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던 육식을 끊고 현미채식을 하면서 헬스장에서 밀을 달리기 시작한지 6개월, 12kg 감량에 성공했다. 덕분에 고혈압과 비만도 정상으로 돌아왔고.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달려야 했다. 그래서 마라톤을 시작하였다.
2012년 초 마라톤에 입문하면서 목표는 ‘내 평생 풀코스 한 번 완주해 보자’였다. 울트라마라톤은 알지도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온 힘을 다해 42.195km를 달리고 나면, ‘내가 두 번 다시 마라톤하면 성을 간다!’고 이를 악물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달리는 이유는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해냈다는 데에서 오는 묘한 희열감 때문일 것이다.
마라톤에 입문한 후 도중에 회수차를 탈 생각으로 경험삼아 첫 출전한 마라톤대회에서 얼떨결에 풀코스를 완주하였다. 풀코스 3번을 완주한 지난해 여름 어느 날, 주주클럽 화요정달에서 유성울트라마라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울트라마라톤은 그냥 달리고 싶은 대로 달리면 된다. 달리다 힘들면 걷고, 그마저도 지치면 잠시 쉬어 가도 된다. 또, 달리다가 도중에 식사도 하고 피곤하면 잠을 자도 된다는 등등.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나도 ‘울트라마라톤(Ultra Marathon)에 한 번 도전해볼까?’ 문득 그런 욕구가 생겼다.
인간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 울트라마라톤! 풀코스 마라톤에 비하면 분명 대단히 고통스러운 도전이 될 것이다. 국내 대부분의 울트라대회는 마라톤 풀코스 이상 완주자에게만 참가 신청을 받고 있다. 사실 풀코스 마라톤 출전 경험이 많다 할지라도 울트라마라톤은 그리 쉽지 않은 도전이다. 42.195km는 꾸준한 연습을 통해 가능한 레이스이지만, 100km를 달리는 일은 체력은 물론 강인한 정신력과 인내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2013년 5월 25일 토요일 오후. 식빵과 두유로 좀 이른 저녁식사를 하고 마라톤배낭을 챙겨 대회장으로 이동한다. 토요일 오후라 교통체증이 심하다. 출발 30분 전에 겨우 만년교 근처 행사장에 도착하여 배번과 기념품을 받았다. 서둘러 배번호(9001번)와 배낭에 등번호를 부착하고 전국에서 모인 60쥐띠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한다.
내가 속한 주주클럽은 이번 대회에 가장 많은 33명이 출전했고 회원들과 가족들까지 수많은 분들이 응원을 나왔다. 자랑스러운 대전 주주클럽 유니폼을 입고 첫 도전하는 유성울트라. 설렘반 두려움반이 교차한다.
오후6시 드디어 출발. 250리의 대장정이 시작된다. 한밭대학교 앞을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주주클럽의 대성산님, 뚜버기님, 독립군님과 나처럼 울트라에 첫 도전하는 해망산님, 오월드님과 그룹을 이루어 동반주를 한다.
대전현충원을 지나 삽재 고갯길은 천천히 걸어 올라간다. 언덕인데 앞에서 달리던 주자들이 갑자기 뛰기 시작한다. 고갯마루에서 사진촬영중이다. 우리 일행도 멎진 포즈를 취하면서 뛰어오른다.
박정자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학봉리로 향한다.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고 주로에서 안내 요원들이 깜박이를 켜라고 한다. 학봉리를 지나 동월계곡 입구부터 밀목재를 걸어 오른다. 내려앉은 어둠속에서 전조등과 깜박이 등이 멋진 장관을 연출한다. 괴목정 근처 공원에서 텐트를 치고 토요일 밤을 즐기는 사람들이 마냥 부럽다. 조금 지나 육, 해, 공군 3군 본부가 위치한 계룡대를 지나 신도안으로 접어든다.
20km 지점 편의점에서 해망산님이 사 준 콜라로 갈증을 달래며 잠시 휴식을 하는데 갈매기님이 도착한다. 100회가 넘는 풀코스 완주 기록과 수많은 울트라완주 경험이 있지만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이번 레이스를 포기해야 할지 고민해 봐야겠다고 한다. 부디 컨디션을 회복하여 완주를 기원하며 먼저 출발한다.
21.3km 계룡사거리에서 대회조직위가 간식을 제공한다. 절편과 커피가 꿀맛이다. 식수를 보충하고 응원 나온 갑장 친구들과 헤어져 다시 여정을 이어간다.
계룡시내로 접어든다. 계룡IC가 보이는 왕대사거리지점에서 좌회전하자 30km 표지가 반긴다.
