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8.17(일)
DMZ평화의 길 32코스(8.8km) : 소똥령마을회관-(2.2km)-장신3교-(2.6km)-장신1리 복지회관(4km)-건봉사+등공대
얼마전까지만 해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동행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뜨끈한 국물에 찰밥을 말아 아침 허기진 속을 든든히 채우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지금은 김밥 한 줄로 허기를 달랜다. 음식의 차이는 크지 않아도, 마음 한구석 아쉬움과 허전함은 남는다.
대전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버스 차창 밖 풍경을 조금씩 바꾸며 달려간다. 4시간이 넘는 먼 길이다. 흔들림 속에서도 동행들과 나누는 이야기와 웃음소리는 긴 시간을 짧게 줄여준다.

10시 50분, 드디어 소똥령마을 장신유원지에 닿았다. 그런데 주차 요금을 두고 주차 관리원과 인솔 대장님 사이에 작은 실랑이가 벌어진다. 내리지도 못한 채 버스 안에서 상황을 지켜보는 일행들은 잠시 답답한 마음에 창밖만 바라보다 우여곡절 끝에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걷는다.
사라져 버린 아침의 소소한 행복, 버스 안의 긴 시간, 뜻밖의 작은 소동까지 모두 평화의 길 위에서 작은 이야기로 녹아든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껴안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시멘트 포장길이 이어지고, 청량한 바람이 스친다.
이름만 들어도 미소가 번지는 ‘소똥령마을’은 소들이 주막 앞에 남긴 흔적이 이름이 되었다는 전설을 품고 있다. 고요한 농로 너머로 백두대간의 품이 느껴지고, 오래된 들꽃들이 숨죽여 인사를 건네는 듯하다.




마을 어귀에 자리한 진부령교회는 크지 않은 하얀 예배당으로, 그 모습이 이곳 풍경과 잘 어울린다. 마을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흙냄새와 풀 내음이 코끝을 스치고, 아기자기하게 잘 가꾼 정원을 품은 집이 눈을 즐겁게한다.







숲길과 논둑, 그리고 장신천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발걸음을 한올씩 조용히 이어주고, 장신3교를 건너 군부대 담장을 따라 걷다보면 장신리에 다다른다.





가을빛이 서서히 내려앉은 들판은 황금빛 물결로 넘실거린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벼이삭이 고개를 숙이며 서로 몸을 부딪치고, 그 소리는 마치 계절의 합창처럼 들린다. 파란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노란 들판은 보는 이의 마음마저 넉넉하게 채워준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 해 동안 흙과 햇살, 바람과 비가 길러낸 결실의 무게가 느껴진다. 자연의 손길이 빚어낸 이 풍경은 화려하지 않지만, 묵묵히 기다린 사람과 땅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더 깊은 울림을 준다.


광산2리 경로당 앞을 지난다. 마을 어르신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정자는 비어 있었지만, 햇살과 정적이 그 자리를 대신 채우고 있다.

발걸음을 옮겨 탑평교를 건너니 맑은 물줄기가 아래로 흘러내리며 청량한 소리를 들려준다. 그 순간, 여행길의 피로가 씻겨 내려가는 듯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방향을 틀자 완만한 오르막이지만, 오히려 발걸음을 재촉한다. 등공대에 오르려면 13시까지는 건봉사 대웅전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로를 따라 걷다보니, 이정표 하나가 반갑게 손짓한다. '건봉사.' 여행길은 늘 그렇다. 특별한 장관이 아니더라도, 지나온 작은 풍경과 만난 표지판 하나가 마음을 움직인다.


