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태도 승봉산(355m) - 전남 신안군
·일시 : 4월 29일
·출발 : 원두막 2시 55분
·회비 : 35,000(배삯포함)
두 대의 알람소리가 요란하게 울어댄다. 새벽2시. 부스스 눈을 비비고 일어나 어제 밤 꾸려놓은 배낭과 카메라만 챙겨 조용히 집을 나선다.
승차지점인 대전톨게이트 앞 원두막에 도착하자 플님의 모습이 보인다. 안부 인사를 나누고 요즘 플님이 하고 있는 국토순례 이야기를 하는 사이 버스가 도착한다.
새벽 3시. 이렇게 이른 새벽임에도 이번 섬 산행에 나선 인원은 모두 37명. 버스는 대전톨게이트로 들어선다. 인솔자가 개념도와 일정에 대한 설명을 하는 사이 버스는 호남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차내는 소등을 한다.
적당한 흔들림이 요람위에 누운 기분이다. 모두가 깊은 토막잠에 빠져들고 버스는 전조등으로 어두움을 가르며 남쪽으로 질주한다.
약 1시간 후 정읍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하고 정읍나들목으로 나가 선운사 나들목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종점인 목포까지 달려간다.
새벽6시.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한다. 준비한 김밥과 떡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한다.
목포 연안여객선터미널(061-243-0116~7)에서 암태도까지는 대흥페리 제1, 제5호가 1일 5회(06:50, 07:20, 10:30, 13:20, 15:00) 운항했으나 페리 한 대가 수리중이어서 1일 3회 운항한다. 암태도행 첫 배의 출항시각은 07:20분이고 요금은 5,100원. 자동차를 가지고 들어갈 수도 있다. 차량 2만7000원(7월 21일〜8월 15일 10% 추가).
목포에서 서쪽으로 직선거리 28.5km 서남단 해상 끝머리 신안 앞바다에 자리한 암태도는 목포에서 뱃길로 약 2시간이 걸린다. 암태도,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 엇비슷한 크기를 가진 네 개의 섬들이 모여 있다.
돌이 많이 흩어져 있고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여져 있다고 하여‘암태도(岩泰島)’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7시 20분 암태도 행 대흥페리는 뱃고동을 울리며 바다를 향해 서서히 미끄러져 나간다. 목포의 상징인 유달산이 점점 시야에서 멀어지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더욱 기분을 들뜨게 만든다.
약 1시간. 팔금도 고산리에 잠시 들른 다음 뱃머리를 돌려 암태도로 향한다.
다시 뱃길따라 약 1시간 암태도 남강 나루에 닿는다.
뱃머리가 암태도에 다다르자 섬 한복판에 우뚝 솟은 승봉산(해발 355m)이 늠름한 모습으로 나그네를 반긴다.
‘아득한 옛날 천지가 생성되던 그 때 이곳은 모두 물속에 잠겨 있다가 한 말(斗) 가량의 땅덩어리가 솟아 자은도의 두봉산(斗峰山)이 되었고, 이와 맞닿은 암태도에는 한 되(升) 가량의 땅덩어리가 솟아 있다가 승봉산(升峰山)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자은도와 암태도는 폭 2차선의 은암대교로 연결되어 있다.
남강나루에서 805번 지방도로를 따라 자은방향으로 걷는다. 네 개의 섬을 잇는 805번 지방도의 끝으로 갯벌과 작은 섬이 흩어져 있다.
이 섬 안에는 교회가 많다. 물 빠진 갯벌에 쏟아지는 아침 햇살이 눈부신 약 1km 정도의 마명방조제 끝에 암태도소작인항쟁기념탑이 우뚝 솟아있다.
암태도는 일제강점기 '소작쟁의'로 유명하다. 이 소작쟁의를 모델로 1979년과 1980년 송기숙씨가 잡지(창작과 비평)에 소설 <암태도>를 연재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남강나루터에서 산행들머리인 암태중학교까지는 도보로 약 40분 정도 소요된다. 교정 오른쪽으로 산길이 나있고 중간에 이정표도 서 있다.
산불감시초소가 자리 잡고 있는 봉우리에 서면 사방으로 툭 트인 시야에 어느 쪽으로 눈길을 주어도 바다와 섬들이 근사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호젓한 산길이다. 해풍도 상쾌하고, 연둣빛 새잎과 꽃보다 아름다운 이름 모를 나뭇잎이 미소를 건네며 나그네를 반긴다.
주변에 지천으로 깔린 고사리를 재취하느라 아주머니들의 발걸음은 더욱 더디기만 하다. 오후 2시 40분에 암태도를 떠나는 배가 없어지고 오후 4시 20분에 떠나는 배를 타기 때문인지 산행은 더욱 여유롭다.
커다란 바위로 이어진 암릉에는 소똥처럼 생긴 바위손이 뒤덮었다. 얼마나 많은지 꼭 일부러 재배하는 것 같다. 손이 안타는 걸 보면 신경통에 좋다는 말이 있는데 낭설인가보다.
