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어느님의 블로그에서 발취한 내용입니다.
운남성의 특징과 소개
운남의 수도인 곤명이 해발 1800미터이고 따리가 2200, 리지앙이 2400, 중띠엔이 약3000, 더칭이 3500미터가 넘는다!
물론 시솽판나 같은 지역은 해발 140미터로 끝나기는 하지만 운남을 여행하는 분들이 시솽판나만 가고 다시 이 곳 운남을 떠나는 일은 거의 없기에 날씨에 대한 적응을 항상 하여야 한다.
먼저 운남은 각 계절별로 보시고 자 하는 곳이 다 다르다는 것을 인지를 하셔야 합니다.
우기인 6월말에서 8월까지, 그리고 눈이 내리는 한 겨울엔 윗 쪽으로의 여행은 길이 아예 끊겨 차가 이동을 않하기 때문에 자제가 아닌 불가능한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운남성에 오는 여행자들은 정보를 알아보고 2-6월 9-11월에 가장 많이 찾곤 한다.
그러나 우기와 겨울에도 그 나름대로의 멋이 있습니다. 또 우기라고 해서 매일 24시간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를 좋아하시는 분은 이 시기에 여행을 하시게 되면 상상도 못하는 가격에 그 엄청난 장어와 송어를 드실 수가 있고요,
또한 우기에는 평소엔 잘 보이지 않는 구름들의 향연을 볼수있다. 그냥 한 곳에 앉아 산과 호수에 걸려 있는 구름들의 각각의 형상들만 보면서 아! 하고 감탄을 하다보면 시간이 금방 흘러 배가 고프죠.... 한마디로 운남성은 일년 사시사철 여행자들에게는 너무나 좋은 곳이라는 겁니다.
운남을 대표적하는 곳을 그냥 순 번 대로 적어 봅니다.
여러분들께서 만약 이 곳 운남을 거쳐 라오스나, 베트남으로 이동을 하신다면 코스의 수정은 있어야 합니다. 또한 중간 중간에 이동을 하실 수가 있는 데, 아니면 제가 모르는데 님들이 아시는 곳도 있을 수가 있고요......
먼저 곤명을 중심으로 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항공이나 기차가 모두 곤명으로 들어오기 때문이죠. 곤명에는 가볼 만한 곳이 그다지 많지가 않습니다. 많은 여행사들이나 항공회사들이 곤명하면 원통사, 취호공원, 금전등등을 선전을 하는데 막상 배낭여행자가 가서 볼만 한 곳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만약 님께서 사천성에서 이동을 해서 곤명으로 오신다면 바로 곤명으로 들어오지 마시고 웬모라고 하는 곳을 들렸다가 오시길 바랍니다.
그 곳은 우리가 소시적에 배웠던 베이찡원인, 웬모원인(원모)할 때의 그 원인이 난 곳입니다.
또한 토림이라는 곳이 있구여, 석림은 돌덩어리의 산이지만 이 곳은 굴자 그대로 흙덩어리죠...그리고 이족(중국의 소수민족중에 하나)의 박물관과 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가 있구여....
곤명은 운남민족촌정도를 보시고 이동을 하시면 됩니다.
이 운남민족촌은 현재 운남성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의 마을을 조그마하게 각각의 독립마을로 구성을 해 놓고 시간대별로 각 소수민족의 공연을 하는 곳입니다. 아주 예쁜 샤오지예들이 멋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곤명에서 가까이 갈 수 있는 곳을 중심으로 분류를 나눠보면...
곤명에서의 이동을 할 때는 기차역은 어짜피 도착을 하시면 아실 거구여, 만약 항공으로 도착을 하시면 공항에서 역까지 15원이나 20원이면 혼자 타고 나올 수 있습니다.
곤명에서의 터미널은 역을 등지고 그 앞으로 쭉 뻗어있는 길이 베이찡루인데 그 길을 따라 앞으로 전진을 하시면 첫번 째 사거리에 터미널이 있습니다.
이 곳에서 징홍, 다리등등을 널널히 가실 수 있습니다.
만약 밤에 침대 버스로 따리로 이동을 원하시면 그 시거리에서 좌측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삼원빈관이 있는데 그 길 건너편에 침대버스가 대기중입니다.
* 첫 번 째 석림과 구향동굴, 그리고 약간은 멀지만 롸핑(羅坪)이라는 곳 있습니다.
석림은 많은 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계림에서 오는 보통열차가 지나는곳 이기도 하고요, 곤명에서 아주 가까이에 있어 아침 기차로 석림을 보시고 다시 곤명으로 돌아 오기가 수월한 곳입니다.
구향동굴도 곤명에서 당일치기로 충분히 가능한 곳이구여....
위의 두 곳을 저렴하게 볼 수 있는 방법인데요, 이 부분의 단점은 같이 여행하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희가 사용을 했는데 일인당 50원에 구향동굴의 문표를 끊었고 케이블카도 타고 배도 탔습니다. 물론 점심도 해결을 봤구요.
이 방법은 인원수를 모아서 곤명 역 앞의 어느 여행사던 지 상관이 없으므로 그 여행사에 가서 우리가 몇 명인데 내일 구향(석림)을 갈려고 하는데 얼마면 되느냐 하고 흥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중팔구는 아주 저렴하게 갈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 단점도 있습니다. 가면서 곳곳의 물건파는 곳에 들린다는 점인데 물건은 안 사면 됩니다. 많은 차들이 줄지어 들어가기 때문에 상관이 없습니다. 단 물건을 안사고 우리가 원하는 것만 보시 때문에 안내를 하는 가이드가 서운 할겁니다. 물건은 사지 마시고 차라리 서로 돈을 조금낏 걷어 100원정도를 팁으로 주면 됩니다. 입이 벌어지죠.
그렇게 해도 훨 싸게 다녀 오는 것이 됩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우리는 물건엔 흥미가 없으니 우리가 너에게 팁으로 얼마를 줄테니 그냥 가자고 해도 되구요.....
* 두 번 째 롸핑은 곤명에서 갈 수도 있고 곡정(曲精)에서도 갈 수가 있습니다.