건봉사 입구에 자리한 사명당(四溟堂)은 임진왜란 때 활약했던 승병장 사명대사 유정(惟政, 1544~1610)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사명대사는 서산대사의 제자로,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이끌고 왜적을 무찔렀으며, 전쟁 후에는 일본에 직접 건너가 포로로 잡혀간 조선인들을 송환해 온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건봉사는 신라 법흥왕 7년(520)에 아도화상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한때 금강산 일대 최대의 대가람이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사찰로 고려와 조선을 거쳐 전국적인 명찰로 꼽혔다. 임진왜란 때 크게 훼손되었지만, 이후 사명대사에 의해 중창되어 '승병의 본산'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래서 건봉사와 사명대사는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군복무 시절, 동해경비사령부(동경사)라는 부대 이름이 세월 속에서 22사단으로 바뀌었고, 그 속에서 나는 포병 FDC로 젊은 날의 시간을 보냈다. 이곳은 나에게 그저 철책선과 포연 냄새, 그리고 무거운 책임감으로 다가오던 땅이었다.
부대 앞 마당에 서면 어김없이 시야에 들어오던 건봉산, 그 웅장한 모습은 늘 경계와 긴장을 상기시키는 풍경이었다. 그 산자락에 천년을 이어온 건봉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건봉사는 6.25 전쟁으로 불이문(1920년 건립)을 제외하고 전소되어 폐허가 되었다. 휴전하면서 민간 통제선 안에 위치하여 출입이 통제되어오다가 1989년부터 민간 출입이 가능해졌고, 1994년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세월이 흘러 다시 찾은 이곳은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군복무 시절에는 내가 서 있던 자리에서 바라보던 건봉산은 이제 더 이상 군인의 눈빛이 아니라 여행자의 눈길로 다가왔다.
45년 전의 젊은 나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긴장 속에 하루하루를 버텼고, 오늘 나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고요 속에서 감사와 그리움을 느낀다. 건봉산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지만, 그 풍경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변해 있었다.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니, 젊은 날의 무게와 지금의 평화가 한 자리에서 겹쳐진다.


염불만일회 발상지로 아미타 염불 사찰 고성 건봉사는 불보사찰 양산 통도사, 법보사찰 합천 해인사, 승보사찰 순천 송광사와 함께 전국 4대 사찰로 불린다.


건봉사는 백두대간 줄기를 배경으로 자리 잡아 사찰에 들어서는 순간 산세의 기운이 감도는 듯한 웅장함이 느껴진다.



불이(不二)라는 말은 불교의 핵심 사상 가운데 하나로, ‘둘이 아님’, 곧 차별이 없는 하나의 진리를 뜻한다. 선악·생사·고락과 같은 상대적 개념을 넘어, 모든 것이 본래는 하나의 진리 위에 있다는 깨달음을 상징한다.
그래서 불이문은 속세와 불국토의 경계를 잇는 상징적인 문이다. 이 문을 통과하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이동하는 행위가 아니라, 분별심을 내려놓고 수행과 깨달음의 길로 들어서는 첫걸음을 의미한다.
불이문의 소박함은 ‘모든 차별을 비우고 본질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를 건축 자체로 담아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건봉사 입구 쪽에 놓인 능파교(凌波橋)라는 이름의 다리가 있다. 능파(凌波)란 가볍고 우아한 아름다운 미인의 걸음걸이를 뜻하는 말로 고해(苦海)의 파도를 헤치고 해탈(解脫)의 석가모니 부처님 세계로 건넌다는 의미가 있다. 깨끗한 계곡 위에 걸린 아치형 석교는 건봉사로 향하는 첫 관문이다. 능파교를 건너는 순간 마음은 이미 속세에서 벗어난다.


건봉사는 강원도 고성군에 있지만, 백두대간 줄기를 타고 올라가면 바로 금강산 남쪽 자락과 이어진다. 실제로 건봉사는 예로부터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남쪽 관문 사찰로 자연스럽게 '금강산 건봉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능파교를 건너 계단을 오르면 다른 사찰에서 볼 수 없는 십바라밀(十바羅密) 석주(石柱)가 있다. 보살이 열반에 이르기 위한 6바라밀(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과 (방편方便, 원願, 력力, 지知)의 4바라밀을 더한 10바라밀(수행방법 10가지)을 시각적 무늬로 석주에 나타낸 것이다.


