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19일(화)
고레파니-푼힐-고레파니-낭게단티-티케둥가-울레리-힐레-비렌단티-나야풀-포카라
5시. 자연스럽게 눈을 뜬다. 어제 밤늦게 까지 눈발이 날리던 흐린 날씨가 새벽이 되자 하늘에 별이 반짝인다. 네팔리 스텝이 끓여 준 티를 마시고 푼힐 전망대로 향한다. 방문자의 안전을 위하여 출입시간을 제한하고 있다. 하계에는 오전 4시, 동계에는 오전 5시. 동절기는 새벽 5시에 게이트를 개방하므로 너무 일찍 출발하여도 기다려야 한다.
푼힐(Poon Hill 3210m)이라는 말의 의미는 '머걸족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이곳에는 네팔 종족 중의 하나인 몽골리안 계통의 머걸족이 많이 살고 있으며, 그들은 자신들을 가리켜 푼(Poon)이라고 부른다. (푼=머걸족) 이곳은 고도 3000m 정도는 산이 아니라 언덕이라고 한다. 그래서 푼힐이다.
푼힐 전망대까지는 약 1시간 20분 소요. 푼힐은 안나푸르나와 다울라기리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이다. 사우스안나푸르나와 히운출리의 장엄한 모습이 드디어 눈에 들어온다. 6시 50분이 되자 동이 트기 시작한다. 붉은 해가 구름 속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며 솟아오른다.
일행들은 기념사진을 촬영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라울라길리와 마차푸차레는 끝내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그러나 일출과 멋진 설산의 모습을 가슴에 담은 일행들의 목소리에는 들든 기분이 묻어난다.
8시 숙소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스텝들이 짐을 꾸리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 장작난롯가에 앉아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한다.
9시 25분. 파이팅을 외치고 하산을 시작한다. 50분 정도 내려서자 타티 롯지에 도착한다. 티벳국경 무스탕으로 가는 차마고도 마방행렬이 지나가고 곧이어 낭게탄티(Nangethanti)에 닿는다.
푼힐코스는 부락과 부락을 연결하는 기존의 루트를 같이 이용하므로 주로 돌계단이 많다. 그러나 계단의 높이가 높지 않고 계단의 폭이 커서 위험성이 적고 생각보다 힘이 적게 든다.
힌두교에서는 소들도 사람처럼 카스트가 있다. 피부색으로 그 가름을 한다. 단연코 흰 소가 최고 높고, 그 다음이 잿빛 나는 소, 노란 소 그리고 버펄로 순서인데, 버펄로는 소 취급도 안한다.
때로는 주민들과 함께 걷는다. 눈발이 점점 굵어지고 왼쪽 아래 깊은 계곡에서 들리는 물소리가 경쾌하다.
풍부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부족한 것도 없다. 점점 단순해진다. 한 끼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날마다 펼쳐지는 새로운 풍경이 행복하다.
12시 15분. 멀리 울레리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멋지고 낭만적인 풍경을 자아내는 나무와 돌로 지은 산간마을 시골집 뒤로 펼쳐진 풍광을 바라보면서 평화로움에 잠긴다.
현실의 일상은 우리를 항상 긴장으로 내몰지만, 여행은 이러한 긴장을 무장해제 시킨다.
울레리 승리교회를 지나 해바라기 하고 있는 노인에게 연세를 물으니 너무 오래되어 잊어버렸다고 한다. 초콜릿 몇 개를 손에 건네고 인사를 나눈다.
티케둥가(Tikhedhunga)에서 간식을 나누어 먹으며 휴식을 취한다. 가이드 넉걸구릉이 여자분들에게 랄리글라스를 선물한다.
매우 가파른 돌계단 길이 계속된다. 지도에는 3280계단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를 건너며 폭포를 감상한다.
2시 정각. 힐레(HILE)에 도착한다. 산에서 마지막 식사는 라면정식이다. 일행 중 한 분이 배낭에서 볶음고추장과 장조림, 콩자반, 꽁치통조림을 내놓아 입을 더욱 즐겁게 한다.
3시 10분. 걸음을 재촉한다. 점심식사 준비를 하는 마방일행을 만나 아이들에게 볼펜과 초콜릿을 선물한다. 이들은 옥수수나 쌀을 가지고 무스탕에 가서 치즈 등과 물물 교환한다고 한다.
징검다리를 건너 계곡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를 건넌다. 롯지 상점에서 생수(큰 병 50루피)를 사서 갈증을 달래고 힘을 얻는다. 오른쪽으로 계곡을 끼고 산중턱을 휘감아 돈다.
멀리 포터 브레임꾸마르(60세)가 힘겹게 걸어온다. 손자뻘 되는 아이들과 함개 포터를 하기 때문에 언제나 늦다. 안쓰럽지만 현실이다.
연이어 나타나는 폭포가 장관이다. 비렌단티에 도착한다. 뒤돌아보니 마차푸차레가 그 꼬리만 모습을 드러낸다. 트레킹을 마치는 나그네들에게 히말라야가 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6시 정각 나야풀에 도착하면서 트레킹은 끝이 난다. 캔맥주(110루피)로 갈증을 해소하고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오른다.
여기서 운전사를 '구루지'라고 한다. '구루'란 영적인 스승을 뜻한다. 그리고 '지'란 우리의 '님'에 해당하는 높임말이다. 그런데 운전사에게 이런 거룩한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차량마다 운전사 밑에 조수가 딸려있다. 조수는 운전사를 도와 온갖 일을 다 하면서 운전과 차량의 정비를 배운다. 그러므로 조수 입장에서는 운전사가 구루지인 것이다.
8시 서울둑배기에 도착하여 헤어졌던 관광팀과 반가운 해후를 하고 늦은 저녁식사를 한다. 메뉴는 민물매운탕과 닭볶음이다. 오늘 결혼 34주년을 맞은 부부를 위해 축하파티도 겸해진다. 서울뚝배기 사장님의 축하노래와 종업원의 전통 춤 공연이 흥겨움을 더한다.
9시 숙소인 포카라그랜드 호텔로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그대로 곯아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