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19(일)
DMZ평화의 길 29코스(13.2km) : 양구통일관-(1.8km)-물골교-(3.7km)-먼맷재입구 숲밥쉼터-(7.7km)-금강서화마을
서울양양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창밖 풍경이 달라진다. 빽빽한 도심의 그림자가 걷히고, 맑은 물빛이 깃든 강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홍천강(洪川江)이다.
강원 내륙의 대표적인 청정 하천으로 꼽히는 홍천강은 전체 길이가 약 143km로 홍천군을 중심으로 흐르는 강으로, 소양강의 제1지류다. 굽이굽이 산줄기를 따라 흐르는 강물은 마치 투명한 비단을 펼쳐놓은 듯 부드럽고, 그 위로 햇살이 고운 금빛을 뿌린다.
잠시 쉬어가려고 버스가 멈춘 곳은 홍천강휴게소다. 이곳은 이름처럼 강을 품은 휴게소다.
홍천강휴게소는 2016년 개통된 서울양양고속도로 상행선(서울 방향)의 대표적인 중간 휴게소 중 하나로, 홍천강변 경관을 조망할 수 있어 '전망 좋은 휴게소'로 인기가 높다.

'홍천강휴게소'라는 이름에 걸맞게, 휴게소 내부와 외부에는 강과 물을 상징하는 디자인 요소가 많고, 벤치나 조형물, 휴식 공간이 잘 조성되어 있어 쉬어가기 좋다. 휴게소 한쪽에 설치된 전망대에서는 홍천강의 물줄기와 산 능선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강 건너편의 들녘과 마을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DMZ 평화의길 29구간은 양구 통일관에서 인제 서화마을까지 이어지는 약 13.2km로, 펀치볼 동쪽 오르막길을 지나는 등 난도가 약간 높은 코스다.


군사분계선과 매우 가까운 최북단 지역에 위치한 양구는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로 지금도 군사적 긴장감이 감도는 지역이다. 양구 통일관은 이런 지역적 특성을 살려 전쟁의 상흔과 평화의 소중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한국전쟁의 발발과 전개, 양구지역 전투의 기록, 이산가족의 아픔, 분단의 현실,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전시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아침 공기가 차다. 통일관을 배경으로 출발 전 단체기념 사진을 촬영한다.

양구 통일관 바로 옆에 '양구 전쟁기념관'이 있다. 6.25전쟁 중 양구 지역에서 벌어진 9개 전투를 기리는 기념관이다.
양구는 6·25전쟁 당시 '단 한 치의 땅이라도 지키겠다'라는 사수 전이 벌어진 지역이다. 특히 도솔산 지구 전투, 펀치볼 지구 전투, 백석산 전투 등은 전쟁사에서도 손꼽히는 격전으로 기록되어 있다. 전쟁기념관은 이러한 전투의 희생을 기리고, 전쟁의 참상을 잊지 않기 위해 비목공원 내에 조성되었다.





코스는 양구 통일관에서 시작해 전쟁기념관을 지나, 먼맷재를 넘어 백두대간 트레일 1구간 평화염원길로 이어진다. 한때 총성이 오가던 비무장지대의 바로 옆, 분단의 상처 위에 새겨진 평화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다.

나무계단을 올라가 숲속으로 들어선다. 길옆으로는 철조망이 이어지고, 그 너머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숲이 있다.
총 대신 새소리가 들리고, 두려움 대신 고요가 깃든다. 걷는 이의 마음도 덩달아 차분해진다. 이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평화라는 사실이 감사하다.
굽이진 산길을 오르며 시선을 돌리면, 펀치볼 마을의 둥근 분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저 멀리 가칠봉과 을지전망대가 시야에 들어온다. 산 능선 너머는 북한땅이다.



'펀치볼(Punch Bowl)'은 영어로 '둥근 모양의 그릇'을 뜻하는데, 실제로 해안분지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으로, 마치 커다란 그릇처럼 생겼다.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고지전이 벌어졌던 격전지이었지만, 현재는 DMZ와 맞닿은 평화 마을로 변모했다.
전쟁의 상흔이 깊게 남았던 땅이지만, 지금은 초록빛 들판과 하얀 비닐하우스가 평화롭게 자리 잡고있다. 전쟁이 남긴 흔적 위에, 사람들은 다시 삶을 일구었다.



산 아래 과수원에는 나무마다 주렁주렁 탐스러운 사과 열매가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햇살을 머금은 사과의 붉은 빛이 마치 가을을 닮았다.
분단의 땅이었던 이곳에 지금은 풍요의 색이 물들고 있다. 한 알 한 알, 정성으로 키운 사과에는 농부의 땀과 기다림이 배어 있다.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오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삶을 이어간다.