이 곳은 유채밭이 엄청난 자태를 뽐내는 곳입니다. 엄청난 유채밭의 중간에 계림에서 볼 수 있는 그러한 산들이 조그마하게 있는데 그 수가 엄청납니다. 그리고 롸핑에서의 또 볼거리는 구룡폭포입니다. 그 크기가 상당히 큽니다. 입이 벌어집니다. 이 곳을 여행을 하시려면 3월초-말이 아주 좋습니다. 이 때가 엄청난 유채의 군상을 볼 수가 있습니다.
* 세 번 째 웬양(元陽)입니다.
이 곳은 건수(建水)의 바로 옆에 있으며 우리나라의 사진 작가들이 줄기차게 찾는 계단식 논이 엄청난 곳입니다.
이 곳은 곤명에서 건수를 가는 버스를 이용을 하여 건수부터 훌터서 보시면 됩니다. 이 곳에서는 소수민족의 마을을 찾아가 보시는 것도 아주 좋습니다. 물론 이 곳도 계절을 잘 맞춰서 가셔야 사진작가된 기분을 만끽을 하실수가 있습니다.
* 네 번 째 징홍(慶洪)입니다.
웬양에서 나와서 다시 곤명을 가는 것이 아닌 밑으로 내려가 징홍으로 가보세요.
우리에게는 시솽판나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입니다.
중국에서 다이족(泰族)으로 불리우는 소수민족이 있구요. 봄에 물축제 있는 곳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적당한 몸매에 예쁜 얼굴을 갖고 있는 소수민족인데 얇은 옷을 입고 서로 물을 뿌려가며 축제를 즐기는 모습은 여러분의 머리속을 하얗게 만들어 드릴 겁니다.
이 곳의 기온은 일년 중에 젤 추운 때의 온도가 영상 11도이고 한 여름의 가장 더운 때는 4월로 34도 입니다. 일년 내내 낮 기온은 25도 이상이구요.... 이 곳에서 열대 우림을 보실 수가 잇습니다. *라오스로 가시는 분들은 이 곳을 맨 나중에 가셔야 합니다.
*다 섯 번 째 징홍에서 버스를 타고 20시간 정도를 달리면 제가 가장 좋아하는 휴식의 도시 따리(大理)가 나옵니다. 이 곳 따리는 옛날 대리국의 수도였었고 지금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리석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이 곳 따리는 아주 크게 볼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수 많은 여행자가 2-3일을 거쳐 갈려고 왔다가 비자까지 연장을 하고, 그러고도 미련을 갖고 떠나는 도시입니다. 풍수지리적으로 어머님의 모태처럼 사람의 마음을 아주 편하게 해주는 도시입니다. 이 곳은 창산이 있고 얼하이 호수가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는 엄청난 크기의 장어가 있습니다.
또한 남조시대의 와의 별장이 있었던 섬이 있는데 이 곳 따리의 넘버3 게스트 하우스의 이장이자 사장님이신 문영배님께서 그 코스를 개발해 우리 한국 여행자들에게 아름답고 환상의 밤을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느끼는 분에 따라 다르지만 이 곳으로 신혼 여행을 오신 분의 말로는 천국이라고 합디다. 넘버3에 오실 때 잘 모르시면 0872(따리의 지역번호)-266-4941번으로 전화를 하시면 찾아오시는 방법을 알려 드립니다. 제 개인적으로 중국의 어느 곳을 가보아도 이 곳 넘버3만큼 아담하고 편하고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곳에 들어오면 물론 계절에 따라 약간은 다르지만 등나무에 핀 꽃 수천송이가 꼭 두 손 모아 선물을 하는 것처럼 여러분을 반갑게 맞이 할겁니다.
* 여 섯 번 때 리지앙(麗江)입니다.
이 곳은 옥룡설산이 있으며 중국내에서도 단 하나 밖에 안 남은 완벽한 고성이 있는 곳입니다. 다른 많은 곳의 고성과는 달리 이 곳은 고성의 안으로 여러 개의 수로가 있어 아주 아름답고 건물 또한 옛날의 건물을 그대로 사용을 하고 있는 곳입니다. 고성자체가 아주 이쁩니다.
이 곳 리지앙에는 한국인 김명애씨가 벚꽂마을(사쿠라 카페)을 운영을 하고 잇습니다. 집에 한국 영화 DVD가 약 60여편 있습니다. 이 곳에서 일부러 옥룡설산을 올라 갈 필요는 없습니다. 모우평, 운삼평, 백수하, 동파 유적지, 옥수대등을 보시면서 옥룡설산의 장관을 보시면 됩니다.
이 곳을 가실 때에는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다시면 입장료를 반액 할인해 줍니다. 학생증으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전 날 여관 주인에게 말하면 택시를 빵차해주는데 하루종일 위의 곳을 다 가고 또 기다려주고 하루에 80-100위엔입니다. 싼거죠. 물론 이 곳도 성수기엔 비쌉니다.
물어봐서 용천사(龍泉寺)라고 하는 백족의 전통마을도 가보세요. 마을이 이쁘더군요....
* 일 곱 번 째 루구호(淚沽湖)
리지앙에 터미널에 3곳이 있는데 모택동 동상이 잇는 곳의 앞에 있는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루구호를 가보세요. 해발 약 2600미터에 있는 모수족의 마을인데 모계사회의 전통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버스를 타고 링량이라고 하는 곳에서 우리나라의 다마스같은 차로 바꿔타고 이동을 하고요, 처음에 버스표를 끊을 때 이미 가격은 다 지불이 되어 있어 그냥 타고 가면 됩니다.
전 이 곳에서 처음으로 하늘을 보면서 목이 아프다는 것을 느꼈읍니다. 왜냐구요? 일단 가서 하늘을 보세요. 원 하늘에 빈 공간보다 별이 더 많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을 시켜주는 곳이 바로 루구호입니다. 그리고 초해라고 있는데 어떤 분이 그 곳이 좋다고 해서 3시간을 말타고 갔었죠. 그리고 이 곳에서 사천성으로 나갈 수가 있구요, 아님 다시 리지앙으로 돌아가 운남의 여행을 계속 하시면 됩니다.
* 여 덟 번 째 리지앙에 왔으면 호도협(虎跳峽-후토샤)을 가셔야 하지요.
옥룡설산을 바라보면서 산을 트래킹을 하는 것입니다. 1박 2일에서 2박 3일정도로 계획을 잡고 움직이시는 것이 좋구요.