앞 서 달리던 용진이와 근중이 그리고 그들과 함께 달리던 산머루가 힘들어 한다. 잠시 우리 그룹에 합류하여 동반주를 하다가 점차 뒤로 쳐진다.
논산시 벌곡면 길로 우회전한다. 주로에서 기다리던 표주박과 하늘천사가 종이컵에 콜라를 따라준다. 갈증을 날려 보내고 1km쯤 더 진행하자 미루나무님과, 느림보님이 식수 봉사를 한다. 캔 음료수를 하나 받아 배낭에 넣고 달린다.
벌곡삼거리를 지난다. 논에서 개구리들 합창소리, 축사를 지날 때 코끝을 자극하는 심한 악취,
밤새도록 짖어대는 개소리, 소쩍새 노래 소리와 반딧불이, 아카시아 꽃향기...모두가 이제는 도시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스쳐 지나간다.
때마침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힘들지 않느냐, 너무 무리는 하지마라.” “할만하다. 재미있다. 걱정마라.” 안심을 시키고 황룡재를 넘는다. 논산시 벌곡면과 연산면을 이어주는 이 고갯길은 옛날에 산적이 많이 나타났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어둡고 굽은 길이라 지나가는 차들로 위험하다. 대추로 유명한 연산면으로 빠르게 내려선다. 조금 있으면 주주회원들만 맛볼 수 있다는 이곳 연산오골계 삶은 계란을 생각하며 힘차게 달려간다.
11시 50분. 45km 제1CP(Check Point) 노인회관에 도착한다. 갑장 친구 병로와 주로에서 식수 봉사하던 표주박과 하늘천사가 반갑게 맞아준다. 자원 봉사자분들이 퍼주는 따뜻한 된장아욱국밥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해치운다. 삶은 오골계 계란도 먹고 커피로 입가심을 한 다음 다리 마사지까지 받고 바람소리님에게 기념사진을 부탁한다. 30분 정도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출발한다. 언덕이 그리운 평지가 계속된다.
아스팔트 도로에 50km 표시가 보인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다. 7시간 소요.
깜깜한 밤, 앞선 사람들의 점멸등도 보이지 않고 웅크린 검은 산만 보인다. 가로등도 없고 다니는 차도 없는 한적한 시골 길, 산골 속에 묻혀있는 동네의 집들도 모두 잠들어 그저 고요한 적막만이 흐르는 길이다. 들리는 건 잠들지 못한 개구리와 소쩍새 소리 그리고 내 발자국 소리뿐이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르는 길이다.
57km 지점 석정사거리를 지나자 누군가 부른다. 선달님이다. 약 2km 전방에 주주캠프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멀기만 하다. 1km 정도 달려가자 모텔 앞에서 제제님이 반긴다. 이 길을 벌서 네 번이나 왔다 갔다 했단다. 열성이다. 마냥 고맙다.
59km 지점 신원사 삼거리에 자리 잡은 주주캠프에 도착하니 병로와 미루나무님, 느림보님, 제제님, 비소리님, 선달님, 이원숙님, 보라나님, 센스쟁이님, 찹쌀떡님, 이수원님 등등 대단한 환영인파다. 감동과 고마움에 가슴이 뭉클하다. 각종 음료수와 맥주 그리고 과일에 육회까지 잔칫집 분위기다. 달리는 님들도 응원하는 님들도 한마음으로 단합된 모습이 주주답다. 형제도 저리 열정적으로 응원을 하진 못할 것이다.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있는 이츠수님이 합류하여 다시 출발한다. 논산시 상월면 상도리를 지나는데, 길옆에 있는 농가의 닭장에서 수탉이 ‘꼬끼오~꼬끼오’ 운다.
63.6km 하대삼거리에 도착하자 대회조직위에서 초코파이와 콜라를 제공한다. 식수를 보충하고 낮에 걸으면 운치 있을 시원한 가로수 길을 뛰어가면서 앞선 주자들을 추월한다.
70km 지점쯤에서 갑사터널이 보인다. 터널길이가 약 500m 정도다. 차량 통행이 없고 우리 일행뿐이다. 터널을 빠져나오자 스치는 새벽 공기가 상큼하다.
75.5km 제2CP 마티휴게소에 도착하자 청남대님이 배번호 체크를 한다. 먼저 도착한 카스님이 보이고 미루나무님, 스매님이 반긴다. 시원한 수돗물에 세수를 하고 울트라님이 건네는 누룽지탕을 두 그릇이나 비운다. 최진사님이 도착한다. 기념사진을 찍고 휴식을 취하면서 컨디션을 체크해 보니 비교적 양호하지만 약간의 무릎통증이 느껴진다. 의료 봉사하는 정세현님께 마사지를 부탁한다. 1cp, 2cp에서 의료봉사를 해주신 정세현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해망산님에게 먼저 출발하겠다고 하고 보라나님이 사 온 김밥을 먹고 있는 일행들을 뒤로하고 혼자 출발한다.
