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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산 SDA산행

[08차]금오산(04-05-23)

2004년 5월 23일 (일)

둔산 sda 산악회 5월 정기 산행은 예정시간보다 40분 늦은 7시 40분에 14명의 산악회 식구들을 태우고 출발한다. 정기 산행시에 기사로 수고해 주시는 진호님이 지난 밤 늦게까지 필리핀 여행 준비를 하는 관계로 아침에 늦잠을 자면서 늦게 도착했기 때문이다. 8시가 조금 지나 대전요금소로 진입한 버스는 경부고속도로를 힘차게 달려 40분 후에 추풍령휴게소에서 15분 정도 정차한다.

 

9시 25분 구미요금소를 빠져나와 IC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906번 지방도로를 타고 이정표를 따라 금오산으로 향한다. 9시 40분 금오산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산행준비를 한다. 시민 헌장탑 오른쪽에 있는 등산 안내도를 보고 산행코스를 확인한다. 

금오산은 산세가 가파르고 기암절벽과 수림이 잘 어울린 산이다. 

고려 말 충신 야은 길재선생을 기리는 채미정이 산 입구에 자리하여 빛을 더하고 있다. 

채미정은 경상북도기념물 제55호로 고려 말기의 충신이며 대학자인 길재(吉再)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1768년(영조 44)에 건립하였다. 길재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태상박사(太常博士)의 관직을 받았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고향에 돌아와 은거생활을 하면서 절의를 지켰다.‘채미(採薇)’는 고사리를 캔다는 뜻으로 중국 주(周)나라의 곡기 먹기를 거부하고 수양산에 은거하여 고사리를 캐먹으며 은나라에 대한 충절을 지켰던 백이·숙제의 고사에서 이름이 유래한다. 벽체가 없고 기둥만 16개로 된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로 왼쪽으로 구인재 (求仁齋)와 비각 등의 건물이 있다. 

조금 더 오르면 이 고장에서 태어난 한말의 의병대장 허위 선생을 기리고자 세운 유허비가 금오산을 찾는 이들로 하여금 옷깃을 여미게 하고 있다. 

10시 10분 매표소(성인 입장료 400원)를 지나 오른쪽에 자리한 약수터에서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아이들과 동반하여 케이블카를 타려는 은선님(하영이, 준영이), 홍미님(호진이)과 헤어져 산길을 오른다. 

적송으로 가득한 송림이 시원한 그늘을 가지고 반겨준다. 금오산은 1970년 6월 국내 최초로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우리나라 자연보호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돌을 박아 잘 정비된 길을 따라 오르면 금오산성 사적비가 눈에 띤다. 금오산성은 조선조 초에 영남지방의 전략 요충지로써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 때에는 정기룡장군이 왜적을 맞아 싸웠던 곳이다. 

곧바로 케이블카 타는 곳 금오산 쉼터에 도착한다. 

양쪽으로 돌탑이 있고 이 곳부터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된다. 곧이어 7기의 돌탑이 보인다. 돌탑 21C로 명명된 이 돌탑들은 주 등산로 입구에서 대혜폭포 주변에 흩어져 있는 자연석 그대로를 이용하여 축조된 것으로, 21세기의 힘찬 전진 이미지를 구현한다고 한다. 정교한 축조로 안정성이 돋보이며 이 곳을 찾는 탐방객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3분쯤 오르면 오른쪽으로 등산로를 약간 벗어난 치마바위 끄트머리 암벽에 금오동학(金烏洞壑)이라는 큰 글씨가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다. 금오동학은 조선시대 중종때 명필가 황기로가 쓴 것으로 금오산은 깊고 그윽한 절경임을 뜻하는 글귀로 사람을 위압한 큰 글씨로 초서(草書)로서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각 글자의 크기는 가로, 세로 약 1m가 된다. 

10시 25분 금오산성의 성문인 대혜문을 지난다. 산성 복원과 함께 새로 축조된 성문이다. 

여기서 3분쯤 올라가면 영흥정이라는 약수터가 나온다. 168m 암반에서 파서 끌어올린다는 물맛이 시원하다. 

약수터 위에 해운사가 자리하고 있다. 해운사는 근세에 세워진 사찰로 웅장한 기암 절벽을 등지고 있어 경관이 빼어나며 규모는 조그마한 절이다. 

10시 40분 오른쪽으로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도선굴(0.13km) 이정표가 보인다. 깎아지른 절벽 난간에 설치된 쇠줄을 잡고 도선굴로 향한다. 간신히 발붙일 수 있도록 약간은 다듬은 듯한 흔적이 있는 천길 벼랑 중간을 붙어 숨을 가다듬으며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소름이 끼치니 납량(納凉)에는 다시없는 곳이다. 