당근 리지앙에서 치아터우라는 곳까지 버스가 있습니다. 이 곳에서 호도협의 트래킹을 시작을 합니다. 호도협은 중국에서 열심히 선전을 하기를 세계에서 젤 깊은 협곳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호도협을 트래킹을 하실 때 28밴드라고 마의 고개를 넘어 가면 나오는 첫번째 게스트 하우스인 차마객잔(茶馬客棧)-TEA HORSE GUEST HOUSE에 가셔서 묵으시면 닭백숙을 드셔 보세요. 치아터우에서 시작을 해서 트래킹을 하시면 마지막에 티나게스트 하우스로 나오시는데 티나에서 나시족 샌드위치도 드셔 보시구요. 만약 백수대로 가시면 차마객잔에서 일찍 출발을 하셔야 합니다. 버스가 일찍 끊기니까요.
* 아 홉 번 째 백수대(白水臺)
이 곳은 아름답다고 하시는 분도 있고 저처럼 별루라고 하는 이도 있습니다. 세계에서 단 두 개뿐인 석회암(?)이라던가 하는 것이 계단을 이루고 있는 곳입니다.
이 곳은 어짜피 도착을 하셨으면 하루를 묵어야 합니다. 버스가 없으니가여! 저희는 이 곳에 있는 단 하나뿐인 터미널겸 객잔에서 묵으면서 통돼지 바베큐를 시도를 했었으나 배를 시원하게 갈라 놓는 바람에 결국 그냥 구워서 먹었습니다. 통돼지 한마리에(최소 7인이상) 중국 돈으로 150원에 사서 요리가지 해주는 조건으로 사 먹었었습니다.,ㅋㅋㅋㅋㅋ
* 열 번 째 중띠엔(샹그릴라현)-中旬
2002년부터 증화인민공화국 당국에 의해 샹그릴라(香格里拉)으로 개명이 된 곳이고 원래는 중띠엔으로 불렸던 도시입니다. 이 곳 중띠엔부터는 길이 사뭇 달라집니다.
물론 리지앙에서 바로 이 곳 중띠엔으로 오시는 분들은 리지앙을 넘어서 부터, 아니면 호도협을 지나서부터 이제까지 왔던 길이 아닌 전혀 새로운 기분의 길을 보게 됩니다.
원래의 샹그릴라라고 칭을 하시는 분들이 말하는 샹그릴라의 시작은 소중띠엔(小)부터 펼쳐지는 길을 시작으로 합니다.
봄에는 새롭게 피어나는 초록의 물결들이 눈을 아리게 하고 가을에는 빨갛게 물들어가는 작은 나무들의 향연을 보실 수가 있구요.
일반 적으로 중국에서 나오는 잡지에서 샹그릴라의 가을이라고 소개를 하는 곳이 바로 소 중띠엔부터 펼쳐지는 장관들을 소개 한 사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곳 중띠엔에서 사 볼만한 곳은 송찬림사(松((宋))贊林寺입니다.
작은 포탈라궁을 연상을 시킨다고는 하던데요.......
제 개인적으로는 송찬림사보다는 중띠엔에서 디칭을 가는 길목에 있는 동죽림사(東竹林寺)를 더 추천을 합니다만은 그래도 한 번은 보고 넘어가셔야 서운하시지 않으시겠죠? 그리고 송찬림사가 크기면에서고 동죽림사보다 훨 크니까요.....
이 곳까지 오시는 분들은 이제는 뭐 관광지보다도 이 곳에 있는 티벳탄들(장족)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오실겁니다. 물론 여러분들을 실망을 시키지 않을 겁니다.
또 중띠엔에서의 가 볼 곳은 라파하이가 있죠? 엄청 넓은 포원이 있고 그 곳에서 말을 타고 신나게 달려보면 마치 본인이 장족이 된 기분이 들겁니다.
이 곳 중띠엔에서 한국음식을 드시려면 야크바라는 곳이 잇고요. 티벳탄 호텔(영생호텔) 근처에 있는 중국 샤오지예(예전의 따리 넘버3의 주방장)가 운영하는 곳입니다.
* 열 한 번 째 번지란(번子欄)이 있습니다.
이 곳은 티벳탄의 절에 관심이 있는 분은 꼭 가보세요.
동죽림사(東竹林寺)가 잇는 곳인데 이 곳의 교통편은 좋지가 않습니다.
제가 갔을 때는 일단 번지란에서 하루를 숙박을 하고 갔었는데요, 꼭 하루를 숙박을 할 필요는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버스의 연결편이 좋지가 않은 것이 문제죠....동죽림사는 번지란에서 버스로 40여분 거리에 있는 산 중턱에 있는 절이고요,
디칭을 가는 길목에 있으므로 버스의 연결편을 잘 알아보시고 중간에서 잠깐 보고 가셔도 되는 곳입니다.
*열 두 번 째 디칭(한자 지원이 않되는 군요)
이 곳 디칭은 더칭이라고도 불리고요, 해발 3500-3700정도에 위한 운남성의 맨 마지막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물론 이 보다 더 위에 佛山(불산)이라는 도시가 있기는 하지만 그 곳은 볼 일이 없기에 이 곳을 우리 여행자들은 마지막의 도시라고 칭을 합니다.
이칭을 가는 목적은 한가지입니다. 메이리쉐이샨(梅里雪山)을 보러 가시는 곳이지요. 이 곳은 4월중순에도 아직 봄이 찾아오지 않는 곳이지요.
저는 페어라이스가 뭐 대단한 곳인 줄 알고 갔으나 빵차비 50원을 달라고 해서 또 먼 곳인 줄을 알고 갔으나 이칭 시내에서 별루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그냥 매리설산을 바라보고 있는 곳이더군요...... 저는 터미널에서 200미터정도 떨어져 있는(터미널을 등지고 왼쪽으로) 티벳탄 호텔에 여장을 풀었지만 빨리 도착을 하신 분은 어짜피 배낭은 차가 싫고 다니니 매리설산쪽으로 이동을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매리설산은 해발 6000미터가 넘는 고산입니다. 4월에도 아래까지 눈이 덮힌 설산의 웅장함을 볼 수가 잇고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빙하가 깨지는 소리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이제 이 곳에서 다시 운남으로 돌아오는 분들과 희망을 갖고 동티벳이나 아니면 샹그릴라라고 하는 대설산 지구를 가는 분들로 나눠지겠군요.
