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금북정맥 7구간(모래재-구례고개)
2008년 3월 2일(일) - 26명
모래재-보광산-고리티고개-내동고개-보천고개-행치고개-큰산-삼실고개-돌고개-구례고개(약 20km, 7시간 20분)
8시 오창휴게소에서 10분간 정차하고 곧바로 증평 톨게이트를 빠져나가 좌회전하여 510번 지방도로를 타고 괴산방향으로 진행한다. 인삼의 고장 증평을 지난다.
8시 30분. 보광산 들머리에 도착하여 간단하게 산행 준비를 하고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한다.
눈발이 날리자 마음들이 조급한지 초반부터 걸음이 빠르다.
보광산 등산 안내도를 지나자 왕릉 같은 묘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관어모 장군행선전관' 구례손씨 합장묘로 비석에 새겨진 글씨는 오랜 세월 풍파를 견디다 못해 마모되어 읽을 수조차 없다.
보광사 절에 잠깐(정맥 길에서 1분 거리) 들리고 보광산 정상(정맥길에서 100m) 찍고 오는 사이 앞 서 진행한 일행들은 점심 식사 시간에 만날 수 있었다.
들머리에서 20분 보광산과 내동마을로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를 지나 보광사로 향하는 차도와 인도로 내려선다. 인도를 다라 6-7분 정도 진행하면 보광사에 닿는다. 대웅전과 요사채만 있는 작은 절이다. 대웅전에 봉안된 괴산봉학사지 석조여래좌상은 문이 굳게 닫혀 있어 보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린다.
보광산으로 향하는 삼거리에서 5분 정도 진행하면 보광사 뒤편의 옛 절터에 닿는다.
어떤 스님이 절을 지으려고 터를 잡고 목재를 구하고 목수를 불러 일을 하는데, 어느 날 봉학새가 날라 와 무엇을 물고 날라 가더란다. 날마다 날아와 물고 가는 봉학새가 이상해 쫓아가 보니 바로 보광산 이었고 스님은 지금에 봉학사터에 절을 지었다고 전한다.
옛 봉학사지와 5층 석탑을 만날 수 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절터에 홀로 남은 5층 석탑은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지방유형 문화제로 지정되었다는 안내판이 있다.
탑 위쪽으로 큰 묘가 두 개 있는데 이것은 봉학사와 관련 있는 묘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이 묘 자리는 봉학사의 대웅전이 있던 자리로 이 터가 "금계포란형"으로 천하에 드문 명당자리라 김 아무개의 자손들이 세도를 등에 업고 절을 허물어 이 명당자리에 묘를 썼다 한다. 봉학사가 철거된 지 여러 해 지난 후 괴승이 나타나 앞산의 물길을 둑을 쌓아 돌리도록 하여 후손을 잇지 못하게 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그리고 김 아무개 묘를 쓸 때 그 아들이 석공에게 상석이 너무 작다고 하니 석공은 “걱정하지 마시오. 이 상석은 점점 커집니다. 고 했다. 이 말은 김 아무개네 가세가 기울어 제물이 점점 줄어들게 되어 이 상석에 제물을 다 차리지 못할 것인데 이 말을 뒤집어서 상석이 점점 커진다고 했다고 한 것이다.
왼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보광산 정상(普光山, 539m) 표지석이 있다. 괴산군 사리면 수암리에 위치한 보광산은 나지막한 육산에 불과하다. 앞서간 일행들은 그대로 지나친 모양이다.
고리티재로 향한다. 20분 정도 진행하면 삼각점이 박혀 있는 395.4봉으로 이곳에서 이정표를 따라 백마산 방향으로 진행한다. 2-3분 정도 내려서면 임도가 휘감고 지나가는 고리티고개에 닿는다. 왼쪽은 둔터골과 오른쪽은 소암리로 이어지는 길이 갈라진다.
25분 정도 진행하면 능선분기점이다. 여기서 왼쪽은 정맥 길에서 벗어나 백마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백마산은 백마와 장수의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백마가 굴에서 나왔다고 해서 그 굴을 '백마굴'이라 하고 백마굴이 있는 산이라고 해서 백마산이라 한단다. 이곳에서 백마산까지는 왕복 1시간이 소요된다.
