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평화의 길 20코스(명월2리 버스정류장~풍차팬션)
2025. 3. 2(일)
DMZ평화의 길 20코스 : 명월2리정류장-(3km)-만산령-(6.2km)-만산동계곡-(1.2km)-청정아리 풍차팬션(화천DMZ쉼터)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비가 전국적으로 내린다는 일기예보에, 강원도에는 최대 70cm의 폭설주의보가 발령되었지만, 그러나 배낭을 챙겨 집을 나선다. 매주 일요일 4~5시간의 코리아둘레길 도보여행이 일주일 중 가장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버스가 수피령을 넘는다. 왠지 낯설지 않은 지명, 수피령. 버스가 잠시 정차한 곳에서 대성산 전투전적비와 한북정맥 안내판을 보며 깨달았다. 예전에 한북정맥을 걸으며 지나갔던 곳이었다. 걷기의 흔적이 시간의 층을 쌓아 추억으로 돌아왔다. 청산님은 카페 기록을 찾아 십수 년 전의 추억을 되새겨주며 기록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 2009년 7월5일 한북정맥 졸업 )
숲을 실어 나르는 고개라는 수피령((水皮嶺 780m)은 대성산 능선의 고개 이름이다. 철원군과 화천군을 잇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3·8선의 턱밑이다. 56번 국도가 지나간다. 접근상 남한지역 한북정맥(漢北正脈)의 시발점이자 종점이다. 소설가 이외수씨의 집이 있던 감성마을이 약 5km 떨어진 곳에 있다.
대성산은 한북정맥(漢北正脈)에 해당한다. 6·25전쟁 이후 널리 알려진 산으로 휴전 무렵 아군과 중공군 간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편의점에 들러 막걸리 한 병을 산다. 주인은 폭설예보 주의 재난 문자가 왔다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조심하라 당부한다.
11시 30분, 버스에서 하차하여 단체 사진을 찍고, 명월 복지마트 앞 팻말에 붙은 DMZ 평화의 길 20코스 시작 지점 인정 QR코드 앞에서 한 걸음씩 길을 걸어 나간다.
수피령로에서 만산동로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로 접어든다. 근처 우사에서 나온 배설물로 길은 엉망이고, 고약한 냄새에 서둘러 지나간다. 짧은 마을 길을 지나면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초입부터 펼쳐지는 오르막에 이내 시작된 눈길은 얼어있어 아주 미끄럽다. 덕분에 속도가 나지 않고 힘이 든다. 천천히 고도를 높이며 오른다. 온몸에 땀이 흘러 걸음을 멈추고 재킷을 벗어 배낭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는다.
산행 1시간, 만산령 정상에 도착한다. 850m 정상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막걸리 한 잔으로 갈증을 달랜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올 때보다 더 힘들다. 종아리까지 쌓인 눈에 미끄러질까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긴다. 긴장을 풀고 눈 녹은 임도에 자리 잡고 펼친 점심상은 그야말로 진수성찬이다. 막걸리, 와인, 담금주에 돼지고기 불고기까지. 걸은 만큼 맛있는 식사다.
3월로 접어들었는데 이곳은 한겨울 풍경이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걸어 내려가는 길이다. 강풍으로 인해 꺾인 자작나무가 많아 안타깝다.
만산령 쉼터에는 현재 운영하지 않는 식당 앞으로 익살스러운 정승들이 줄지어 있다. 흔히 볼 수 없는 장승들의 익살스러운 표정이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비래바위 안내판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옛날 9명의 신선이 구름을 타고 내려와 놀던 마을이라고 붙여진 구운리 북쪽에 서 있는 비래암은 폭 500m, 높이 100m의 기암괴석으로 병풍처럼 깎아지른 바위로 주변 산중에 홀로 우뚝 솟아 있어 금강산에서 날아와 앉았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이름도 ‘날라 온 바위’라고 하여 비래암(飛來巖)이라 불렀다.
오른쪽으로 흐르는 만산계곡을 따라 걷다 보니, 상수도 보호구역 안에 팬션과 오토캠핑장이 보인다. 어딘지 아이러니했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15시, 풍차펜션에 도착하여 DMZ 평화의 길 20코스가 끝난다. 도보 여행자를 위한 풍차펜션은 게스트하우스 기준 평일 2만 원, 휴일 3만 원이라는 착한 가격에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한다. DMZ 평화의 길 쉼터에선 무료로 커피를 내어주고, 화장실은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다. 이런 쉼터가 곳곳에 더 많이 생겨서, 더 많은 사람이 평화의 길을 찾아와 걷기를 바라본다.
뒤풀이로 뜨끈한 어묵탕을 끓이고, 삼삼오오 둘러앉아 웃음꽃을 피운다. 다행히 비는 DMZ평화의 길 20구간을 완주할 때까지 기다려주었고, 버스에 올라타자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창밖으로 흐르는 빗물을 바라보며, 오늘의 행복한 추억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귀가한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진다. 졸다 휴게소에서 잠시 쉬어 가기를 반복하며 빗길을 뚫고 무사히 귀가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