이 곳 디칭을 지나면 망캄(芒康)-바탕(巴塘)-리탕(理塘)-샹청(鄕城)-중띠엔(中旬)으로 도는 대설산 지구를 가시는 분들과 리탕에서 쳉뚜(成都)로 가시는 분 그리고 망캄을 지나 빠수이-빠이로 해서 라사를 들어 가시려고 용을 쓰시는 분들로 나눠집니다.
일반 적으로 샹그릴라리고 하면 영국의 소설가 아무개씨가 쓴 잃어버린 지평선을 원제로 꼽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샹그릴라가 히말라야산맥이라고도 합니다.-저는 이 부분을 공감은 합니다.-
또 어떤 분은 란창강을 끼고 올라가는 길이 샹그리라라고 하는 분도 계시고 또 저처럼 위의 대설산 지구를 생그릴라라고 생각을 하는 분도 계시는데요.
제가 여행을 하면서 느낀 샹그릴라는 바로 여러분의 가슴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발 "4 0 0 0 미터"가 다 넘어 움직일 때마다 숨도 못쉬고 두통에 고통스러워 하고 물도 없고 나무도 없고 완전히 길도 개판인 곳이 지상의 낙원이 될 수 있습니까?
물론 이 것이 제대로 된 정의는 아니다는 것은 저 자신도 잘 압니다. 그런 의미는 아니죠....하지만 책에서 얘기하는 지상의 낙원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전혀 아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샹그릴라는 아주 가깝고도 먼 곳에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도시는 그 삭막함과 소음이 싫어 떠나온 여행자에게는 운남같이 편하고 아름다운 곳이 샹그릴라일것이고, 도시의 야경과 그 생활의 화려함을 꿈꾸는 분들은 도시가 샹그릴라 그 자체인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삭막하고 힘들어도 위의 대설산 지구, 즉 일명 샹그릴라라는 곳은 한 번은 가볼 만한 곳입니다. 단 목숨을 한 번은 걸고 가셔야 합니다. 참고로 저는 디칭에서 망캄을 가는 그 길은 미화로 10.000불을 줘도 안 갑니다.
자 이제 운남의 마지막을 가 보셨으니 나머지 아래 쪽의 남은 부분을 가셔야 하겠지요?
디칭까지의 아름답고 엄청 험한 길을 다녀 오신 분들은 다시 따리의 넘버3로 오십시요......왜냐면 그 고생을 하고 많은 시간 동안 차를 타고 고생을 하셨으니 편안하고 아름다운 다리에서 2일정도는 최소한 쉬셨다가 이동을 하셔야 하지요. "여행은 절대 노가대가 아니니까요".
*열 세 번 째 승중(역시 한자 지원이 영.....하지만 넘버3에 정보가 있습니다.)
자 이 곳은 화산 온천이 있는 곳입니다. 그동안의 지친 몸을 이 곳에 푹 담그고 쉬었다가 가시면 됩니다. 이 곳의 화산이 활발하게 움직였던 곳으로 지금도 열심히 활동을 하는 지는 모르고요,(여러분이 가셨을 때 화산이 터질 일은 아마 없을겁니다.)
화산의 열기가 잇어서 그런 지 이 곳은 산을 배경을 삼아 수름의 향연에 대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구요. 여러 형태의 숙소가 있어 여러분의 주머니 사정대로 묵을 수 있습니다.
* 열 네 번 째 룰리(瑞麗)라고 하는 곳입니다.
이 곳은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도시로 미얀마를 안 가시는 분들은 한 번 가 보세요.
어느 곳이던 지 마찬가지지만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은 서로의 문화가 공존을 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중국내의 도시하고는 색다른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 열 다 섯 번 째 꽁샨(貢山)입니다.
이 곳은 누지앙(노강怒江) 따라 올라가면 맨 끝에 있는 도시입니다.
이 노강 길은 미얀마를 옆으로 끼고(끼고 간다고 미얀마가 보이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운남성의 맨 마지막 공로의 끝까지 가는 길입니다.
저는 우기에 가 보았습니다. 비로 인해 엄청나게 불어버린 노강이 오히려 더 아름다웠고 감탄의 연발이었으며 이 길에서 평생 볼 폭포는 다 본 것 같습니다.
저는 공산에서 다시 차를 타고 병중락(삥중로우丙中洛)까지 가서 그 곳 시장에서 돼지갈비를 사서 노강의 지류자락가지 냐려가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물에 몸 담그고 일광욕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곳 병중락에서는 우기여서 그런 지는 몰라도 우리가 앉아있는 자리에까지 구름이 몰려와 우리를 덮치고(?) 마을 전체를 휘감아 돌리던 그 황홀했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이 곳 공산현은 약 150여년전에 유럽의 선교사들이 늘어와 포교를 했던 곳으로 불교, 기독교, 천주교, 토속신앙등이 모두 있는 곳입니다.
마을을 자세히 보면 중간에 성당도 있고 교회도 있습니다. 그리고 글도 예전의 선교사들이 남긴 책에 의해서 그런지 제 본 봐로는 A.T.E자등이 꺼꾸로 써지고 있더군요......
그리고 공산현에서 독룡강향(獨龍江鄕) 이란 곳을 가시면 현재 이 곳 중국의 소수민족 중에 가장 적은 민족중에 하나인 독룡족을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약 2000여명이 않된다고 합니다. 화전민으로 이루어져 있고요. 여자들의 얼굴에 바늘 같은 것으로 세밀하게 문신을 하고 살아갑니다.
운남성의 추천 여행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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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족
인구분포 윈난성에서 가장 인구수가 많은 소수민족으로 약446만명이 살고 있다. 이족은 중국전역에 걸쳐 분포되어 있는데 전체 인구수는 약 660만명이다.
역 사 이족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 민족으로 그 기원은 고대 서남북부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던 구챵인(古羌人;gu qiang ren)과 관련있는 쿤밍인(昆明人;kun ming ren)이다.
언어와 문자 고유한 민족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이족어는 한장어계(漢藏語系), 장면어족(藏緬語族), 이어지(Yi語支)에 속하며, 지역별로 구별되는 6개의 방언으로 나뉜다. 6개의 방언 사이에는 차이가 크며, 서로 의사소통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많다.
또한 약 1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일종의 표의(表意)문자형식의 고유문자를 가지고 있다.
