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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호남정맥 - 강천산

대전황태자 2008. 10. 28. 18:50
산행일시 : 2008년 10월 26일(일)

산행코스 : 오정자재-520봉-왕자봉-금성산성-구장군폭포-강천사-주차장

 

전북 순창과 전남 담양군의 도계를 이루는 강천산은 비록 산은 낮아도 깊은 계곡과 맑은 계곡 물, 그리고 기암절벽이 병풍을 치듯 늘어선 모습으로 "호남의 소금강"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오늘 산행 들머리는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과 담양군 용면을 연결하는 792지방도의 오정자재이다.


원래이름은 “오누르재”였으나 마루턱에서 전라북도 쪽으로 1km쯤 내려간 마을 이름이 “오정자”이므로 두 이름을 함께 부르다가 “오정자재”로 굳어졌다. 재 자체는 높거나 특수한 것도 없지만 전북과 전남의 도계에 위치한다. 마루턱에는 “전라북도 순창군” “전라남도 담양군” 이라는 표지판들이 서 있다. 마루턱에서 전북 쪽으로 약 4km 떨어진 곳에 강천사(剛泉寺) 입구다.



오정자재 돌 표석을 배경으로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정맥 길로 접어든다. 능선 길 왼쪽은 약초재배단지이며 방목하는 흑염소를 보호하기위한 철사 줄이 410m봉까지 따라온다.





410m봉을 넘어선 철탑을 지나고 520m봉 오름길은 제법 가파르다. 삼각점(순창405)이 박혀 있는 520m봉에 오르면 사방으로 막힘이 없다. 진행방향 바로 아래 전망바위로 서면 강천제가 눈에 들어오고, 강천산 일원이 뚜렷하게 펼쳐진다.













 

안부로 내려선다. 넘어야 할 암봉엔 로프가 매여 있다. 날등 양쪽이 절벽이다.









마루금 따라가는 능선 길은 산책로처럼 부드럽다. 550m분기봉에 이르면 “깃대봉/분통마을/왕자봉”이정표가 반긴다. 일반 산행객들이 많이 지나간다.





갈우방죽삼거리(왕자봉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2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왕자봉 정상은 일부러 다녀와야 한다. 왕자봉은 강천산 최고봉으로 해발 571.9m다. 왕자봉 표지석이 있는 정상에는 강천사와 현수교로 내려가는 등로가 뚜렷하고, 계곡 건너편의 신선봉 뒤로 광덕산이 뾰족하다. 그 오른쪽 선녀계곡 뒤편으론 산성산~북바위~시루봉 연릉이 이어진다.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 나온다. 정맥 개념도에는 형제봉을 경유하게 되어 있지만 제 1형제봉으로 오르는 길에는 [등산로폐쇄/통행금지]팻말 이 막는다. 팻말 앞에서 자리를 잡고 조금 이른 점심식사를 한다.

 

△사계절 어디여? 앞서 진행한 사계절님을 부르는 갓바위님.. 끝내 대강님은 돌아오지 않고..



△상 차려봐! 강회장님의 여유...미니님 와인까지..


 

형제봉삼거리에서 오른쪽 성낙바위쪽으로 진행하여야 하는데 선두가 구장군폭포 방향으로 진행한다. 삼거리에서 산성산 금성산성 북문까지는 숲속 등로가 평탄하고 아주 좋다.

△이곳에서 직진하여 잠시 알바하고...

 





추월산과 담양호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제2강천저수지 갈림길을 거쳐 운대봉으로 향한다.













산성 성곽 위를 걷는다. 최고봉 연대봉(603m)을 중심축으로, 운대봉~북바위~동문~시루봉~내남문~노적봉~철마봉~서문~북문~연대봉으로 빙 둘러싸인 7.345km의 금성산성은 사적 제353호로 지정돼 있다. 장성 입암산성, 무주 적상산성과 함께 `호남 3대 산성`으로 꼽히는 금성산성 길이는 외성과 내성을 합해 7352m에 이른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보존 상태가 훌륭해 성문과 성벽이 대부분 그대로 남아 있다.


성안에는 일만 육천 섬의 곡식을 저장할 수 있는 창고와 사찰, 민가, 우물, 관아시설이 있어 수많은 난리 통 속에서도 철옹성으로 버텨왔던 금성산성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산성산(연대봉) 정상은 솟은 봉우리가 아니라 그저 능선상의 한 지점이다. 진행방향 산성 길에 삼각점(순창446)이 박혀있고, 앞쪽으로 망루 같은 운대봉 북바위가 눈길을 끈다.



소나무 한 그루가 지키고 있는 북바위에 올라서면 구장군폭포와 성테마 공원이 시야에 들어오고 가을 옷으로 갈아입는 강천산 단풍이 곱다.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강천산은 400~600m대의 낮은 산이, 비룡계곡과 삼인대계곡을 중심축으로 빙 둘러 도열해 있다. 순창군에서 1981년도에 전국최초의 군립공원으로 지정하고, 입장료 천 원씩을 받으며, 이 고장 특산품인 튜브형 순창 고추장을 선물한다.


원래 강천산은 생김새가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하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용천산(龍天山)’이라 불렸으나, 조선중기 학자 송익필(1534~1599) 선생의 ‘숙(宿) 강천사’라는 시가 널리 알려지면서 강천산으로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앞쪽은 시루봉 맨 뒤쪽 능선 오른편 높은 봉우리는 광주 무등산





동문 300m 전방에서 왼쪽 강천사로 방향을 틀어 내려선다. 연대삼거리(위)에 도착한다. 북바위에서 곧바로 내려서는 길과 만나는 지점이다.







