는 사실은 역시 연령별 시상이 있는 대회에 각 연령대 고수들이 많이 참가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그 격차가 심해짐을 위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60대와 70대에서 그런 현상은 두드러졌다. 나이가 많은 연령대의 고수일수록 연령대 시상이 있는 대회에 관심이 많고 경기에서도 매우 적극적인 달리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래서 양쪽 대회를 비교하며 이 자리를 빌려 한 가지 주문하고 싶은 것은 조 중 동이 개최하는 메이저 급 대회만이라도 연령대 기준을 통일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보다 객관적인 비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메이저 대회가 완주한 선수들의 개인 기록뿐만 아니라 그 전체 순위와 함께 연령대 순위까지 공개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밝히는 정보가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마라톤 경기에 대한 이야기 거리는 그만큼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다음부터는 연령대뿐만 아니라 각 연령별 순위까지 밝혀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것이 작업상 시간이 많이 걸려 어렵다면 각 연령별 최고 순위 10위(?)까지의 기록과 이름이라도..... .
아무튼 내년에는 메이저급 대회만이라도 다양하고 유익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공개하여, 다양한 이야기 거리로 큰 대회 이후 올 수 있는 허탈감이나 우울증을 최소화하는데 큰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마라톤과 소소한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활체육 합동훈련(건강달리기) (0) | 2013.12.23 |
---|---|
2013 생활체육 육상경기장에서... (0) | 2013.12.17 |
어느 러너의 2013중마후기[펌] (0) | 2013.11.11 |
2013 춘마후기-또 한 번의 가을의 전설을 발로 쓰다. (0) | 2013.10.30 |
전마협주최 대전대 트랙연습경기(2013-10-09) (0) | 2013.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