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라오스여행(3)-칸차나부리트레킹
1일 투어 -칸차나부리트레킹 : 2012년 2월 17일(금)
여행코스 : 카오산로드----칸차나부리(유엔군묘지---전쟁박물관---콰이강의 다리---코끼링트레킹---뗏목트레킹---싸이욕국립공원---죽음의 열차)---카오산로드
칸차나부리
방콕에서 북서쪽으로 약 130킬로미터 떨어진 미얀마 국경 가까이에 자리한 칸차나부리는 전쟁의 아픈 역사가 숨 쉬는 도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인도 방면으로 전선을 확대하기 위해 태국~미얀마 간 철도의 거점지로 삼았던 곳이 바로 칸차나부리다. 메클롱강과 콰이노이강, 그리고 콰이야이강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하고 있는 시골스런 작은 도시는 1833년 라마3세에 의해 세워졌지만 인근의 미얀마로부터 침입을 막기 위해 도시 주변으로 성곽을 쌓았던 것이 칸차나부리의 시작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영화 ‘콰이강의 다리’로 더 잘 알려진 곳이라 이곳에 있으면 영화 속의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지금도 남아 있는 `콰이강의 다리`가 그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도착한 곳은 유엔군 묘지다. 유엔군 묘지는 칸차나부리 시내 관통 도로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맞은편은 칸차나부리 역이 있다. 이곳은 죽음의 철도 공사에 투입된 후 사망한 전쟁포로 중 6,982구의 유해를 안치한 곳이다.
세계적 명감독 데이비드 린의 1957년 작품 ‘콰이강의 다리’는 일본의 침략전쟁이란 실화를 다룬 명작으로 많은 영화 팬의 사랑을 받았다. 영화는 군수품 보급철도를 건설하려는 일본군과 작업에 동원된 연합군 포로들의 인간적 갈등과 고뇌를 그렸다.
콰이강의 다리는 연합군 포로와 일본군만의 이야기일까? 콰이강의 다리 건설에는 일본군만이 아닌 조선땅에서 강제 징용된 조선인 군속들이 참여 해 일본군으로부터는 식민지 신민으로 차별과 감시를 당했고, 연합군 포로들로부터는 침략군으로 책임과 비난을 받아야 했다.
일본군 패전 후 콰이강의 다리 공사장에 있던 조선인 군속들은 귀국선을 타지 못하고 모두 전범혐의자로 체포돼 방콕형무소에 수감 전범 재판을 받은 뒤 사형선고가 내려져 타국의 형장에서 식민지 신민에 한 많은 삶을 마감해야 했다.
▲ WAR CEMETERY (유엔군 묘지)
중앙에 위치한 커다란 고목이 다정한 어머니처럼 묘비 위로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다.
유엔군묘지를 나와 제스전쟁박물관(입장료 40밧)을 관람한다.
제스전쟁박물관(Jeath War Museum)
콰이강의 다리 옆에 위치하고 있는 '2차 세계대전 박물관'으로 그 이름을 제스 뮤지엄으로 바꾸었다. JEATH는 일본(Japan), 영국(England),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 미국 (America), 태국(Thailand), 네덜란드 (Holland)의 앞 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태국과 미얀마(버마) 간 철도 건설 사진, 현장에서 발굴된 병사들의 유해를 비롯하여 2차 세계 대전 중 일본군들의 만행과 관련된 사진, 수용소 생활상 연합군 포로가 그린 스케치와 유품, 당시 운행되었던 열차 등이 전시되어 있어 한번쯤 들러볼 만하다.