산행을 시작한지 약 2시간. 승봉산 정상에 서면 신안군의 전체 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푸른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광이다. 자은도의 두봉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자은이란 이름은 임진왜란 때 참전했던 명나라 두사춘이라는 사람이 이곳에 피신해 와 난세에도 목숨을 구하게 됨을 감사히 여기고 이곳 사람들이 베풀어준 사랑과 은혜를 못 잊는데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하산 길은 도창리(정상에서 1.9km) 방향으로 잡았다. 산을 거의 다 내려와 묘지 나무 그늘에 앉아 점심식사를 하고 노만사로 가기 위해 지나가는 차를 세운다.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마침 볼일이 있어 그 동네에 가신다며 선뜻 태워준다.
수곡리 입구에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10여분 오르면 비포장 임도가 이어진다. 그 길을 따라 7-8분 오르면 멀리 고즈넉한 산사의 모습이 시야에 빨려 들어온다.
수곡리 승봉산 기슭에 위치한 노만사는 신안군에서는 가장 오래된 사찰로 1873년에 창건되었으며, 해남 대흥사의 말사(末寺)로 작은 규모의 사찰이다. 해상 산중에 세워졌다는 점이 각별한 의미를 던져주는 이 절은 덩굴식물로 칭칭 감긴 절 입구 일주문이 묘한 분위기를 일으키고 주변은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이색적인 풍경이다.
대웅전 1동, 칠성각 1동, 요사채 1동으로 구성되었으며, 법당 뒷편에 10년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자궁 모양의 약수터가 있다.
다시 오던 길로 발걸음을 되돌려 남강 나루터를 향해 걷는다. 도창리에서 단고리를 지나 와촌리로 향한다. 남강나루터로 가로 질러 가는 길이다. 마늘밭에는 아낙네들의 손길이 분주하고 들녘에는 트롯가요가 흘러나오는 트랙터가 한가롭게 움직인다.
자은·암태·팔금·안좌 4개의 섬은 3개의 연도교(連島橋)로 이어져 있다. 가장 먼저 개통한 다리는 지난 90년에 안좌도와 팔금도를 연결한 신안1교(510m). 자은도와 암태도를 잇는 은암대교(675m)는 96년에 개통했다. 그래서 자은·암태가 한 섬, 팔금·안좌가 한 섬을 이루었던 것이 암태도와 팔금도를 잇는 중앙대교(600m)가 건설되면서 4개 섬이 연도(連島)가 됐다. 세 개의 다리 모두 길이가 500m, 높이가 30m 이상이라 드라이브 하는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매도, 거문도, 거사도, 백계도, 원산도, 매실도, 일금도 등 8개의 섬들이 하나로 연결된 모양이 여덟 마리 새의 형상을 닮았다는 팔금도는 4개의 섬 중에서 가장 작은 섬이다. 차를 타고 5분 정도 달리면 안좌도와 연결되는 신안1교를 만난다. 안좌도는 꽤 큰 섬이다.
남강나루터 슈퍼에는 먼저 도착한 일행이 벌써 취기 오른 얼굴로 웃음꽃을 피운다. 인심 좋은 할머니가 혼자 지키는 구멍가게에서 시원한 막걸리로 갈증을 달랜다. 뭍에서 온 나그네들이 궁금한지 할머니는 이것저것 묻는다. 이곳 암태도에는 고사리가 아주 많아 목포에서 아주머니들이 배를 타고 고사리를 재취하러 온다고 한다. 어제 할아버지가 밭에 가시며 뜯은 고사리나물을 먹어보라며 상에 내놓으신다.
마을버스가 배 시간에 맞춰 운행되고 만원 정도면 부름택시(콜택시)를 이용하여 자은도로 갈 수 있다. 선착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 기사는 목포에서 뱃길로 1시간 거리인 압해도와 암태도를 잇는 새천년대교가 건설되면 더 많은 손님들이 암태도를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연장 16km 중 도로 9km, 해상 교량이 7km인 이 새천년대교는 지도, 증도, 임자, 흑산을 제외한 신안 다이아몬드제도와 연결되는 교량으로 10개면 3만여 명의 주민이 혜택을 보게 된다.
16시 20분 대흥페리호가 선착장에 닿는다. 뭍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주민들이 손에 보따리 하나씩을 들고 배에서 내린다.
때 묻지 않은 섬사람만의 순박함과 나그네를 대하는 넉넉한 인심이 살아 있는 섬 암태도. 남강항을 떠나는 뱃머리에 서서 다시 승봉산을 올려다본다. 피곤한지 모두들 선실바닥에 몸을 누인다. 유달산이 가까워지고 배는 다시 출발한 곳에서 나그네들을 일상으로 돌려보낸다.
좋은 기억으로 남은 추억이 있어 여행은 영혼의 재충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