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 2007년 4월 22일 (일)
산행코스 : 학현슈퍼-신선봉-금수산-망덕봉-소용아릉-능강교
산(山)은 누구나 언제, 어느 때든지 가고 싶으면 갈 수 있는 대상이다. 또한 산(山)은 ‘나’라는 존재를 겸손하게 만들고, 세상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깨우치게도 한다.
산행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이면 이름이 잘 알려진 곳보다는 숨어 있어 호젓하고 사람들의 발길이 많지 않아 때가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비경과 중간 중간 오금이 저리는 짜릿한 스릴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을 고집한다. 그러나 이런 곳은 대부분 안전시설이 없어 출입통제구간으로 묶여있다.
4월 귀연 산행 안내를 맡아 둘째 주 월악산 만수능선에 이어 금수산의 서능(일명 소용아릉)을 산행코스로 잡았다.
월악산 국립공원에 예속된 금수산(錦繡山)의 원래 이름은 백운산이었다. 그러나 조선 중기 단양 군수를 지낸 퇴계(退溪) 이황 (李滉·1501∼1570)이 단풍 든 이 산의 모습을 보고 ‘비단에 수를 놓은 것처럼 아름답다'며 감탄, 산 이름을 금수산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금수산 남쪽 마을 이름이 백운동인 것도 옛 산 이름의 흔적이다.
금수산은 북쪽으로는 제천시내까지, 남쪽으로는 단양군 적성면 말목산(720m)까지 뻗어 내린 제법 긴 산줄기의 주봉이다. 주능선 상에는 작성산(848m), 동산(896.2), 말목산 등 700∼800미터 높이의 산들이 여럿이고, 중간마다 서쪽으로 뻗은 지릉에도 중봉(885.6m), 신선봉(845.3m), 저승봉(596m), 망덕봉(926m) 등 크고 수려한 산들을 거느리고 있다.
-제천홈페이지 http://tour.okjc.net/ 에서-
찾아가는 길..
남이분기점에서 중부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진행하다 오창 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하고 증평톨게이트 빠져나가 좌회전하여 510번 지방도로를 타고 진행하다 이어지는 34번 국도와 36번 국도를 타고 충주방향으로 진행한다.
82번 국가지원 지방도로를 따라 청풍방향으로 진행한다. (TIP 국지도-원래 지방도였으나 그 도로의 중요도가 높아 중앙정부에서 지원하여 건설된 도로로서 거의 국도 급의 관리 상태와 노선을 가지고 있으며 보통 2개 이상의 시군을 지나는 규모가 큰 지방 도로이다. 도로의 표시판은 노란 정사각형에 녹색글씨로 두 자리로 표기되어있다. 한 자릿수는 없다)
청풍문화재단지를 지나 청풍대교를 건너 좌회전한다. 행자부에서 청정지역으로 지정한 학현아름마을 입구(송이 조형물 및 이정표가 있다)에서 힘들게 오르막길을 오른다.
날아가던 학이 잠시 쉬어가려고 동남쪽 금수봉에 사뿐히 내려앉았다가 바위로 변하였다 하여 지금도 그 바위를 학바위라 칭하고 있으며 그때부터 마을 명칭을 학고개 또는 학현(鶴峴)이라고 불린다는 전설이 있다.
10시 30분. 들머리 도착 시간이 예정보다 늦어져 원래 말바위를 거쳐 오르려던 것을 학현슈퍼로 들머리를 변경한다. 초반부터 가파른 오르막을 치고 오른다.
위 사진은 2005년도 산행할 때 촬영한 것임..
들머리에서 1시간. 680봉에 도착한다. 이곳은 저승봉(미인봉)을 거쳐 오르는 길과 합류되는 지점으로 “신선봉 2.2km 미인봉 1.2km” 이정표가 있다.
저승봉은 예부터 산 아래 저승골이라는 협곡이 있었고 마을 사람들이 저승골로 들어서면 되돌아오는 사람이 없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옛날 이곳에 멧돼지가 많아 돼지 저(猪)를 써서 멧돼지가 오르내리던 산이라는 뜻에서 저승봉이라고 주장한다.