▲ RIVER KWAI(콰이강의 다리)
콰이강의 다리(RIVER KWAI)는 일본 침략 전쟁의 부산물이라 할 수 있는 죽음의 철도가 지난다. 조그만 시골 도시는 제2차 세계대전 말 패전의 징후를 보이던 일본군이 연합군에게 빼앗긴 해상 보급로를 대체하기 위해 방콕 ↔ 양곤 철도 건설에 연합군 전쟁포로와 민간인을 동원하여 20만 여명의 죽음에 대가로 16개월 만에 철로를 완공시키며, 콰이강의 다리는 일명 “죽음의 철도”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죽음의 철도 공사 구간 중 가장 어려웠던 구간은 Konyu(꼰유)지역이다. 공사를 하는 동안 횃불을 피워 놓고 24시간 강제 노동을 했는데 불을 밝힌 모습이 지옥 불처럼 보인다고 해 “헬 파이어 패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입구에 기념관을 건립하여 개방하고 있다.
연합군의 공격에 의해 폭파되었으나 전후 복구된 콰이강의 다리 밑으로 시커먼 강물은 세월을 뒤로한 채 변함없이 흐르고 죽음의 철도는 지금도 하루 세 차례 칸차나부리에서 남똑까지 완행열차로 운행되고 있다. 점심식사 후 이 완행열차를 타는 프로그램이 있다.
버스를 타고 코끼리와 뗏목을 타는 곳으로 이동한다. 태국은 코끼리의 나라다. 태국에서 코끼리는 장수와 신뢰의 상징이다. 특히 흰코끼리는 왕실의 권위를 나타낸다.
성인 코끼리는 하루에 250㎏의 풀을 먹고 50㎏을 대변으로 배출하는데 코끼리의 변은 그냥 버려지지 않고 간단한 가공 과정을 거쳐 종이로 만들어진다. 과정은 마치 한지를 만드는 것과 유사하다고 한다.
문명에 때 묻지 않은 태고의 자연 풍광과 코끼리나 뗏목을 타는 트레킹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싸이욕노이폭포(Sai Yok Noi Waterfalls)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현지 꼬마 아이들과 서양 관광객들은 수영복 차림으로 수영을 하며 여유를 즐기고 있다.
태국을 여행할 때는 일상화된 습관을 잠시 잊는 게 좋다. 태국에선 다른 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매우 무례한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한국에서처럼 친밀감을 나타내기 위해 누군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면 즉시 사과해야 한다.
동남아시아의 여행지에서 숱하게 만나는 일본인들은 예외 없이 작은 공책을 들고 다니며 틈나는 대로 메모를 한다.
죽음의 철도
2차 세계대전 당시 태국이 일본과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 맺었던 동맹 때문에 일본군이 태국에 주둔하게 되었다. 인도를 침공하기 위한 물자수송을 원활히 하기 위해 연합군 포로들과 태국인, 미얀마인 등의 강제 노역자를 동원해 태국과 버마(현재 미얀마) 간의 철도공사를 진행하였다.
총 길이 417㎞에 건설기간만 18개월 정도 걸린 이 철도 공사는 험난한 지형과 열악한 공사 환경 속에서 8만 명의 노동자와 1만6천 명의 연합군 포로, 수천 명의 일본군이 목숨을 앗아갔기 때문에 ‘죽음의 철도’라고도 불린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이 공사는 훗날 피에르 볼레(Pierre Boulle)에 의해 ‘콰이강의 다리’라는 책으로 전 세계에 소개되었고 이후 1957년 동일한 이름으로 영화화 되어 그해 아카데미상 7개 부문을 휩쓴 화제작이 되었다. 한국인들에게는 영화보다 영화 속 배경 음악인 ‘콰이 강 행진곡’(River Kwai March)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콰이강변을 느리게 달리는 열차 안에서 수려한 전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그 분위기에 동화된다. 역도 아닌 곳에서 열차가 멈춰 섰다. 한 노인이 손을 흔들자 기관사가 열차를 세운 것이다. 노인이 무거운 짐을 이고 열차에 올라탔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는 기색이 없다.
칸차나부리 1일 투어를 마치고 카오산로드로 돌아와 유명한 베트남 쌀국수집 ‘쿤뎅 꾸웨이 짭 유안’에서 쌀국수로 저녁식사를 하고 오일 마사지로 피로를 푼 다음 밤거리를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