마티재. 이 고갯길은 마티터널이 뚫리면서 이제는 차량통행이 거의 없어 한적하다. 굽이굽이 언덕길을 따라 오르길 30여분, 마티재 정상에 닿는다. 간이식당 나무의자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며 젖은 양말을 갈아 신고, 최진사님 일행을 따라 마티재를 내려서면서 달리기 시작한다. 최대한 무릎에 충격이 없게 발에 체중 싣는데 집중한다.
차량으로 주로 봉사하던 피오나님에게 캔 음료수 한 개를 받아들고 혼자 진행한다. 지금부터 는 나 자신과의 마지막 싸움이 시작된다.
혼자 뛰는 것이 힘든 지루한 길이다. 내가 지금 잘하는 짓일까? 갑자기 권태감, 회의감 등 무수한 잡념들이 머릿속을 침범한다. 그런 잡념에 정복당하지 않으려고 꾸준히 앞으로 걸음을 내딛는다. 나는 나를 믿는다. 살아있는 것을 느낀다. 감사하다. 행복하다. 걷고 있는 주자들을 한 명 한명 추월한다. 멀리서 걷고 있는 거북이님이 시야에 들어온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함께 걷는데 해망산님이 앞질러가며 인사를 건네자 거북이님이 빨리 따라가라며 재촉한다. 그러나 해망산님은 바람같이 사라진다.
왜 달리는 걸까? 나를 아는 사람들과 나를 모르는 사람들, 세상 어떤 사람들 앞에서도 나는 100km를 코로 숨쉬며 온전히 두발로만 마지막까지 웃으며 즐겁게 달릴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나 이렇게 살아있노라고, 심장 펄떡거리며 공기를 가르고 땅을 디디며 달릴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 달리는 것이다.
90km 표지판이 눈에 들어오고 대회조직위에서 아이스크림(설레임)을 적당히 반쯤 녹여 빨기 좋게 만들어 제공해 준다. 설레임을 빨면서 언덕길을 걸어 오른다.
반석동으로 접어든다. 염분 섭취 없이 계속 생수만 마셔서인지 약간 현기증이 난다. 갈수록 지치고 속까지 메슥거리며 물을 마셔도 갈증이 잘 가시지 않는다.
94km 지점 스매님, 제제님이 그리고 환식님이 보인다. 갑자기 힘이 솟는다. 오른손을 번쩍 들고 힘차게 내달린다. 환식님이 건네는 바나나 우유 덕분에 메슥거림이 없어졌다. 아침까지 이어진 주주자봉님들의 열정적인 응원 덕에 마지막 힘을 낸다. 매번 받기만 하는 이 고마움을 어찌 갚아야 하나. 내년에는 자봉으로 보답하리라 다짐하며 달려간다.
95km 지점 월드컵사거리에서 대회조직위가 바나나와 식수를 제공한다. 식수만 보충하고 고독한 레이스를 이어간다. 주로를 이탈할까봐 갈림길에서 안내해주는 자원봉사자의 안내를 받아 신호등을 건너 유성천 하상도로로 접어든다.
앞뒤로 주자가 없다. 어차피 울트라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육신의 고통과 졸음에 배고픔과의 싸움이다. 발바닥, 발등, 발목, 발가락, 장단지, 무릎, 허벅지, 옆구리, 어깨, 허리 등 안 아픈 곳이 없다. 무의식적으로 달린다.
시민 공원 모퉁이를 돌자 갑천 만년교가 보인다. 끝이 보인다. 힘이 들지만 두 손 번쩍 들고 웃는 모습으로 FINISH 라인을 밟는다. 대회조직위에서 꽃다발을 쥐어 주며 카메라 앞에서 멋진 포즈를 취하라고 한다.
100km 골인 14시간 16분. 정말 멀고 긴 시간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혼자였다면 지금 이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주주회원이어서 울트라 완주가 가능했다.
대회조직위에서 제공하는 유진호텔 사우나로 향한다. 냉탕에 들어서니 마치 천국에 온 듯 행복감이 밀려온다. 다시 주주텐트로 돌아와 대회조직위에서 제공하는 미역국밥으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정말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유성울트라! 내 인생에서 이렇게 긴 시간 밤새며 달린 것이 처음이었고 색다른 도전이었다. 많은 분들의 봉사와 응원으로 처음 달린 울트라마라톤 완주의 기쁨을 오랫동안 간직하며 추억할 것이다.
장하다 강경수 살아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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