구미공단과 낙동강이 한 눈에 들어오는 조망이다. 10시 45분 도선굴에 도착한다. 도선굴은 천연동굴이며 암벽에 뚫린 구멍이기에 대혈(大穴)이라고 했으나 신라말 풍수의 대가인 도선선사가 득도했다해서 도선굴이라 한다. 임진왜란때 인근 사람들이 난을 피해 암벽의 틈에 기어오르는 칡덩굴을 부여잡고 이 굴로 들어와 세류폭포의 물을 긴 막대로 받아먹으며 피난했다고 한다. 굴 내부는 길이 7.2m, 높이 4.5m, 너비 4.8m 정도 된다. 단체 기념 촬영을 하고 대혜폭포로 향한다. 

해발 400m 지점에 위치한 수직 27m 높이의 대혜폭포는 떨어지는 물소리가 금오산을 울린다하여 명금폭포라는 별명도 있다는 것이 안내문의 설명이나 지금은 폭포 물줄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수량이 적다. 물이 떨어지는 곳에 움푹 패인 연못은 욕담이라 하며 선녀들이 폭포의 물보라가 이는 날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옥 같이 맑은 물에 목욕을 즐겼다는 전설이 있다. 

금오산 정상 부근의 분지에서 발원하여 긴 계곡을 이루어 이 고장 관개(灌漑)의 유일한 수자원이 되므로 큰 은혜의 골이라는 뜻으로 대혜골이라 부른다. 

등산로는 돌계단으로 조금씩 가파라진다. 11시 5분 해발 460m 갈림길이다. 오른쪽은 성안(1.9km)가는 길이고 약사암(1.8km)을 거쳐 정상(1.9km)가는 길은 왼쪽이다. 가파른 오름길을 돌계단을 밟고 한 발 한발 오른다. 물 한 모금으로 거치러진 숨을 고른다. 11시 10분 할딱고개에 도착한다. 전망이 좋은 바위에 오르면 시야가 확 트인다. 

오리보트가 점점이 떠 있는 금오저수지와 구미시가지가 시원스럽게 한 눈에 들어온다. 

간식을 나누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가파른 오름길이 계속 이어진다. 혜숙님과 진호님, 처음 산행에 나선 금숙님과 중환님 그리고 최고령임에도 젊은 사람 못지 않은 건강함을 가지신 종찬님은 선두에서 치고 오르고, 종현님은 중간에서 꾸준히 오름길을 오른다. 오랜만에 산행에 나선 진준님이 무척 힘들어한다. 경화님이 함께 동행하며 격려한다. 어려운 사람에 대한 배려와 여유 있는 산행 모습이 이젠 훌륭한 여성 산악인으로 자리매김 한다. 11시 40분 해발 650m 정상 1.2km 이정표를 지난다.

 

11시 45분 쉼터 바위에서 선두가 휴식을 취하면서 기다린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오름길을 재촉한다. 11시 55분 왼쪽으로 전망이 확 트여 금오저수지와 시가지 조망이 시원하다. 

12시 갈림길이다. 왼쪽은 마애불(0.6km) 가는 길이고 정상(0.9km)은 오른쪽이다. 

갈길이 아무리 바빠도 보물은 보고 간다. 문화재는 우리 선조의 숨결이 배어 있는 귀중한 유산이다. 너덜지대를 통과하고 오솔길을 돌아가면 돌탑 1기를 보이고 길 끝에 얕으막한 동굴이 하나 보인다. 위를 보니 높은 단애를 이룬 암봉이다. 마애불(보물 490호)은 동굴 오른쪽 자연 암벽에 조각된 높이 5.5m의 석불 입상이다. 기존의 마애불 대부분이 넓은 바위면에 새겨진데 비해 금오산 마애불은 자연암벽의 돌출 부분을 이용하여 좌우를 나누어 입체적으로 조각되어 마치 바위에서 튀어나올 듯한 부조로 조각되었으며 얼굴은 비교적 풍만하면서 부피감이 있다. 

12시 25분 마애불을 보고 다시 이정표 있는 곳으로 나와 약사암으로 향한다. 조금 올라가면 송전철탑이 나온다. 해발 820m 정상 0.8km 이정표를 지나 숲 속으로 들어가 산사면을 가로지르면 금오산성 유적인 내성(內城) 나타난다. 