정맥은 오른쪽이다. 간식을 나누어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음성읍 주봉마을 향해 진행한다. 내동고개로 내려선다. 내동고개는 음성군 원남면 주봉리 안골마을과 괴산군 소수면 몽촌리 내곡마을을 넘나들던 고개로 옛 성황당 터로 보이는 돌무더기가 나지막한 고목아래 쌓여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소수면 몽촌리의 농촌풍경이 아름답다. 우리말로는 '꾸미'라고 하는 몽촌리는 문화재 국보인 유서경(柳西烱)선생 사당이 있는데 이조시대 유서경 선생 부친이 돌아가셨을 때 좋은 묘 터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마땅한 터를 찾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음성을 지나 도슬기고개를 넘어오는데, 느티나무 밑에서 잠시 잠들었을 때 만난 백발의 노인으로부터 묘 자리를 얻었고, 노인이 꿈을 꾸고 나를 찾아 왔으니. 자네가 이 동네를 지키며 잘 살라고 '꾸미(한문으로는 夢村)'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유씨네는 여기서 계속 번성했다고 한다.
20여분 진행하면 377.9봉을 지나 30분 정도 더 진행하면 보천고개에 닿는다.
음성군 원남면과 괴산군 소수면의 경계다.
도로 건너편에 괴산 85호 보호수(450년 된 느티나무) 왼쪽으로 정맥 길이 이어진다.
15분 정도 진행하면 387.5봉에 닿는다. 백마산이 조망된다.
11시 50분. 상로리로 이어지는 가정자 도로를 건너 너른 묘지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앞서간 일행과 만나 함께 점심식사를 한다.
30분간의 달콤한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다시 길을 이어간다. 먼저 식사를 마치고 출발한 일행이 잠시 알바를 하고 되돌아온다. 광주 반씨 합동제단을 지나 절개지에 올라서자 절개지 아래 자리 잡은 석재공장과 도로건너 행치재휴게소가 눈에 들어온다.
높은 절개지를 석재공장쪽으로 내려서 4차선 36번 국도를 지하굴다리로 통과하면 도로변에 윗행치마을 표지석과 광주반씨 묘비가 보인다.
정맥길은 좌측 능선으로 붙어야하지만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생가를 들렸다가 생가를 지나 조금 더 진행하자 음성군상하수도 사업소 배수지쪽으로 오른다. 반기문 생가의 본채는 없고 누가 텃밭으로 사용하는지 헛간만 남아 있다.
큰 산 오르막길 20여분 동안은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국방부 지리연구소가 설치한 대삼각점이 박혀있는 큰 산 정상은 산불감시 무인카메라가 차지하고 시야가 탁 트여 조망이 시원하다. 멀리서 충북선의 기차 지나는 소리가 들려온다.
큰 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가파르기도 하고 눈이 얼어붙은 내리막길은 내려오는데 여간 고생이 아니다. 아이젠을 착용하고도 한번쯤은 엉덩방아를 찧고 내려가야만 한다.
큰 산에서 1시간 지나 삼실고개에 도착한다.2차선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지나고 있고 고개 좌측으로 사과 밭과 축사가 보인다.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는 일행을 태우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버스 기사님이 타 주신 따뜻한 차 한 잔 얻어 마시고 다시 길을 이어간다.
삼각점(419 재설 769 건설부)이 설치되어 있는 지도상 351.7m봉을 넘어서기까지는 잡목과 가시덤불을 헤쳐 나가야 한다.
7-8분 정도 진행하자 도로 건너 재활용 폐기물 집하장이 눈에 들어온다.
내리막 능선을 내려서고 나무에 타이어가 매달린 곳을 지난 다음, 좌측으로 파란 지붕의 공장건물을 보며 내리막 능선을 내려서고 가족 묘지를 지나 돌고개에 도착한다.
돌고개는 음성군 음성읍 초천리와 신천리를 잇는 516번 지방도로가 정맥 주능선을 가로지르고 있으며, 신도로와 구도로로 나뉘어 있는 삼거리이다. 신도로를 건설하느라 커다란 절개지가 생겼다.
구도로를 따라 진행하자 돌고개 개통기념비가 나타난다.
절개를 치고 올라 5-6분 정도 진행하자 묘지마다 경쟁하듯이 세워 넣은 석물들이 어지럽다. 이렇게 까지 요란을 떨어야 하는지 우리나라의 장례문화가 짜증스럽다.
No27 송전철탑 앞에 이르자 앞서 간 일행이 휴식을 끝내고 자리를 내준다.
휴식을 취하며 간식으로 체력을 보충하고 걸음을 재촉한다.
구례고개(뱀거리고개)에 도착하여 산행을 종료한다. 구례고개는 음성군 음성읍 소여리와 삼생리를 잇는 2차선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지나며, 도로건너에는 “보현산약수터”라고 적혀 있는 표지석과 보현산 임도 안내판이 서있다.
▲묘지마다 경쟁하듯이 세워 넣은 석물들이 어지럽다. 이렇게 까지 요란을 떨어야 하는지 우리나라의 장례문화가 짜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