연대삼거리(아래)는 송낙바위에서 내려서는 삼거리이다. 송낙(松蘿)바위는 소나무에 사는 겨우살이로 만든 여승들의 모자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전하는 곳이다.





선녀계곡 입구에는 지하 300m 암반에서 끌어올리는 식수가 바위에서 흘러나와 나그네들의 갈증을 달랜다.







구장군 폭포가 시원스럽게 흘러내린다. 구장군 폭포는 마한시대 아홉 장수가 죽기를 결의하고 전장에 나가 승리를 얻었다는 전설이 담긴 명소다. 깎아지른 듯 한 절벽을 타고 쏟아내는 폭포수는 가슴까지 후련하게 한다. 좌우측 두개의 폭포는 각각 남성과 여성을 상징, 사랑의 설화를 품고 있다.



구장군폭포 앞 널따란 부지에 순창군이 성테마공원을 조성한 연유도 구장군폭포 중 하나(왼쪽)는 남자, 오른쪽은 여자의 은밀한 부위를 닮았다는 전설에 따른 것이다. 몇 점의 돌 조각이 웃음을 자아낸다.














 



 




강천사와 삼인대 사이를 지나 홍화정 옆길로 들어서면 50m높이에 걸린 구름다리(현수교)가 아찔하게 보인다.



절의탑(돌탑)을 지나 왼편의 하얀색 아치교를 건너면 삼인대라는 큰 바위가 있다. 조선 중종 10년에 순창군수와 무안현감, 담양부사가 각각의 직인을 소나무 가지에 걸고 관직에서 물러날 것과 죽음을 각오하고, 중종의 폐비 단경황후 신 씨 복위 상소를 올리기 위해 모인 장소다. 삼인이란 세 개의 인장이란 뜻이다. 다리를 건너기 전 모과나무 한 그루가 300년째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신라 진성여왕 때 풍수지리에 능통했던 도선국사가 창건한 천년고찰 강천사는 건너편 산에 사천왕 형상의 바위가 버티고 있다 하여 강천사는 굳이 사천왕상을 세우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흔한 사천왕문도 없고 돌담조차 낮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아담한 사찰이다.


전하는 말로는 한때 승려 천 명을 거느릴 정도로 대단한 거찰이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한국 전쟁의 큰 난리를 겪으면서 경내의 모든 건물이 불타고 1961년에 지은 것이다.



그러나 험난한 여정을 바로 곁에서 지켜봤을 옛것들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채 대웅전 앞에 버티고 선 5층 석탑은 고려 충숙왕(1316년)때에 덕현 스님이 강천사를 다시 지을 대 세운 것이다. 일명 다보탑으로도 부르며 덮개돌에는 6.25때 총탄을 맞은 흔적이 남아 있다. 원형을 알 수 없이 바스러져 있는 석등과 괘불대가 경내 한쪽에 비켜 서 있다.



절의 한가운데 하얀 돌난간을 두른 '망배단'은 신라 말 도선 스님이 관음불을 알현한 자리에 세웠다는 강천사의 창건 설화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관음불의 현신이라는, 산 중턱에 곧추선 바위를 올려다보며 절할 수 있도록 했다.



 

 

소담한 절집 강천사의 감나무는 발길을 멈추게 한다. 오래 묵은 절집 건물을 배경으로 선 감나무 가지마다 치렁치렁 감이 열려 가을의 정취를 더해준다.

 

 

강천사의 '강(剛)'은 금강산(金剛山)에서 따오고, 시원한 계곡물을 상징하듯 '천(泉)' 자를 붙였다. 절 뒤로 치솟은 암벽과 강천산 암봉이 어울려 한 폭의 그림처럼 멋지다.

 



△계곡을 따라 곳곳에 자리한 폭포와 소는 거울처럼 투명하고 맑은 물이 고여 있고 물고기가 한가로이 놀고 있다.





강천사를 나와 주차장을 향해 조금 걸어 내려가면 왼쪽으로 보이는 암벽이 병풍바위다. 병풍처럼 둘러친 바위에서 쏟아내는 폭포수가 장쾌하다. 2002년에 만들어진 인공폭포로 높이 40m, 물 폭이 15m, 낙수량이 분당 5톤이며, 작은 폭포는 높이 30m, 물 폭이 5m에 달한다.


 




병풍바위는 호랑이가 새끼를 낳으면 절벽 위에서 떨어뜨려 살아남는 놈만 키웠다는 이야기와, 절벽 아래 널찍한 암반에서 신선이 노닐었다는 옛이야기가 전하는 곳이다. 절벽 아래 커다란 바위는 신선이 깜박 놓아둔 갓이 바위로 변했다 하여 갓바위, 또는 선관(仙冠)이라 불린다.




▲ 병풍폭포 - 이 폭포는 병풍바위를 비단처럼 휘감고 있는 폭포로 높이 40m, 물 폭 15m, 낙수량이 분당 5톤이며, 작은폭포는 높이 30m, 물 폭 5m로 전설에 의하면 병풍바위 밑을 지나온 사람은 죄진 사람도 깨끗해진다는 예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널찍한 비포장 탐방로를 따라 인파를 헤치며 주차장으로 향한다. 매표소를 지나 집단상가지구 끝에 위치한 주차장에서 산행은 끝이 난다.



뒤풀이는 금과마을 방축리 토종순대 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