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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과 "있음"



 

인간은 하나의 존재물이다. 그런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물들은 단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으로 존재’한다.. 탁자에 놓인 ‘컵은 컵으로 존재’하고, ‘탁자는 탁자로 존재’하며, 나는 나로 존재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세상의 모든 존재물들은 언제나 ‘무엇’이라는 본질과 ‘있음’이라는 존재, 이 두 가지의 존재론적 구성요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존재물 중 오직 인간만이 자신의 그 ‘무엇-됨’에 관심을 갖는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자신의 ‘무엇-됨’을 부단히 염려하는 존재이다. 그것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든, 재산이든, 명예든, 아무튼 인간은 자기 자신을 말해주는 그 ‘무엇-됨’을 통해서 자기의 존재를 확인하기도 하고 과시하기도 한다. 그 좋은 예가 명함이다. 사람들은 만나기만 하면 명함을 주고받는다. “난 부장이야”, “난 사장이야” 이런 식이다.



 

그렇지만 한번 생각해 보라. 상대의 그 ‘무엇-됨’과 맺는 관계는 올바른 인간관계라 할 수 없다. 올바른 인간관계는 그 사람의 존재와 맺는 관계여야 한다. 상대의 존재 자체를 존중하는 관계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 가장 좋은 표본이 가족 관계다. 가족이란 상대의 그 ‘무엇-됨’과 무관하게 오직 그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고 기뻐하는 관계다. 따라서 가족 중 그 누가 설령 못생겼다고 해도, 또는 성격이 사교적이지 못하다고 해도, 특별한 재능이나 재산이 없다고 해도 그의 ‘있음’ 그 자체를 사랑하고 기뻐한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는 아빠나 엄마의 ‘있음’에만 관심을 가질 뿐 그의 ‘무엇-됨’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므로 아이는 아빠가 외출하려고 할 때 울음을 터뜨려  그의 ‘있지-않음(不在)’을 막으려 할 뿐, 아빠의 사회적 지위나 수입 따위의 ‘무엇-됨’을 묻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아빠도 아이에게 명함을 건네지 않는다. 이것이 가장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관계맺음이다. 만약 아이가 자라면서 아빠의 직업(명함)에 대해 부끄러워하게 된다면 그건 잘못된 관계라고 볼 수 있다.



 

가브리엘 마르셀이라는 프랑스 철학자도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가족적’이어야 한다”라고 했다. 나는 인간관계란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유기고가 김용규님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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