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

중국 스촨성 여행이야기(5)

대전황태자 2009. 8. 13. 11:37

  

문제는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사는가에 있지 않고 자기 몫의 삶을 어떻게 사는가에 달려 있다.


2009년 8월 5일(수)

과도영-따꾸냥산 정상-과도영-(말)-일륭 일월산장

 

새벽 3시. 가이드의 기상 소리가 들린다. 억지로 죽 한 그릇을 비웠지만 졸음이 쏟아진다. 다시 텐트 속으로 들어가 10여분 눈을 붙이고 랜턴 불빛으로 어둠을 밀어내며 정상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주체할 수 없는 졸음이 쏟아진다. 고소가 온 것이다. 머리가 아픈 것도 속이 울렁거리는 것도 아니다. 그저 졸리다. 그러나 여기서 산행을 포기 할 순 없다. 날이 밝기를 기다리며 한걸음 한걸음 내 딛는다. 삼식이와 현숙님이 안타까워하며 따뜻한 핫팩과 겨울 장갑을 건넨다.


산 중턱에서 송글이님이 건네준 죽 한 그릇으로 힘을 내 보지만 밀려드는 졸음에 다리는 천근만근이다. 바위에 걸터앉아 졸고 또 졸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식물이 전혀 없는 거대한 바위벽으로 둘러쳐져 있다. 바위는 비스듬한 기울기로 층층이 쌓인 구들장모양을 하고 있고 그 아래로 부스러져 흘러내리는 바위는 거대한 너덜지대를 이룬다.


현지 산행 보조가이드가 하산하는 게 좋겠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정상을 밟지 않고 포기하고 싶진 않다. 가이드가 말없이 손을 내민다. 그의 손에 이끌리어 오르다 쉬다를 반복한다.

 

 

어떤 짐승도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인간만이 한계와 고통에 도전한다. 다시 내려갈 것이면서 뭣 때문에 이 꼭대기에 기를 쓰고 오르는가.  


너무 힘들다. 그나마 함께하는 동행이 있어 큰 위로가 된다. 정상에 가까워지자 눈발이 날린다. 8월에 맞는 눈은 처음 경험한다. 30분 정도를 더 오르니 따꾸냥산의 정상이 보인다. 먼저 정상에 오른 일행들이 격려의 박수와 환호속에 드디어 따구냥산 정상(5025M)에 도착한다.

 


 

서울 현숙님이 건넨 따끈한 죽 한 그릇이 온 몸에 온기를 전한다. 정상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거치러진 숨을 고르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짙은 안개로 조망은 아무 것도 없다.  가이드는 이곳을 32번 올랐는데  만년설로 뒤덮인 쓰꾸냥산의 조망을 딱 2번 보았다고 한다.  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하산 길로 들어선다.

 

 

-야오메이봉 : 인터넷사진-

 

 

 

 

정신은 있지만 다리가 풀린 상태. 오르는 것 보다 내려가는 길이 더 위험하다. 앞뒤에서 삼식이와 현지 가이드의 도움을 받으며 무사히 과도영 캠프에 도착한다. 텐트 속으로 기어들어가 또 다시 곯아떨어진다.  

 


 

 

 

그 사이 철수 준비가 끝나고 하산을 시작한다. 과도영(캠프-2)에서 "일륭"까지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전원 말을 타고 내려가기로 예정되어 있다. 이틀 동안에 걸쳐 올라온 길을 단 3시간 만에 내려가는 것이다. 올라올 때는 고소 적응 때문에 천천히 올라올 수밖에 없었지만, 내려갈 때는 그럴 필요가 없다. 

 


 

배낭을 마부에게 맡기고(25위엔) 백마에 올라탔다. 드넓은 초원 위에 말들의 행렬이 장관이다. 험한 내리막길에는 낙마의 위험이 있어 내려서 걷는다. 길을 질퍽하다.

 


 

엉덩이의 무수한 고초를 겪은 끝에 드디어 곽장평에 도착했다. 말에서 내리는 순간, 모두들의 얼굴에는 마치 해방된 듯 한 기쁨이 가득해 보인다. 산장까지 짧은 내리막 산길을 걸어 내려오는데 지루하다.

 


 

 

자연의 위대함과 신비로움, 그리고 창조주에 대한 경외감을 함께 느낀 산행. 고산병에 시달리며 험난한 산을 오르는 혹독한 고통 후, 빈 마음을 채워주는 보람은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다.


끊겼던 도로가 보수 공사를 끝내고 다시 열렸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오늘은 산장에서 묵고 내일 아침 일찍 성도로 향하기로 한다.


마부에게 맡긴 배낭과 진흙탕을 걸어 온 등산화는 온통 진흙투성이다. 엉망이 된 짐들을 대충 정리하고 저녁식사를 한다. 산장 음식으로는 허기만 속이고 삼식이 방에 모여 꽁치 통조림 김치찌개를 끓여 술 한 잔 하고 라면을 끓여 배를 채운다. 이날 유비가 끓인 김치찌개는 잃어버린 입맛을  찾기에 충분했다.

 

 ☆사진 제공 : 송알이/용아/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