전통복장 이족은 검은색을 숭상하기 때문에 검은 옷을 즐겨 입는다. 이족만큼 전통적인 민족복장이 다양한 소수민족은 없다. 100여 종류에 이르는 전통복장은 다양한 스타일과 무늬, 공예품 장식, 색상으로 연출된다.
종 교 이족은 호랑이를 숭상하고 무사의 용기를 강조하며 술 마시기를 좋아한다. 불과 호랑이는 이족 원시종교의 중심 개념이다.
축 제 훠바지에(火把節, 횃불축제)와 챠화지에(揷花節, 꽃축제)때에는 전통악기인 취주악기인 루성(Lu Sheng)과 삼현악기가 연주되고 전통무용이 재현된다. 날이 밝을 때까지 밤새워 씨름, 소싸움, 꽃장식과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며 담소를 한다.
○하니족
인구분포 거의 대부분이 윈난성에 살고 있으며 약 126만명에 이른다. 윈난성(云南省) 남부 일대인 홍허(紅河)자치주, 위시(玉溪), 시?반나(西雙版納)자치주, 쓰마오(思茅)등에 분포되어 살고 있다. 대부분이 산지(해발 800-2,000m)에 거주한다. 일부 소수지만 중국이외에도 태국,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에도 분포한다.
역 사 하니(哈尼)족은 오래된 역사를 지닌 민족으로 이족, 라후(拉祜)족, 나시족과 같이 치앙(羌)족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쓰촨(四川)성 일대에서 유목을 하던 이들은 당나라 초기에서부터 중원지역과 관계를 갖기 시작했으며, 7-8세기에 이동을 시작하여 10세기 중엽, 현재의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하니(哈尼)족은 지금까지 다른 민족을 지배하기보다는 지배를 받으며 살아왔는데, 청나라시절에 이족과 함께 反淸운동에 참여한 적이 있으나 실패로 끝났다.
언어와 문자 이들은 3종류의 방언으로 구별되는 고유한 언어는 있지만 역사적으로 문자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1957년에 정부에서 라틴어 표기를 이용해서 만들어 준 문자가 있으나 대개는 자기들의 문자가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
전통복장 전통 복장에 있어서는 검정색과 푸른색이 주류를 이룬다. 남자는 주로 앞섶이 갈라진 상의에 긴 바지를 입고 검은색, 혹은 흰색의 두건을 두르며 부녀자들은 주로 옷깃이 없고 오른쪽에 섶이 있는 상의와 긴바지를 입으며 가슴에는 은으로 만든 장신구 달기를 좋아한다. 복장으로 미혼과 기혼을 구분하도록 되어 있는데, 쉽게는 머리에서 구분 할 수 있다. 미혼일 경우는 머리를 길게 땋고, 기혼일 경우는 머리를 올린다. 또 바지의 길이로 구분하기도 하고, 허리에 두르는 띠의 색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생 활 하니(哈尼)족의 특징 중의 하나는 이름을 짓는 방식이다. 할아버지의 이름의 끝자가 아버지의 이름의 첫 자가 되고 아버지의 이름의 끝자가 아들의 이름의 자가 된다. 이런식으로 계속 이름을 이어가는 것을 부자연명제(父子連名制)라고 부른다. 이렇게 이름을 이어가는 것은 문자가 없는 상황에서 족보를 기억하는 방법이었고, 그 집에 속했다는 귀속의식을 강하게 하기 위함이다.
종 교 하니(哈尼)족은 만물이 다 영이 있다는 원시종교를 갖고 있다. 지금도 대부분의 하니족이 조상숭배와 다신을 섬기며 "뻬이마(貝馬)"와 "니마(尼馬)"로 불리는 두 종류의 박수가 있다. 뻬이마(貝馬)는 남자로서 경전을 읽고 악귀를 쫓아내며 혼을 떠나 보내는 등의 비교적 큰 종교활동을 주관한다. 니마(尼馬)는 남녀 모두 있으며 사람들에게 길흉을 점쳐주고 무술과 약초를 이용하여 병을 치료하는 일을 주로 주관한다.
축 제 스위에니엔(十月年)은 하니족의 신년축제라고 할 수 있다. 하니(哈尼)족의 역법(曆法)에 의하면 10월은 새해가 시작되는 시기이다. 절기를 지키는 시기는 음력 10월 12지로 계산해서 첫 번째 용의 날에 시작해서 원숭이의 날에 마친다.
친척과 친구들을 방문하고 맞이하며,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키우치엔(秋千 - 그네), 모치우(磨秋 - 시이소오 같은 형식), 뚜이챵(對唱 - 남녀가 팀을 나누어 하는 노래 시합), 춤, 씨름 등의 놀이를 한다. 신미지에(新米節)는 새로운 곡식을 거두어들인 후에 지내는 축제인데 그 의미는 새로운 곡식과 쌀로 밥을 해 먹는다는 뜻이다. 신미지에(新米節)는 다른 절기에 비해 지키는 시기가 일정하지 않다. 하니족이 사는 지역이 해발의 차가 심해 수확의 시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新米節에는 밥을 한 시루 해놓고 제사를 지내는데, 이 시루 안에는 반드시 묵은 쌀을 아래에 놓고 위에는 햅쌀을 놓아서 밥을 지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묵은 쌀이 떨어지기 전에 햅쌀을 거두어 들여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의미이며 또 내년에도 계속 여유있는 생활을 하게 되기를 기원하는 의미이다. 한국의 추석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따이족
인구분포 윈난성의 따이족 인구는 약 106만명이다. 주로 시?빤나(西雙版納)의 따이족자치주, 더홍(德宏)따이족-징포(景頗)족자치주, 껑마(耿馬)따이족-와(Wa)족자치현, 멍리엔(孟連)따이족-라후(拉祜)족-와(Wa)족자치현 등 4개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윈난성 내지(內地)에 거주하는 따이족은 극히 적은 수이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변방지역(미얀마, 라오스, 베트남과 국경을 두고 있음)에 걸쳐 거주하고 있다.
역 사 따이족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독특한 민족으로, 문헌에 의하면 고대 남방의 '위에(越)'인이 선조이다. 이는 고대 장쟝(長江)일대, 윈난(云南)성과 동남연해근처의 광대한 지역에 분포하고 있었던 '바이위에(百越)'인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바이위에(百越) 민족그룹은 많은 씨족집단으로 구성된 형태로서, 그 중에 당시 지금의 윈난과 미얀마 경계지역인 더홍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던 '띠엔위에(Dian越)'가 오늘날 따이족의 조상이 된 것이다.