신선봉으로 향하는 길은 왼쪽으로 꺾어진다. 신록과 노송이 눈을 즐겁게 하며 오른쪽으로 충주호가 펼쳐진다.
충주호를 이루고 있는 남한강은 오대산에서 발원하여 강원도 남부 지방의 여러 물줄기를 끌어 모아 강원도 정선에서 어엿한 강의 모습을 갖춘다. 강원도 땅 정선과 영월을 거쳐 충청북도로 흘러든 남한강은 단양과 제천을 가로지르면서 천하의 절경을 만들어내고는 충주로 흘러간다. 이러한 남한강에 1985년 충주 다목적 댐이 생기면서 유유히 흘러가던 물줄기는 드넓은 호수로 변하였다. 남한강이 거대한 호수로 변하면서 강줄기를 따라 형성된 많은 문화유적들과 아름다운 풍경들은 상당 부분 물에 잠기게 되었다.
위험한 암릉구간을 지난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뚝 떨어졌다 밧줄 매달린 바위 암벽을 기어오른다. 어느 고운 손들이 이렇게 위험한 구간마다 밧줄을 매놓았을까. 나는 오늘도 가슴 따뜻한 분들의 사랑을 먹으며 감사한 마음으로 산길을 걷고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신선봉 1.2km 이정표가 보이는 곳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한쪽에선 지글지글 삼겹살이 익어가고 복분자주를 비롯하여 여기저기 배낭에서 나온 갖가지 술이 돌아가며 정을 나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신선봉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신선봉(845.3m)에는 돌탑과 표지석이 보이고 길이 갈라진다. 왼쪽은 학생야영장으로 하산하는 길이고 오른쪽이 금수산으로 가는 길이다.
우리나라에는 신선봉이란 산 이름이 많다. 이는 도교적인 불로장생, 신선사상 등이 우리 겨레에 뿌리 깊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지 경관이 좋은 산은 신선이 노니는 곳이라는 뜻에서 이 이름을 붙였다.
금수산으로 향한다. 낙엽으로 푹신한 산길은 발밑의 촉감이 부드럽다. 30분 정도 진행하면 898봉 갈림길이다. 왼쪽은 갑오고개로 내려서는 길이고 금수산은 오른쪽 길이다.
갈림길에서 약 1시간이면 해발 880m 살바위고개에 도착한다. 갈림길이다. 이정표에는 금수산 0.3km 상학마을 2km로 적혀있다. 오른쪽 바위 길은 망덕봉을 거쳐 능강교로 이어지는 길이다. 이 고개에서 금수산 정상까지는 날카로운 암봉으로 이어진다. 정상 직전에는 철계단과 쇠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금수산(錦繡山, 1015.8m) 정상은 비좁은 암봉으로 되어 있어 쇠난간으로 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정상 암봉에는 단양 심지산악회가 세운 정상 표지석이 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사방으로 시원스럽다. 북쪽으로는 지나온 신선봉과 동산이 능강계곡과 함께 시야에 들어온다. 가야할 망덕봉 뒤로는 청풍호반이 펼쳐지고, 남쪽으로 월악산과 대미산이 시야에 들어오고 청풍호반을 가르는 유람선이 유유히 지나간다.
다시 살바위고개로 내려서 망덕봉으로 향한다. 망덕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소나무 숲 사이로 난 걷기 좋은 오솔길이다. 약 10분 정도 진행하면 얼음골재다. 어댕이골 등산로에서 얼음골로 넘어가는 등산로가 만나는 사거리로 금수산의 자세한 등산 안내도가 있다.
15분 정도면 망덕봉(望德峰, 920m) 정상이다. 정상은 넓은 공터지만 주변으로 떡갈나무가 울창해 조망은 없다. 나뭇가지에는 충북986산악회가 설치한 ‘망덕봉 926.0m'라는 표지판이 걸려있다.
5분여 내려오면 길이 갈라진다. 망덕봉 서능(일명 소용아릉)은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천애절벽지대 위로 기기묘묘한 암봉들이 있어 리지코스를 즐기는 이들이 찾는 산행코스이다.