12시 35분 갈림길이다. 오른쪽으로 성안가는 길이 보인다. 넓은 산사면의 숲 속을 계속 치고 올라가면 헬기장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수많은 송신 시설이 보인다. 

헬기장을 지나면 곧바로 약사암 일주문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수도꼭지 달린 샘터를 지나면 정상이 나타난다. 12시 45분 정상인 현월봉(해발 976m)에 도착한다. 김천시와 구미시, 칠곡군에 걸쳐 있는 해발 976m의 금오산은 특이한 산세를 자랑한다. 정상 일대는 분지를 이루며 그 아래쪽은 칼날 같은 절벽이 병풍처럼 펼쳐 있고 산세가 매우 가파르다.

 

금오산이라는 이름은 어느 날 이곳을 지나던 아도(阿道)화상이 저녁놀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모습을 보고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하며, 태양의 정기를 받은 명산이라고 한다. 현월봉이란 달이 걸려있는 봉으로서 선인들의 낭만적인 시상이 떠오르는 이름으로 초저녁에 툇마루에 걸터앉아 초생달이 걸려있는 모습을 보고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현월봉이라 쓰여 있는 정상표지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한다. 

13시 헬기장 근처 그늘진 넓은 바위에 자리잡고 점심 도시락을 펼친다. 땀이 식고 찬바람이 불어 추위가 느껴진다. 

13시 40분 서둘러 점심 식사를 마치고 하산을 서두른다. 약사암 일주문을 지나 가파른 돌계단을 내려서면 약사암에 다다른다. 

금오산 산정 천하비경이라 하는 약사봉 바로 아래 약사암이 있으나 의상대사가 세웠다는 기록이 없어 단정키 어려우나 많은 사람들이 대사의 득도로 인해 세워진 것이라 믿는다. 암자앞 구름다리를 건너 종각에는 박대통령이 기증했다는 범종이 보인다. 출렁대는 구름다리는 폐쇄되어 건너가 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약사암에서 내려다본 풍광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정상보다 조망이 훨씬 훌륭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풍광을 감상하고 내림길로 내려선다. 

화장실 뒤쪽으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14시 정각 해발 832m 갈림길이다. 왼쪽은 마애불(0.7km)과 이어지는 길이고 직진하면 법성사(2.4km)가는 길이다. 

길은 가파르고 조그만 돌들이 깔려있어 미끄럽고 위험하다. 

오래전에 무릎 수술을 받은 종현님과 진준님이 조심 조심 내려선다. 14시 45분 안부에 도착한다. 법성사 1.6km 이정표 옆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14시 50분 험한 길 왼쪽으로 편안하게 내려서는 길을 버리고 험한 길로 내려선다.

 

15시 5분 커다란 바위가 길을 막아서고 길은 부드럽게 변한다. 빠른 걸음으로 10여분을 걸어 아스팔트 포장도로로 내려선다. 오른쪽으로 법성사 가는 길을 따라 3분 정도 걸으면 법성사에 도착한다. 법성사 역시 조그만 암자 수준의 절이다. 

약수물(감로수) 한 바가지 떠서 갈증을 달래고 포장 도로를 따라 온 길로 되돌아간다. 

15시 35분 천천히 산길을 내려온 경화님과 진준님 그리고 종현님을 만나 주자창으로 향한다. 15시 45분 야영장 근처 흐르는 계곡물에서 탁족을 하던 선두 일행을 만난다. 먼지를 털어내고 탁족을 하며 산행의 피로를 씻어낸다. 

주차장으로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며 정상을 바라본다. 고려시대는 남숭산(南崇山)이라 불렸으며 조선시대부터 금오산으로 불렸다고 한다. 산의 동쪽에서 보면 사람이 하늘을 보고 누워 있는 것 같이 보여서 와불산(臥佛山)또는 거인산(巨人山)이라 불리기도 한다. 모습이 정말 그렇게 보인다. 

16시 5분 주차장에 도착하여 버스에 오르면서 산행은 끝이 난다. 비둘기들과 장난하며 노느라 준영이와 호진이는 시간가는 줄 모른다. 

16시 30분 버스는 대전을 향해 출발한다. 16시 45분 구미요금소로 진입하여 경부고속도로를 달린다. 모두들 피곤해 지쳐 잠에 골아 떨어지고 차안에는 정적이 흐른다. 금강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하고 18시 20분 북대전요금소를 빠져나온다. 루외루에서 종현님이 쏘신 멎진 저녁만찬을 마치고 20시 10분 교회 앞에서 해산하면서 6월 정기산행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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