따이족은 당(唐),송(宋)시대에 사회의 빠른 발전을 가져왔고, 한동안 난쟈오국(南詔國)과 따리국(大理國)의 통치를 받게 된다. 그러나 10세기말 따이족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가를 형성하는데 이른바 '징롱진디엔국(景Long金殿國)이다. 이후 원(元)시대에 '투쓰(土司; 세습족장)제도가 사회에 출현하였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기 전까지 약 38代를 이어오면서 오늘에 이르게 된다.
언어와 문자 따이족은 고유한 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크게 더홍(德宏)방언과 시?빤나(西雙版納)방언으로 나눌 수 있다. 따이 문자는 본래 고대 인도자모(印度字母)계통의 병음문자로써, 태국, 미얀마, 베트남의 문자와 동일한 계통에 속한다.
1954년 이전에는 4종의 문자를 사용했으나 1954년에 기존 문자를 변형하여 새로운 따이(Dai)문을 만들었다. 그러나 현재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원래의 따이(Dai)문을 좋아하여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전통복장 여자의 경우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시쌍빤나의 여성들은 다채로운 색상의 옷과 우아하고 날씬하게 은으로 만든 허리띠를 맨 길게 늘어진 치마를 입는 것을 좋아한다. 머리장식으로 생화를 장식하여 쪽을 지거나 또아리 머리를 한다. 금, 은, 동으로 만든 장신구도 많이 착용한다. 남자의 복장은 일반적으로 오른쪽 앞섶을 단추로 채우게 되어 있는 상의와 좁게 단을 접은 길고 넓은 통의 바지를 입는다. 의복은 대체적으로 백색이나 청색의 면으로 만들며, 청색으로 만든 허리띠를 매고 백색이나 청색으로 만든 머리수건을 두른다.
종 교 따이족은 주로 소승불교를 믿지만 원시종교 신앙형태도 가지고 있다. 불교 사찰과 탑은 마을마다 있다. 따이족은 일생동안 불교와 분리되어 살 수 없다. 출생시부터 불교신도가 될 뿐만아니라, 이름 역시 불교로부터 받는다. 시?빤나(西雙版納), 껑마(耿馬), 멍리엔(孟連)의 경우 남자는 어려서부터 집을 떠나 일정기간(수개월 혹은 10년)동안 승려생활을 한다. 만약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사회에 진출하면 경시와 천대를 받는 풍습이 있다.
이밖에 귀신을 섬기는 일종의 원시신앙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대부분 농업생산과 생활에 연관된 것이다. 자연만물에는 모두 영혼이 있고 그래서 각양각색의 신과 귀신이 있다는 것이다(太陽神, 山神, 水神, 家神등). 이들이 사람에게 행복도 주고 재난도 주기 때문에 이들에게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축 제 포쉐이지에(潑水節)(따이력6월 6일-7월 6일 : 양력 4월)는 따이족의 절기 중 가장 민족적 특색을 지닌 3대 절기중 하나이다. 포쉐이지에(潑水節) 첫날 새벽에 남녀 모두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 입는데 청년들은 화려한 옷차림과 화장을 하며 특히 여자들은 가장 아름다운 치마와 좋아하는 장식과 생화로 몸을 치장한다. 젊은이나 노인 할 것 없이 자유롭게 서로를 위해 물을 뿌리며 축복을 빈다. 물을 뿌리면서 한편으로는 노래를 부르며 "水-水-水"라는 소리를 내면서 물을 뿌린다.
○바이족
인구분포 약 148만명이 살고 있으며, 그중 따리 바이(大理白族)족 자치주에 80%가 거주하고 있고, 나머지는 쿤밍(昆明), 리쟝(麗江), 누쟝(怒江), 원샨(文山), 띠칭(迪慶), 츄숑(楚雄)등 윈난성의 서북쪽에 주로 분포되어 있다. 또한 쓰촨성(四川省), 꾸이조우성(貴州省), 후난성(湖南省) 등지에도 거주하고 있다.
역 사 바이(白)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중에 가장 오래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갖고 있는 민족 중의 하나이다. 전국(戰國)시대에 초(楚)나라의 군사들이 운남지역으로 들어와서 교통이 편리하고 자연 환경이 좋은 곳에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본래 있던 민족들과 통혼을 했다. 한(漢)나라 시대에도 윈난(云南)으로 군사를 파견했는데, 이때 많은 수가 윈난에 머무르게 되었고, 또한 전쟁을 피해서 도망 온 사람들도 있었다. 이 사람들이 전국시대에 이주해 왔던 사람들과 함께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쏘우(sou)인"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 "쏘우"중에서 일부분이 나중에 변화의 과정에서 白族의 선조가 되는 "바이만(白蠻)"을 형성했다. 8세기 중엽에는 남조국(南詔國;nan zhao guo)이 따리 얼하이(大理Er海)지역을 통일하였고, 따리국(大理國)을 거치는 500년의 통치가 있은 후 점차적으로 한 언어와 풍속을 지닌 안정된 민족공동체가 되어 가면서 "바이런(白人)"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하나의 독립된 민족이 되었다.
언어와 문자 바이족은 고유언어를 가지고 있으나 이전에 가지고 있던 문자는 없어지고 지금은 한자(漢字)를 사용하고 있다. 대리에 거주하는 바이족은 95% 이상이 자신의 언어를 말할 줄 알며, 그들끼리 대화할 때는 바이족 언어로 얘기한다. 바이족 언어에는 북부, 중부, 남부 3개의 방언이 있다.
전통복장 흰색은 바이족이 특히 좋아하여 전통복장의 의복 색상으로도 흔하게 쓰인다. 얼하이(Er海)의 주변이나 동쪽의 젊은 여자는 머리를 길게 길러서 하나로 땋은 다음 빠오토우(包頭)를 한바퀴 두른다. 상의는 소매가 짧은 흰색 옷을 입고, 검은 색 옷깃이 있는 겉옷을 입는다. 화려하게 수놓은 앞치마를 하고, 하의는 바지를 입는데, 대부분 바짓가랑이에 흰색, 옅은 녹색, 남색 등의 천으로 둘러 장식을 한다. 신발은 꽃으로 수놓은 뾰족한 신을 신는다. 얼하이(Er海) 서쪽지역의 여자들은 머리를 틀어 올려 은장식품을 꽂고 검은 천으로 두른다. 상의는 앞이 짧고, 뒤가 길며, 목의 모양은 둥글고, 오른쪽 옷깃이 위로 가도록 된 옷을 입는다. 허리에는 허리띠를 두르는데, 양 앞섶에 그림이 있거나 꽃수를 놓은 색이 있는 긴 천을 이용한다. 바지는 비교적 짧고, 신발은 짚신을 신는다.