이 길은 처음부터 급경사를 이루며 쏟아지다가 십여 미터의 절벽을 내려서면 숨어있던 비경이 그 모습을 드러내며 나그네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짙푸른 녹음은 강렬하고 성숙한 느낌을 주지만 연둣빛 새 이파리는 청초하고 가녀린 매력을 자랑한다.
이어지는 절벽길을 돌고 돌아 U자 협곡의 안부에 닿는다. 오른쪽 세미클라이밍 지대를 올라야만 망덕봉 산행의 진수를 맛볼 수 있으며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왼쪽 절벽 아래로 잘 나 있는 길은 우회로처럼 보이지만 고두실골(얼음골)로 하산하는 길이다.
오른쪽으로 올려다 보이는 바위벽 벼랑위엔 가느다란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힘겹게 고스락(순우리말로 정상을 뜻한다.)에 올라서면 본격적인 소용아릉(설악산의 용아릉을 닮았다는 소용아릉은 일명 ‘용아장성’이라고도 한다)길이 시작되는데 지금까지 막혔던 조망이 사방 막힘없이 한꺼번에 터진다.
충주 호반의 푸른 물살을 가르며 유람선이 한가로이 지나가고 북쪽으로 올려다보면 저승봉의 아래로는 천년고찰 정방사가 보이고 지나온 암릉이 손에 닿을 듯하다. 따로 떼어놓아도 훌륭한 작품이 될 조물주의 작품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칼날 같은 암릉길에서 자칫 실족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탄성 속에 몇 차례 로프 구간을 내려서면 널찍한 화강암 반석지대에 닿는다. 조망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한다. 일상을 벗어나 떠난다는 것 자체만으로 즐거운 일이지만 정신적 육체적으로 자연과 하루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산을 오르는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임이 분명하다.
큰 바위가 가로 막고 있다. 일명 ‘산부인과 바위’ 라고 부르는데 반대편에서 보면 개구멍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머리부터 나오는 게 뱃속에서 아이가 나오는 모습을 연상시켜 붙인 이름 같다. 그러나 이 바위는 코끼리가 코로 비스킷을 집는 모습을 하고 있어 ‘코끼리 바위’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 우회로가 있다.
바위길이 계속되고 또 한 번 솟구친 조그만 암봉을 내려서면 위험구간에서 벗어나 잠시 흙길을 밟을 수 있다.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면 이쯤에 3m 높이에 폭 70cm의 비석바위가 있다는 데 확실하게 어느 것인지 확인하지 못했다.
미로같은 암릉길에서 키 작은 개선문 두 곳을 통과한 후, 참나무 숲길을 내달아 고사리봉 직전의 안부로 내려서 이내 능강천 계곡에 닿는다. 아직 제철을 만나지 못한 계곡에는 유리처럼 투명하고 차가운 계수(溪水)가 흐른다. 얼굴을 씻어내니 짠맛이 입속을 파고든다. 등산화에 묻은 흙과 먼지를 씻어내고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붙이고 탁족을 즐긴다. 기분은 상쾌하고 머릿속을 부유하던 상념이 소멸한다.
길을 재촉한다. 만덕암 주변에 정갈하게 쌓아 올린 수많은 돌탑들이 조팝나무와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돌탑의 배웅을 받으며 지계곡을 끼고 내려오다 나뭇가지 몇 개를 엮어 만든 앙증맞은 출렁다리를 건너 10여분을 걸으면 능강교 주차장이 나타난다.
능강구곡은 차에 밀리고 사람에 치이고 북새통의 국립공원보다도 몇 곱절 자연을 음미하고 자연과 소리 없는 대화를 할 수 있어 더 좋다.
산 위에 지어진 유럽풍 친환경 리조트 클럽 ES는 산기슭 바위 하나, 나무 한그루의 풍치와 생태를 잘 살려 각종 영화, 드라마, CF 촬영의 명소로 유명세를 얻고 있다.
능강교 옆 주차장에 도착하면서 약 7시간의 금수산 산행은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