등공대는 민간통제구역의 군사지역 안에 있어서 건봉사 종무소( ☎033-682-8100)에 사전예약이 있어야 입장이 가능하다. 10인 이상 단체로 신청한 팀에 한하여 최*식 문화관광해설가(삿갓 도사)만 인솔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때 해설사와 군인이 동행하여 길을 안내하고, 역사와 자연에 대한 설명을 곁들인다. 이는 단순한 안전 문제뿐 아니라, 이곳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올바르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건봉사의 대웅전은 조선 고종 15년(1878년) 산불로 3,183칸이 전소되어 이듬해 중건되었다 하고, 6.25전쟁 때 1951년 폭격으로 소실된 건물을 1994년 복원하여 전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에 석가모니 부처님과 보현, 문수보살을 협시불로 모셔져 있다.




여행자의 시선으로 본다면, 등공대를 향한 길은 조금은 특별하다. 자유롭게 오를 수 없기에 그 자체로 ‘귀한 자리’처럼 느껴지고, 군인의 안내와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오르는 과정은 마치 성지 순례길처럼 다가온다.

등공(騰空)이란 단어의 뜻은 허공으로 오른다는 것, 뜻깊은 어원은 있지만 죽어서 돌아간다는 의미란다. 허공으로 날아오르면서 육신은 버리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연화세계(蓮花世界)로 들어간다는 의미로 등공이라 했단다.
염불만일회를 개설하여 만일(萬日-27년하고 다섯달) 염불 수행하고 회향하면서 기도에 참여한 스님 31분이 아미타부처님의 가피*를 입고 등공하여 극락왕생한 것을 기념하는 곳이다. '나무아미타불'을 지극정성으로 염송하면 누구나 아미타 부처님의 가피를 얻는단다. 삿갓 도사가 '나무아미타불'을 선창하고 뒤따르는 일행들이 후창하면서 등공대로 오른다. *가피(加被)는 부처님이 자비를 베풀어 중생을 돕는 은혜.



정상에 서면 감로봉이 한눈에 들어오고, 발아래 펼쳐진 풍광은 단순한 전망을 넘어, 역사와 분단의 현실, 그리고 사명대사가 품었던 기도의 뜻까지 함께 떠올리게 한다.





적멸보궁(寂滅寶宮)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곳으로, 건봉사의 가장 신성한 공간이다.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고, 법당 자체가 곧 부처님의 진신을 모신 자리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적멸보궁에 들어서면 고요한 공기와 함께 무게감 있는 침묵이 감돌며, 발걸음조차 조심스러워진다.




부처님의 치아 사리를 봉안한 치아사리탑은 건봉사의 상징적인 유물이다. 돌기둥 위에 아담하게 올려진 탑은 화려하지 않지만, 그 자체로 숭고함을 전하며, 불교 신자들에게는 깊은 신앙의 대상이다.


수많은 전쟁과 산불에도 그 화(禍)를 면하여 살아남은 300년 왕소나무도 볼거리다.

대전으로 귀가하는 도중 원통 국도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버스가 갑자기 멈추었다. 길 위에 멈춰 선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간다. 우왕좌왕하며 3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마음속에는 답답함과 초조함이 뒤섞였다.
다행히 길 위에 천사의 도움으로 대체 버스가 도착했고, 우리는 다시 대전으로 향한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고, 웃음소리도 들렸다. 뜻밖의 고난이 오히려 여행의 기억을 깊게 만든 순간이었다.
계획대로 흘러간 순간보다 예기치 못한 사건 속에서 느낀 감정들이 더욱 생생하게 남는다. 여행의 매력은 바로 이런 예측 불가능함에 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오늘 하루 길 위에서의 혼란과 기다림, 그리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까지 모든 경험이 한 편의 이야기가 되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특별한 여행의 마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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