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양성산에 다녀오려고 오후 1시 집을 나선다. 신탄진으로 이어지는 17번 국도에서 대청호로 이어지는 32번 지방도로를 따라 대청호를 끼고 호젓한 길을 달린다. 물길이 꼬리를 무는 환상적인 호반 드라이브 코스다. 대청댐을 지나 우회전하여 구불구불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가면 현암정 휴게소에 다다른다. 현암정에 들려 대청호를 잠깐동안 감상한다.
현암정은 해발 150m로 1980년 대청댐 건설과 함께 조성된 시민 휴식 공간이다. 댐 건설 이전에는 남쪽으로「형강」, 동쪽으로「곰실」「섯발」북쪽으로「광원」이란 마을이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수몰되었다. 「광원(光院)」이란 마을은 조선시대 역(驛)이 있어 수륙교통의 요충지였으며 인근 신탄나루 터와 함께 소금 등 많은 생활 물자를 문의현과 염티재를 경유하여 보은 지방에 공급하였다고 한다.
북쪽에 우뚝 솟은 구룡산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영토확장을 위한 전투가 끊이지 않던 변방의 군사 요충지로써 당시의 성곽 흔적이 남아 있으며, 신라 성덕왕때 창건된 현암사는 절벽에 매달린 듯 자리잡아 일명 「다람절」이라 한다. 동국여지승람은 이곳을 '고찰에서 들리는 은은한 독경소리와 붉게 타 들어가는 석양의 아름다움을 보고 많은 선비들이 시를 읊던 곳'으로 소개하고 있다.
문의대교를 지나 청주방면으로 진행하다 보면 문의문화재단지, 문의영화마을 팻말이 눈에 띤다.
청원군에서 조성한 문의문화재단지와 청소년수련관 입구로 3,000평 규모의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다. 문의문화재단지는 대청호 수몰지역 문화재를 옮겨 복원한 역사 교육장이다. 1980년도 대청댐 건설이 계기가 되어 1992년 시작하여 1999년에 완공하였다. 단지 안에는 문의 가호리 고인돌을 비롯한 선사 유적과 옛 문의현의 객사인 문산관을 이전 복원하였다. 전통가옥과, 효자각, 충신각을 원형대로 옮겨 세우고 문의지역의 옛비석들을 모아 비석거리를 조성하였다.
이 밖에 양반가옥, 주막집, 대장간, 성곽을 재현해 놓았고, 특히 여막이 눈길을 끈다.
여막은 묘소 가까이에 지어놓고 상주가 탈상 할 때까지 시묘(부모 상을 당하여 여막을 짓고 생활하며 묘를 보살피는 일)하며 거쳐하는 곳이다. 우리의 옛조상들은 효를 백행지본으로 여기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모든 힘을 다했으니 인륜과 천륜이 사라져가는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이 되고 있다.
전시관에는 충북무형문화재 제 170호 영조대왕태실가봉의궤를 비롯하여 우리나라 각 지방에서 출토된 기와(와당)를 시대별로 분류 전시하였다.
문의(文義)는 백제때는 일모산군으로, 신라때는 연산군으로 불려지다가 고려시대부터 문의현이 되었다. 문화재단지가 자리잡은 양성산에는 신라 자비왕 17년(474년)에 축성한 산성이 있다.
자동차극장 주차장에 주차하고 간단하게 산행 준비를 한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우뚝 솟은 산이 '양성산'이다. 정상쪽을 바라보니 정상 팔각정사가 가물 가물하고 왼쪽으로 독수리바위도 가물 가물하게 눈에 들어온다. 주차장 끝부분에 등산로 입구 표시가 있어 쉽게 산으로 오를 수 있다.
청소년 수련관으로 오르는 길목에는 양성산 등산 안내도가 있다. 안내도에는 (현위치)(불당골 공원-독수리바위 1.0km )( 독수리 바위-정상 0.5km)( 정상-삼거리 0.3km)( 삼거리-양성산산성 0.5km)( 양성산성-불당골 1.0km) 로 표시되어 있다. 산행 총거리는 3.3km이다.
가파른 산길을 따라 약 30분정도 오르면 능선의 정상부분에 이르게 되는데, 이곳부터 날카로운 바위를 따라 등산로가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 이르면 남쪽으로는 대청호가 서쪽으로 마을과 야산이, 동쪽으로 문의면 소재지가 내려다 보인다. 또한 양성산 등산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독수리바위"에 이르게 된다. 이곳이 양성산 등산로의 기념 사진 촬영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능선을 따라 약 20분 정도가면 378고지(정상) 에 이르게 되는데 이곳에서 북쪽으로 우뚝솟은 산이 최정상 작두산(430m)이다. 정상에는 충북 청원군에서 설치한 표지석과 팔각정사 그리고 새천년 1월 1일에 세운 2개의 장승이 자리잡고 있다.
겨울 햇살을 받은 대청호수가 눈 아래 펼쳐져 가슴 속까지 시원해지고, 뒤쪽으로는 까치머리를 한 연두백사가 있었던 산이라 해서 이름지어진 작두산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분쟁이, 부수골, 마장이 마을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주차장(분당골)에서 양성산 정상까지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약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신라시대 화랑도 출신의 화은대사(和隱大師)가 양성산을 보고 "중이 발(鉢)을 들고 시주를 구하는 형세"라 하고는 "양승지(養僧地)로 흠잡을 데가 없구나" 라 말하면서 승병 300명을 제자로 삼아 불경과 무예를 익혔으며, 숲속에서 300명의 승병이 훈련하며 소리를 질러도 밖에서는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고요한 산이었다고 한다. 후에 화은대사와 승병들이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는데 일조했다는 전설이 있다. 승병을 길렀던 곳이라 양승산(養僧山), 양성산(壤城山)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나무와 물이 많은 산으로, 산 아래로는 수원이 풍부한 계곡물이 불당골계곡으로 흐른다. 마침 한 달에 한 번 극기훈련 삼아 이곳 양성산 정상에 오른다는 문의중학교 전교생(약 100여명)의 함성 소리를 듣는다.
양성산 정상에서 장승 오른쪽 능선을 따라 약 10분 정도 가면 갈림길에 이르게 된다. 왼쪽은 작두산 오르는 길이고 오른쪽 경사진 길을 따라 20여분 내려가면 삼거리 갈림길 안부에 도착한다. 이곳에도 이정표가 서 있다.
오른쪽 계곡 길은 청소년 수련원으로 직접 내려가는 길이고 직진하여 오름길은 양성 산성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이다. 오름길에 만나는 조그마한 나무 구름다리를 지나 넓은 공터에 이르자 문의중학교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양성산성 갈림길이 나오고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가자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에서 발굴조사중인 양성산성원지가 나온다.
다시 완만한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화장실옆으로 해서 분당골 주차장에 도착한다. 양성산 정상에서 주차장까지 약 1시간 남짓 소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