생 활 농업기술이 발달한 바이족은 대리석 채굴과 공예품 생산, 목각제품 조각에도 뛰어나다. 얼하이(Er海 - 따리(大理)지역에 있는 호수)부근에서는 어업으로 생활한다 따리고성(大理古城)을 돌아보고 얼하이(Er海)에서 배를 타고 여행을 하면서, 전통茶(三道茶)를 마시면서 바이족의 음악과 무용 등을 통해 그들의 문화와 전통복장을 볼 수 있다. 시죠우(喜州), 죠우?(周城), 그리고 샤핑(沙坪)에서 매주 월요일마다 열리는 바이족 전통시장도 특색이 있다.
축 제 바이족은 노래와 춤에 뛰어난데, 싼위에지에(三月街), 위탄후이(漁潭會) 때는 민족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절기이며 커다란 장이 서는데 예술, 체육활동 등과 함께 진행된다 훠바지에(火把節) 축제에는 여러 가지 민족 전통 놀이(소싸움, 양싸움, 활쏘기, 경마, 극놀이, 씨름, 그네뛰기 등)가 행해지고, 밤에 있는 횃불놀이가 장관을 이룬다.
○?족
BC 1세기전의 긴 역사를 가진 ?족은, 그들 조상들이 구오딩(Guoding)과 로우오(Louwo)국을 세웠으며, 한나라 황제로부터 책봉되었었다
○먀오족
먀오(苗)족 이름의 유래는 고대 갑골문자에서 처음 찾아 볼 수 있다. 일반적인 견해로는 먀오족의 근원을 중국 고대전설시대에 활동했던 '지우리(九黎)' 부락집단의 '싼먀오(三苗)"로 보고 있다. 원, 명, 청나라에 이르러 이들은 다시 남쪽으로 이동하여 지금의 꾸이조우(貴州)서남부와 난,그리고 하이난(海南)과 월남, 라오스 등지에 정착하여 오늘의 먀오족에 이르게 되었다. 먀오족 복장은 중국 소수 민족 가운데서 가장 화려한 복장 중의 하나이다. 남자의 경우, 짧은 상의와 긴 바지 혹은 큰 옷깃과 긴 적삼이 특징이며, 여자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치마를 입거나 또는 바지를 입으며, 여러 모양의 악세사리를 걸친다. 일반적으로 화려한 옷차림과 평상복 그리고 성별과 연령에 따라 입는 옷 등 약 100여 종이 넘는 복장으로 구분된다.
○리쑤족
역사기록에 의하면 리쑤족은 북에서 남으로, 동에서 서로 이전한 것으로 되어 있다. 본래 리쑤족은 쓰촨(四川)성 서남부와 윈난성 서북부에 살고 있었는데, 13세기, 16세기, 17세기에 세 번에 걸친 민족 대이동이 있었고, 그 이후 현재의 위치에 거주하게 되었다.
○후이족
후이족은 농업과 무역을 중시했으며, 수공예품의 질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라후족
라후(拉祜)족의 대부분이 만물에 영이 있다는 정령신앙과 다신숭배의 원시종교 또는 대승불교를 믿으며, 일부 소수의 사람들은 기독교와 천주교를 믿는다. 라후족이 믿는 다신 중에 가장 큰 신은 '어샤(厄霞)'인데, 이는 수호신으로서 우주와 인류를 창조하였으며, 만물의 주재이고, 사람들의 길흉화복을 주관하는 신이라고 믿는다.
○와족
만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으며 자연숭배의 신앙이 있는데, 그 중에서 물소를 가장 숭배한다. 자신들의 생활에서 물소만큼 유익을 가져다주며 도와주는 존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소는 도움을 주면 주었지 절대로 사람에게 해가 되게는 하지 않기 때문에 가장 좋아하게 되었고, 가장 숭배하는 대상으로 변했다. 그래서 마을 입구마다 물소의 해골이 걸려있고, 어떤 집은 집의 지붕이나 문의 입구에 물소의 해골을 걸기도 하고 물소 머리모양의 장식을 달기도 한다.
○라시족
나시족은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민족으로, 문헌상 3개 방면에서 초기 納西선민의 근거를 두고 있다. 이들이 주변 민족과의 계속적인 융화과정을 거쳐 오늘의 나시민족이 형성되었다.
1. 甘肅省과 靑海省의 黃河, 湟水일대의 '(구챵런)古羌人' ; 이들은 유목민족으로 戰國시대(BC.475-221)에 서남쪽으로 이동하면서 四川省을 걸쳐 지금의 麗江 일대에 거주하게 되었다.
2. 고대 西南민족중의 하나인 '마오니우이(Mao牛夷) '바이랑이(白狼夷)의 지파인 '(이런)夷人'.
3.본래 윈난성 리장현일대의 거주하고 있었던 '투주(土著)'주민
○야오족
윈난성의 야오족은 약 18만명인데 이는 중국 전체 야오족의 8.2%에 해당한다. 이들은 주로 윈난성 동부의 허코우(河口)야오족자치현, 웬샨장족먀오족자치주의 마콴(馬關), 푸닝(富寧), 광난(廣南) 등지에 살고 있다.
○장포족
징포족은 윈난성에만 유일하게 있는 소수민족중의 하나로 더홍(德宏)따이족-징포족자치현의 산악지역에서 살고 있다. 총 인구는 121,000명으로 농업을 주요산업으로 하는데, 주로 쌀, 사탕수수, 기장과 옥수수를 재배한다. 징포족은 매우 오랜 고대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노래와 춤이 뛰어나다. 집을 새로 짓거나 수확을 하거나 결혼식, 장례식 또는 귀한손님을 환영할 때 이들은 춤과 노래로써 의식을 치룬다. 남성들은 긴 칼을 차고 다니기를 좋아하고, 일생동안 가지고 다니는 칼은 방어뿐만 아니라 생산도구이기도 하다. 여성들은 둥그런 은 장신구로 장식된 화려한 옷을 즐겨 입는다. 징포족은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언제나 술 도기를 직접 가지고 다니며, 독성을 예방하거나 일사병을 방지하기 위하여 항상 담뱃잎, 빈랑(檳 )열매 등을 씹고 다닌다.