국가숲길 백두대간트레일 1구간 평화염원길은 얼마 전까지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던 곳으로, 곳곳에 지뢰매설 지역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으며, 군인들이 사용하던 교통호, 참호, 군부대 막사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구간 중 일부는 DMZ 펀치볼 둘레길과 중첩되는 구간으로 탐방을 위해서는 DMZ 펀치볼 둘레길 안내센터에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DMZ 펀치볼 둘레길은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의 아픔 속에서 삶을 일구어 내야 하는 가장 큰 숙제를 안은 사람들의 삶이 펼쳐지는 곳이다.
먼맷재길은 펀치볼 둘레길 3~4코스 구간으로 길이는 약 9~10km다. '먼맷재'는 '먼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라는 뜻을 지닌 순우리말이다. 과거 해안마을 사람들이 인근 마을로 이동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했던 고개였지만, 지금은 마을과 마을, 사람과 사람을 잇는 평화의 고개길로 다시 열렸다.
먼맷재길은 DMZ와 불과 수백 미터 떨어진 군사분계선 인접 지역이어서 철책과 감시초소 흔적이 남아 있어, 전쟁의 긴장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한국전쟁 당시 이 지역은 치열한 고지전과 야전 진지가 있던 곳으로 지금도 길을 걷다 보면 벙커 잔해, 포진지 흔적을 만날 수 있고, 안내판에는 당시 전투의 기록과 희생된 병사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래서 이 길은 단순한 산책로가 아니라 '전쟁에서 평화로' 나아가는 상징의 길이다.












먼맷재봉으로 이어지는 '숲밥쉼터'에서 김밥과 커피로 간단히 요기한다. 산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며 잔잔한 속삭임을 남기고, 풀잎 사이로 가을빛이 비친다. 김밥 한 줄의 소박한 점심이지만, 숲속에서 먹는 밥은 유난히 향긋하다. 도시의 식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여유와 고요가 이곳엔 있다. 배낭을 다시 메고 발걸음을 옮긴다.

인제에서 군 생활을 했던 예비역은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만큼 힘든 군 생활을 대변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원통'은 조선시대 인제읍과 한계령을 잇는 교통 요충지로, 말을 갈아타던 원통역(驛)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인제군 남면과 원통(인제읍)의 경계인 아리랑고개는 서울에서 인제로 들어오는 관문에 해당하며, 예전에는 속초나 양양으로 가려면 반드시 넘어야 했던 주요 통로였다. 지금은 44번 국도가 고개를 관통하며 정비되어 차량 통행이 원활하지만, 과거에는 구불구불한 산길이 이어져 여름이면 짙은 안개가 피어오르고 겨울에는 눈길이 험한 곳으로 알려졌다.
'아리랑고개'라는 이름은 조선시대부터 전해져 온 민요 <아리랑>과 관련이 있다. 해발 약 450m 내외의 비교적 완만한 고갯길이지만, 그 이름에는 한과 그리움 같은 깊은 정서와 사연이 담겨 있다.
누군가 떠나야 했던 길,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를 길목에서 사람들은 그리움과 이별의 정서를 노래했다. 이 고개를 넘으며 흘러나온 그 노랫소리가, 결국 '아리랑'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진 것이다.







먼맷재 삼거리(아리랑고개)부터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굽이굽이 내려간다.
앞서가던 일행이 정자 아래에 자리를 잡고 소고기를 굽고 술잔을 건네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있다. 사람들의 웃음이 어우러져 산중의 소풍 같다. 자연스럽게 자리에 합류하여 산길에서 함께 나누는 한 끼는 어떤 진수성찬보다도 따뜻하다.
바람은 여전히 산을 넘어 흐르고, 우리의 웃음소리가 숲속 어딘가로 퍼져나간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 어디에도 경계가 없는 듯했다. 분단의 땅 한가운데서도 이렇게 웃고 먹고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다.



산길을 조금 더 걸어 내려오자, 발 아래로 인북천이 은빛 물결을 일렁이며 흐른다. 맑은 물소리에 마음마저 맑아진다. 후평교를 지나면 인북천을 따라 테크길이 이어진다. 테크길이 끝나자 시멘트 포장길 이어진다.

강가에는 작은 풀밭과 농경지가 이어지고, 산자락 아래로 거대한 비닐하우스 단지가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평촌교를 지나 심적교로 향한다.


길가의 고추밭에는 빨갛게 익은 고추들이 가지마다 매달려 있다. 햇살을 머금은 고추가 바람에 흔들리며 반짝인다. 그 사이로 모자를 눌러쓴 외국인 노동자들이 분주히 손을 놀린다. 하나하나 정성스레 따서 바구니에 담는 그들의 손끝에는 이 땅의 가을이, 그리고 노동의 땀이 묻어 있다.


심적교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서화리로 향한다.



금강 서화마을 이름의 '금강(金剛)'은 금강산의 기운이 닿은 곳이라는 뜻이며, '서화(書畵)'라는 지명은 옛날부터 글씨와 그림처럼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뜻으로 불렸다고 한다.
맑은 금강천(금강산에서 발원한 하천의 지류)이 마을 앞을 흐르고, 뒤로는 산세가 병풍처럼 둘러 있어 마치 한 폭의 수묵화 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평화쉼터 산촌펜션(금강서화마을) DMZ 평화의길 방문센터 앞에서 트레킹을 마무리한다.



펀치볼 지역 주민들은 전통 방식으로 시래기를 말리고, 손질하며 겨울 식량을 준비하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 지역 특유의 청정 고랭지 환경에서 재배되는 펀치볼 시래기는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크고, 햇살이 풍부하여 무청이 단단하고 향이 진하다. 시래기는 무청을 말린 채소로, 겨울철 김치나 국, 된장국 등에 사용하는 대표적인 저장 채소다. 단단하고 쫄깃한 식감과 깊은 구수한 맛이 특징이며, 겨울철 별미로 사랑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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