징포족은 그들만의 고유한 언어와 문자가 있다
○장족
장족은 윈난성 서북부 산악지역에 위치한 띠칭(迪慶)장족자치주에 사는 소수민족이다. 전체인구는 116,000명으로 중국 전체 티벳족의 2.5%에 해당한다. 높이 솟은 눈 덮힌 산기슭과 누쟝(怒江), 란창쟝(瀾滄江)의 합류 지점 횡단산 계곡에 사는 장족은 근면하고, 용감하며, 온화하면서 예의바른 민족이다. 장족은 티벳 불교를 신봉하며 윤회사상을 믿는다. 축제는 종교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장족은 밤새도록 불을 피워놓고 주위에서 노래하고 춤추기를 좋아한다. 장족의 젊은이들은 결혼 전에 자유로이 사회활동을 하며 노래와 춤을 통하여 사랑을 표현한다
○부랑족
부랑족은 오랜 역사를 가진 온화하고 친근한 민족이며 소승불교를 믿는다. 전체인구는 84,000명으로 주로 시?빤나 따이족자치주내 멍하이( 海)에 있는 부랑산(布朗山) 해발 1,500m의 산악지역에 거주한다.
○부이족
윈난성에 거주하는 부이족은 중국내 부이족의 1.34%에 해당하는 약 37,000명이며 뤄핑(羅平)현 계곡에 거주한다. 부이족은 연장자를 공경하는 전통으로 잘 알려져 있다
○푸미족
푸미족은 운남성 서북부지역 란핑(蘭坪), 닝란(寧 ), 리쟝(麗江), 웨이씨(維西) 등과 같은 해발 2,500m의 산악지역에 주로 사는데 인구는 약 31,000명이다.
주로 축산에 종사하고 일부는 농사를 짓는다. 면과 아마직물이 유명하고 대나무와 칠기 그릇도 널리 알려져 있다.
○아창족
윈난성에만 거주하는 소수민족이며 인구 29,000명으로 더홍(德宏)주의 롱촨(LongChuan)현과 량허(梁河)현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누족
누(怒)족의 인구는 27,000명이다. 분포지는 윈난성 누(怒)강 리쑤(LiSu)족 자치주의 삐쟝(碧江), 푸꽁(福貢), 꽁샨(貢山), 란핑(蘭坪)이다. 주요 거주지는 해발 1500-2000미터의 누(怒)강 양변이다.
○지눠족
지눠족 인구는 18,000명으로 시?빤나(西雙版納)주의 지눠(基諾)산과 푸위엔(補遠)산에 살고 있다. 지눠(基諾)족은 1979년 9월 중국 국무원으로부터 정식으로 인정받은 소수민족이다. '지(基)'는 외삼촌이라는 의미이고, '눠(諾)'는 후대라는 의미가 있다. 이 말은 합쳐서 외삼촌을 매우 존중하는 민족이라는 의미도 있다. 이러한 이름의 의미는 모계중심사회를 형성했었던 흔적을 보여준다.
○더앙족
중국의 더앙족은 16,500명의 인구로 모두 윈난성 내에 거주하고 있다. 주요 거주지는 윈난성 더홍(德宏)따이(Dai)족-징포(景頗)족 자치주의 루시(潞西), 루이리(瑞麗), 량허(梁河), 롱촨(Long川)등의 현(縣)지역과 바오산(保山)지구의 바오산현, 기타 린챵(臨滄)지역의 젼캉(鎭康), 껑마(耿馬), 용더(永德)등과 쓰마오(思矛)지역의 란창(瀾滄)현에 살고 있다. 모두 윈난성의 서남부 변경지역이다. 이외에 미얀마에도 뻥롱(崩龍)족으로 불리우는 24만여명 정도가 살고 있다
○멍구족
윈난성에 거주하는 멍구족은 약 13,000명으로 중국내 몽골족의 0.25%에 해당한다. (玉溪)지역의 퉁하이(通海)현 치루호(QiLu湖)를 따라 거주한다. 그들은 과거 쿠빌라이 칸의 후손이기는 하나, 주변 소수민족들의 영향을 받아서 언어와 관습 및 복장 등이 다양하게 변모하여 더 이상 기마인이라고 불리지는 않는다. 윈난성의 멍구족은 농사와 어업을 주로 하고 일부는 건축일에 종사한다.
○수이족
수이족 인구는 약 8,000명으로 중국내 수이족의 2%에 해당한다. 주로 푸웬(富源)현 황니허(黃泥河)마을과 일량( 良)현 따허(大河), 롱안(龍安)에 분포한다.
윈난성의 수이족은 뀌조우(貴州) 수이족과 같이 바이유(百越)족의 뤄유(駱越)지류에 기원한다. 이들은 아주 오래 전에 현재의 거주지로 이주하여 왔다.
○만족
윈난성의 만족은 주로 청나라 초기에 윈난성으로 들어왔다. 이들은 청나라의 관원이나 군인들의 후손이거나,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후 교직자와 과학연구에 투입된 연구원들의 후손이 주류를 이룬다. 만족은 고유한 언어가 있지만 이들은 표준 중국어를 말하고 쓰며, 한족과 같은 복장을 한다.
○두룽족
인구 약 6,000명의 아주 작은 소수민족이지만 미얀마에 더 많은 수가 살고 있다. 누쟝(怒江)주 꽁산(貢山)현의 두롱(獨龍)강 양안과 북부의 누(怒)강 양안에 주로 살고 있다.
○모수오족
모수오족의 인구는 20,000여명으로 닝랑(寧 ), 용쉥(永 )과 리쟝(麗江)에 분포한다.
주요산업은 농업과 축산이다. 특성은 근면하고 정직하고 솔직하다.
이들의 결혼풍습은 남녀가 함께 독립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남녀 배우자중의 한가족과 함께 산다. 남녀 관계는 사랑이 존재할 때만 유지되며 모계중심의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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